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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5-15 (월) 03:3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17    
어머님의 믿음(딤후 1:3-5)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슴 뭉클한 단어가 있다면 ‘어머니’ 일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세상이 너무 타락하고 악하여져서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이 예외적으로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어머니’ 하면 여러분의 가슴에는 그 사랑, 희생, 따뜻한 품, 자식을 위해 오래 참으시는 마음 등을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머니가 여러분의 필요를 무시하고, 여러분의 아버지를 돕지 않는다면, 식구를 버린다면 불행하게도 여러분의 기억 속에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상처가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사실 한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사람 가운데 ‘어머니’만큼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Abraham Lincoln 은 “경건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가정에서 아버지와 조화를 이루며, ‘어머니’ 라는 역할에 견고히 흔들리지 않고 감당하면서, 이타적인(unselfish) 헌신을 보인다면 여러분 자신에게나, 가정, 교회, 더 나아가 이 나라에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습니다.

오늘 성경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이제 곧 네로 황제에 의하여 순교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가운데 과거를 회상하며, 정말 디모데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디모데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영적인 아버지인 사도 바울이 처형당하게 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어 마음이 약해져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죽음을 앞두고 쓴 목회서신입니다.
본문은 특히 디모데가 그렇게 훌륭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 것이 그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을 알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루스드라 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디모데라는 청년을 만납니다(행 16:2). 그 어머니는 유대인이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 청년의 신앙이 이렇게 좋은가 생각할 때마다 그 어머니 유니게(Eunice)가 생각났습니다. 유니게 역시 친정 어머니 로이스로부터 그 믿음을 전수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 어머니, 외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로, 청결한 양심의 믿음입니다(3절).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하지 않도록 교훈을 받았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신앙 양심에 거슬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으므로 자유하였고, 항상 모든 일에 담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청결한 양심(clear conscience)의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양심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불신자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양심을 속이는 것은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고 또 자존감(self-esteem)을 떨어뜨립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안에 패배의식이 생기고, 영적인 어두움이 마음을 덮게 됩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죄책감은 신앙의 확신을 흐리게 하고, 영안이 어두워져서 신앙생활에 기쁨이 사라집니다. 자꾸 넘어지고, 부딪히고, 힘에 겨워합니다. 이유는 그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마저 없으면 아예 신자가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양심이 청결하지 못하면 해결해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고 청결한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그 어머니에게서 청결한 양심으로 사는 성도의 삶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청결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갑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청결한 양심의 삶을 몸소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그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눈물이 있는 믿음입니다(4절).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동역할 때에 종종 그가 우는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나약하여 우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연민으로 인한 하소연하면서 흘리는 눈물이나 비굴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부드럽고 온유하여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헬라인 아버지의 믿음을 위하여 많이 울면서 기도하였을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믿음의 눈물이었을 것이고, 또한 아픔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신세타령이나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눈물이나 비굴한 눈물이 아닌 남자의 눈물은 그만큼 부드럽고 온유하여서 입니다. 마음이 독하고, 강퍅하면 눈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에게서 그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MEAN 한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눈물이 바울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그러한 눈물을 흘려보았습니까? 자기 자존심이 상하여 억울해서 울기보다는, 엄청난 손해를 보아서 울기 보다는, 옆에서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복음을 모르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언제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구원 받은 감격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입니까?
우리가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품의 특징은 모든 것이 다 용납된다는 것입니다. 품어준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아플수록, 연약할수록, 잘못하고 용서를 구할수록 더욱 포근하게 감싸 주는 것이 어머니의 품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실수와 부족함을 드러내도 용납될 수 있는 사랑의 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고 하였고,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1-13)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이 참된 어머니의 사랑과 같기에 자녀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도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잔소리나 모진 말 한마디 보다는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이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 부드러움, 온유함(tenderness)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이 유혹 많은 세상에, 점점 더 강퍅해 가고 타락해 가는 세상에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의 인격으로 바르게 잘 자라려면 어머니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자기 이기심 충족을 위하여 싸우려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하여 져주는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많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용서함 받기를, 까리따스의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하였습니다. 여기 ‘거짓이 없는(sincere)’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위선적이지 않다’ 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디모데 어머니나 외할머니의 믿음은 참 순수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자기 식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겉을 꾸미며 외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늘 순전하고 솔직했다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다는 말입니다.
복음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예수님께서 제일 싫어하신 것이 외식(hypocrite), 즉 위선이었습니다. 속이 컴컴한데 겉은 밝은 것처럼 꾸미거나, 속은 부패하였는데 겉은 신선한 것처럼 하고, 경건의 모양만 흉내 내고, 실제의 삶 속에는 거짓과 불의가 있는 삶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창기와 세리와 같은 죄인들보다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위선자들을 무섭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 전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100% 순도의 신앙의 가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오염이 된 불순한 신앙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불순한 신앙이 독버섯처럼 번지는데 그것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신앙은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신앙이었습니다. 바로 어머니,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신앙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 지식을 머리 속에 집어 넣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라고 아무리 독촉을 하여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없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완전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문제는 믿음이 진실하냐는 것입니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냐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부모의 피가 흐르고, 부자 간의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도 압니다. 그러나 위선적이고, 불순하고, 거짓된 부분은 자녀들이 성경에서 배우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싫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자라서 똑같이 위선으로, 거짓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을 보기 원하신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하고 순수한 믿음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겉과 속이 똑 같은 투명한 삶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특히 어머니 되시는 분들!
어머니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와 인내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희생과 섬김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여러분의 믿음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소유한 믿음이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스나 외할머니였던 로이스가 갖고 있던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정말 그런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였습니다. 콩 심은 데에 콩이 나고 팥 심은 데에 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내가 콩을 심었는데 왜 팥이 나나 하지 마십시오. 정말 자식 농사만큼 중요한 농사가 어디 있습니까? 정말 믿음도 별별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믿음의 씨를 뿌리고, 어떤 비료를 주며, 물을 주고 있습니까? 잡초를 제거하고, 다른 야생 동물들의 와서 헤치지 않도록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세상적인 성공만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20년-30년만 지나면 표시가 납니다.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 때가서 후회하지 마십시오.
청결한 양심의 믿음을 가지고 심으십시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반드시 양심에 거리끼는 일에 대하여 꾸짖으십니다. 그때마다 속히 돌이키시고 청결한 양심을 회복하셔서 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깨끗하고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어머니가 온유하지 않고 강퍅하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차갑겠습니까?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 있는 어머니들이 되십시오. 자녀들이 그 온유한 사랑의 눈물을 배우게 하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 당하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하여, 잘못에 대하여 넓은 마음으로 가슴에 품고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까리따스의 사랑을 몸소 가르쳐 주십시오.
무엇보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전수하십시오.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위선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아오심을 좋아하십니다. 순수하게 믿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그대로 믿으십시오. 실천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런 믿음으로 잘 양육할 수 있을까 공부하셔야 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믿음 생활한다면 자녀들이 그대로 배우고 행합니다.
유명한 John and Charles Wesley 어머니 Susannah Wesley 는 17명의 자녀들을 다 훌륭하게 키웠는데,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의 자아를 잘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 부모는 그 영혼을 새롭게 하고 구원하는 일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요, 그 일을 게으르게 하는 부모는 사탄과 함께 일하는 자요, 자녀의 영혼과 육체를 망치게 하며, 기독교를 아무 쓸모 없는 종교로만 그치게 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로이스, 유니스과 같은 믿음생활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전수하여, 자녀들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통로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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