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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2-03 (월) 07: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0    
예언의 성취(눅 1:57-66)


지난 주일에 믿음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참 믿음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의지적인 결단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신앙고백과 찬양이 바로 그런 결단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C S Lewis 는 회심의 흥분을 표현하는 한 자매에게,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여졌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감정들을 하나님이 보내준 생일 축하 카드로 여기고 감사하며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선물이 아니라 인사말에 불과함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느낌은 실체(reality)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체는 어떤 느낌이 아닌 성령의 은사입니다. 느낌은 신경체계의 반응일 뿐입니다. 그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그 느낌들이 사라지고 감정적으로 밋밋해질 때 실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느껴지지 않아도 그것은 분명히 거기 있을 것입니다. 감정은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전거를 처음 탈 때에 뒤에서 밀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음 혼자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Letter of C. S. Lewis).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계속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내 삶을 운전하게 해야 합니다. 나를 내려놓고 말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간절히 기도하며 바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것입니다. 믿음으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면서 말입니다. 조급해 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은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을 붙들고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약속은 성취되고야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약 400년을 기다렸습니다. 영적으로 아주 어두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선지자 한 사람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예언되어진 메시아를, 구세주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제 그 분이 오시기 바로 전에 기적적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forerunner) 세례 요한이 탄생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언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성취되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노년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예언한대로(13절) 때가 되어서 아들을 낳습니다(57절). 신실하신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58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녀에게 넘쳐서 아기를 낳게 되고 주위 사람들과 친지들이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즉 그들이 아기를 낳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성도들은 소망을 갖게 되고,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기를 낳은 지 8일이 되자 유대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하게 되고(레 12:3), 당시 관습대로 축하하러 온 자들이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합니다(59절).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말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당시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이름을 따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60절). 아마 사가랴에게 낳게 될 아기에 대한 가브리엘 천사가 계시의 말을 할 때 옆에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은 요한이라 하라”(13절하)는 계시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친족들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자가 없다라고 하면서 비록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가랴에게 물어봅니다(61-62절). 물론 사가랴는 처음에 계시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그 때까지 벙어리로 말을 듣지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사인으로 말입니다(20절). 그러자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63절)고 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쓸 수 있는 판에다 ‘요한’이라고 이름을 쓴 것입니다. 그는 이미 계시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결과를 경험하고 있었기에 이제는 계시의 말씀에 대하여 ‘왜?’라고 묻거나 혹은 ‘어떻게?’라고 따지지 않고, 그냥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다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결단을 한 것이었습니다.
‘요한(John)’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God is gracious)’ 입니다. 그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다만 사가랴의 족보에 그런 이름이 없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적합한 이름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선물이 아기 세례 요한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가랴가 계시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결단하여 즉각 순종하자 또 다른 기적을 경험합니다.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는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64절)! 이 또한 천사 가브리엘이 계시한 내용이었습니다(20절).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겠다고 한대로 말입니다. 할렐루야!
주위 사람들도 그러했겠지만 사가랴 본인이 가장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계시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너무 기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가 노래한 찬양시를 다음 주일에 살펴볼 것입니다. 그 동안 백성들을 지도하는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만 9개월의 벙어리 시련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불신앙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하였을 것이며, 이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깨달았을 것입니다.
물론 거기 있던 사람들도 두 번의 기적을 경험하면서 놀랐습니다.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65-66절) 하였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노부부에게 아이가 생겼고, 말을 하지 못하던 아버지에게 아기가 할례를 받고 요한이라고 이름하자마자 말을 하게 된 기적을 사람들이 마음에 두었던 것입니다. 이제 세례 요한이 탄생할 때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면, 이 아기가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의아하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도 이 아이가 특별한 아이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손”이, 즉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능력이 이 아이와 함께함을 증거해준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낸 계시(revelation)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권자로 다스리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천사들이나 왕들이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 그 외의 사람들을 통하여 글이나 말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또, 꿈이나 환상이나 표적들 혹은 기적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예언하시며,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하신 많은 예언의 말씀을, 약속의 말씀을 이미 성취하셨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은 앞으로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참 진리(truth)입니다. 진실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 21:45)고 고백하였습니다. 말씀이 그대로 되는 것을 경험하였기에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 달리 우리 하나님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는 이 진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즐거워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사 30:18절상)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게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고 한 후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하였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이 자비와 긍휼을 경험한 것입니다. 은혜로운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경험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항복하고 두 손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결단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면 주님의 능력의 손을 경험하게 됩니다.
도대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믿고 다 내려놓기 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야만 하나요? 사가랴처럼 만 9개월 동안 벙어리가 되어야만 할까요? 믿음의 결단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을 포기해야만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3-6)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사랑과 신실함이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내 머리를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맡기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걸음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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