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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5-01 (월) 11: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36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히 2:5-9)



우리 가운데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것을, 상(reward)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 사람이 우리가 이룬 업적을 인정하는 상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 상이 올림픽의 금메달이나 노벨상과 같이 세상 사람 누구나 존귀하게 여길 제일 영광스러운 상이라면 말입니다. 특히 우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원수들 앞에서 상을 받는다면 더욱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상은 잔칫상을 뜻하는데, 동일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면서 상을 베푸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시적이고 쉽게 잊혀지는 상보다 더 영광스럽고 존귀하며 영원한 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주 만물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glory)과 존귀(honor)를 받고 계심을 말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만왕의 왕이십니다(9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그렇게 높이셨습니다. 즉 주님은 그저 단지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만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고 믿습니다. 그 생각만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지금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쓰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훗날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 비슷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게 될 분들이 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부터 받을 면류관(crown) 말입니다. 이 세상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에게 높임을 받으며 상을 받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면류관을 받는다면 그 얼마나 영광이며,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까?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지으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훗날 주님을 뵈올 때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게 될 인생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어떤 인생이 그런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을까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게 되었는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받은 큰 구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2:1-4). 오래 전에 계시된 말씀의 증거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는 영광과 존귀의 주님을 말하기 위하여 우선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그 고귀한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는 세상은 천사들을 위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5절)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은 우리들을 수종(serve) 들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라고 했습니다(히 1:14). 여기 말하는 ‘오는 세상’은 앞으로 주님 재림하셔서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은 이미 맛보고 있는 세상,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서 시편기자가 증거한 8편 4-6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6-8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인간의 영광과 존귀함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메시아이신 우리 주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과 존귀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권고하시고 구속하사 주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릴 날이 올 것입니다. 물론 이미 우리 주님은 잠깐 동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천사보다 못하게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시고 승천하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십니다. ‘영광(glory)’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 거룩함에 속한 것입니다. 또한 ‘존귀(honor)’라 함은 최고의 명예, 존경, 귀중함을 말합니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에게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을 때 온 우주 만물의 피조물을 주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영광과 존귀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군천사들과 24장로들이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에 던지며 찬양하는 것입니다(계 4:8-11; 11:16-17).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택한 백성들을 가리켜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내가 그들을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예배란 그러한 영광과 존귀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어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고 하였습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가 아직 죄성이 있어서 온전히 만물이 주께 복종함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8절)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 예수님을 봅니다. 영적인 눈으로 말입니다. 고난의 주님뿐만 아니라 영광의 주님도 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9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려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어느 집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 냄새 나는 마구간에서 말입니다. 사역하실 때에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마 8:20). 그리고 12제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중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었습니다만, 십자가 지실 때에는 다 배신하였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 창녀,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자녀와 동생의 죽음을 맞이하여 절망하던 자들과 가까이 지내셨습니다. 고쳐주셨습니다. 돌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조롱과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결국 처참하게 양손과 발에 큰 못이 박히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신을 위해 즐기거나 휴가를 가신 적도 없습니다. 정말 고독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부활시키셨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열심히 하면 반드시 어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때로 견디기 어려워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예수님처럼 영원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이겨나가야 합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절하)고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의 안락, 편안함을 위하여 영원히 누려야 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바울의 고백인,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 시련을 잘 참고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부르며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게 배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 멘!

성경에 나타난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자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데살전 2:19)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또한 시련과 유혹을 참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하는 자에게 주시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하였습니다. 또 양을 먹이고 제자를 삼는 자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2-4)이 있으며,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고통이 너무 크면 속히 주님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이 모두가 고난을 잘 통과한 다음에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영혼의 구원, 영생의 복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땅의 삶에서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모든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고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수 밖에 없음을 알지만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고난을 받는 만큼 하늘에서 기쁨이 클 것이라고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요, 실수투성이의 연약한 존재이지만 결코 실패는 아닙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훗날 만왕의 왕으로부터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 쓰지 않으시겠습니까? 고난의 시간을 만날 때마다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생각합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우리가 더욱 온전해짐을 믿고, 담대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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