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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2-20 (목) 11:5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060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사 9:6-7)
보통 아기를 낳게 되면 그의 부모나 할아버지가 그 이름을 짓게 됩니다. 사실 아기를 낳기도 전에 이름을 생각하지요. 짓는 이름처럼 이 세상의 훌륭한 인물이 되라고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죄인이요, 연약하며, 유한하고,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아기가 태어나서 이름처럼 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거룩하신 분이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요, 무한하며,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으실 때에는 반드시 그 이름대로 됩니다.

오늘 본문에 아기 예수의 여러 이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그 특성(character)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700여년 후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문맥을 살펴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 가장 비참한 상태에 있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절).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갈릴리 해변가의 땅들 입니다. 그곳에 빛을 비추시겠다고 하십니다(2절). 어두움 가운데 소망을 잃고 살던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회복하게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에게 은혜를 받을만한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에 비하여 뭐가 더 나아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셔서 믿음으로 살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열방에 알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특별한 은혜를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7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거저 주셨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살 수 없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도록 하신 후에 믿음으로 살았다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냥 내버려 두면 신앙생활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것은 이미 응답하시려고 기도할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책임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응답을 받은 후에 우리가 기도 많이 해서 응답 받았다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기도하게 하셔서 응답을 주신 것이니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할 일은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탄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창성해지고, 대적들 앞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되고, 죄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3-4절). 그 나라에서는 더 이상 전쟁도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5절).

그리고는 탄생할 아기 예수는 어떤 분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6절)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 아기가 태어났어야 하는데, 이 아기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그 근본이 태초부터 계셨던 영원한 신성(Divinity)을 가진 아기입니다(미 5:2). 이 아기가 태어나서 어깨에 정사를 멜 것이라고 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릴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아기의 이름을 첫째, 기묘자요 모사라고 합니다.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둘을 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기묘한 분으로 모든 사람에게 흠모와 놀라운 대상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모사는 성령님의 이름인 보혜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요 14:16). 또 하나의 해석은 둘을 붙여서 기묘한 모사(Wonderful Counselor)라는 것입니다. 기묘가 모사를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신묘막측한, 놀라운 보혜사요 변호인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여튼 예수님은 이 세상이 오신 것 자체가 기묘합니다.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도, 공생애 사역도, 십자가의 죽으심도, 그리고 부활하심도 정말 놀랍습니다. 또한 우리를 정죄하려고 하는 고소하는 사탄 마귀로부터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도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고 하였습니다. 이런 보혜사가, 변호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 전능하심이 당연하지요. 못 하실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를 쳐서 물리치시는 용사입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으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셋째,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영원히 계실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요일 1:1-2)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이유는 우리를 믿음으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준비를 하며 필요를 채우듯이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사랑으로 돕는 분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우리의 아버지로 칭함을 받을 수 있으나 우리의 친구로 불리기를 기뻐합니다(요 15:15).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똑 같은 권리를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맏아들로, 우리들은 양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바침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요일 4:10). 죄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했을 때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적인 평강을 주십니다(요 14:27).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요동을 쳐도 우리 안에는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평강으로 다스리십니다. 세상의 왕들처럼 권세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7절)고 하였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망하지만 영적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보존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공평(justice)과 정의(righteousness)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어떤 어려움도, 환란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모든 일은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가 아무리 열심을 내도 하나님 나라는커녕 우리 자신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열심이, 열정이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공로 없는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6절). 그 이름이 기묘한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요,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변호할 분이며, 우리를 돕는 보혜사입니다. 마음을 먹으면 못 하실 일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전능한 분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입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낳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친구로, 형제로 불러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입니다. 화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평강을 주시는 분입니다. 평강으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고 살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겸손히 낮아지면 더욱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열심히 낮아지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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