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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5-18 (목) 12:2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51    
666(계 13:11-18)
평소에 훈련이 잘 된 군인이,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한 군인이 실전에 강합니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이며, 생명을 구조하는 구조대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할 때 어떻게 준비하며 훈련을 받는 가가 위기가 닥쳤을 때 대처하는 열쇠가 됩니다. 아무 일도 없다고 정신을 차리지 않고 먹고 놀기만 한다면 위기가 오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는 성도들이 엄청난 고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 본문 같은 글을 읽으면 금방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미국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서, 현재의 평화로 인해 감사드리며, 위기를 만날 때를 준비한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13장에서는 두 짐승이 나옵니다. 이미 살펴본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1-10절)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11-17절)입니다. 비교해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머리가 일곱, 뿔이 열이며, 열 면류관을 쓰고 있고(1절), 땅에서 나온 짐승은 머리가 하나, 뿔이 둘이며(11절),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았으나(2절),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서 권세를 받아 행합니다(12절). 온 세상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으로 인하여 용에게 경배하는가 하면(3-4절), 땅에서 나온 짐승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에서 나온 처음 짐승을 경배하게 합니다(12절).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42달을 하나님을 훼방하며 모욕하는데(5-6절), 땅에서 나온 짐승은 큰 기적을 행하면서 처음 짐승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합니다(13-15절). 그리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 이기며 온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 받으나(7절), 땅에서 나온 짐승은 세상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며, 이 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됩니다(16-17절).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대부분의 개혁주의 성경학자들이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그럼, 땅에서 나온 짐승은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적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거짓선지자 혹은 당시 로마황제라고 해석합니다. 둘 다 가능합니다. 당시 로마황제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숭배하기 원했습니다.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짐승에 찢겨 죽거나, 불에 타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때 일본 천황숭배를 강요 받았습니다. 일본 권력자들은 그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가장하며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의무라고 하면서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부한 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김일성 3부자를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숭배하지 않으면 곧 죽음입니다. 혹은 고문을 당하며 수용소에 갇혀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인간숭배를 강요당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고 찬양하며 신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똑 같은 인간인데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을 숭배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 땅에서 나온 짐승을 거짓선지자로 해석하는 이유는 예수님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11절)고 하였습니다. 즉 겉 모양이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말의 권세도 있습니다. 그리고 큰 이적도 행한다고 합니다(13절). 그러나 용, 사탄이 그 주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고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이 짐승의 정체가 거짓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16:13; 19:20; 20:10).
이런 것 보면 오늘날 기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 짐승의 공격을 받아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만 큰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곳에서 미혹의 영이 역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14절)고 합니다. 이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났다는 것도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하여튼 거짓선지자는 자신을 우상화합니다. 교회에서도 사람이 우상화되면 결국 이단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선포되어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높아져야 합니다. 설교자나 이적을 행하는 자가 높아진다면 이미 짐승의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이단의 문제가 사람이 교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또 천주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뿐만 아니라 마리아나 성인들을, 교황을 숭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숭배를 위하여 그들은 많은 신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마리아상이 피눈물을 흘린다든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병을 치료해 주었다든가 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우상화하고 숭배하다 보면 그를 과장되게 말하며, 약점이 드러나면 숨겨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황제를 추종하는 친위대원들이 그랬습니다. 북한의 경우 공산당원들이 그렇습니다. 중국 문화혁명의 주인공 모택동은 홍위병이라는 청년 집단이 그를 우상화했습니다. 오늘날도 언론들이 사람을 우상화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어떤 사람을 매장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짜집기를 해서 언론이 발표하면 순수한 사람들은 그대로 믿습니다. 바로 북한 언론이 그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결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누구를 신화화하거나 우상화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마찬가지이며, 베드로도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완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짐승이 사람들 차별하지 않고 오른손에나 이마에 받게 하는 표(16절) 666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킵니까? 17절에서는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number)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숫자가 네로 황제의 이름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각 알파벳마다 고유한 숫자를 표시하는데, 그 숫자로 단어가 가진 뜻을 해석하는 것을 Gematria 라고 합니다. 네로 황제 이름인 Nero Caesar 를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풀면 666이 됩니다. 예수(IHSOUS)를 헬라어 알파벳으로 풀면 888이 되구요. 그러니까 이것도 짐승이 예수님처럼 흉내를 낸 것입니다. 하지만 888에서 ¼이 모자라죠. 또 성경에서 7은 하나님의 완전한 수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하나 부족한 숫자가 6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숫자 해석보다는 네로가 초대교회를 엄청 핍박한 자이기에, 네로처럼 우상화된 권력을 가지고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세상 권력 혹은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표를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유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로마황제의 인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666으로 인침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의 소유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렇게 땅에서 나온 짐승은 엄청난 능력과 미혹하는 영으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경계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사시대는 패배와 수치가 반복되는 이스라엘 역사인데 어느 목사님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이스라엘 나라를 말아먹은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적에 대한 경계심이 없습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날까,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에서 설마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을 해석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방심하였습니다. 솔로몬 이후의 열왕시대에도 마찬가지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불타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적 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 경계심이 없습니다. 방심하고 삽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말씀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악한 영들의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돈의 유혹, 성적인 유혹이 만연합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의 살게 하니 조금만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보면 못 참습니다. 싸웁니다. 그리고 갈라집니다. 다 이 두 짐승이 하는 짓입니다. 영적으로 늘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임을 늘 확신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666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절하)고 하였으며,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와도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하나님 사랑을 확증하면서 더욱 내가 속한 하나님을, 신랑되신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마와 손목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시하여 기호를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 6:6-8) 하였습니다. 여기 이 말씀이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신 6:5; 마 22:37-4). 이 말씀을 붙들고 늘 주님 사랑하고, 옆에 있는 사람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유혹에 넘어가 실패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래도 사랑의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용납하셔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말씀을 붙들고 나가면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신앙에 대하여 물으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곧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성도들이 황제숭배도 싫고, 그렇다고 붙잡혀 죽기도 싫어서 카타콤(지하동굴, 무덤)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늘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그래도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오늘날도, 아니 앞으로도 우리를 미혹하는 그들은 다 멸망 받을 적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들이요, 세상 권력들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믿고, 그 은혜와 사랑을 붙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앞으로 더 혼미해질 이 시대의 악한 영들과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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