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6,974
오늘방문 : 2753
어제방문 : 2119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5-24 (화) 10:4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26    
[5/22/05] 어떤 신자입니까?
어떤 신자입니까? (사도행전 4:1-4)
이 세상에는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조금도 믿지 않는 불신자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 믿는다 하면서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야 하지만 정말 신자인가 아닌가 의심을 갖게 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원은 받지만 너무 어린아기 같은 신자가 있는가 하면, 구원을 받았는지 정말 모를 신자도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올라가서 만나 보아야 알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성경은 그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하는데(마 7:16-21), 그 열매를 찾아보기가 어렵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열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엉터리 신자가 적은 곳이 공산권과 이슬람권이라고 하는데, 이유는 그곳에서 예수를 믿게 되면 핍박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들은 정말 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신자입니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사도 베드로의 첫 설교를 듣고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참된 교회의 모습을 갖추며 든든히 서가고(2장),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베드로는 두번째 설교에서 자신들이 능력이 있어서 기적을 베푼 것이 아니고 오직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어서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놀라운 역사를 보게 했으며,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며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아브라함의 언약의 축복을 받으라고 외쳤습니다(3장).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시간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 두 사도의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 싫어서 핍박하는 장면입니다. 재판도 하지 아니하고 옥에 잡아 가둡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 함이라”(막 13:9)고 경고하였듯이 말입니다.
사실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성전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에서 돌아가면서 성전의 제사와 각종 의식을 맡아서 주관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성전 맡은 자들은 성전에 부정한 사람이나 짐승 또는 이방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비하는 경찰 역할을 하던 사람들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며,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산헤드린 공회를 이루는 주요 인물들로 높은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현실주의자들로서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 여기며 합리적으로 믿는 사람들이었기에, 부활이나 영생, 천사의 존재 등을 부인하였습니다. 모세 오경만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으며 지나치게 주장하였으나, 실제로 그것도 그대로 믿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 오경에도 하나님의 기적과 천사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2절). 바로 종교인들이지 신자들이 아닌 모습입니다.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신자라고 할지 몰라도 말입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영적인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하였습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 지식과 경험을 다 동원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비한 것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마음이 굳고 강퍅하여 고집이 센 사람,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롬 2:5). 또 자기 의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영에 속한 것들을 알지 못합니다(롬 10:3). 종교적인 위선으로 하늘에 속한 비밀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던 바리새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심하게 책망하신 것을 보면 그들도 종교인일 뿐이지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는 일이 참된 신자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둔 것입니다(3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초대교회의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투옥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믿음과 용기를 더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감옥에서 고생하는 것을 막으실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허락하신 까닭은 그 고난 가운데 복음이 계속해서 더욱 전파되고 확산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자들이 복음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을 허락하시면서,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십니다.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도 12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토록 빠른 성장과 세계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제 40년 박해와 6. 25 전쟁을 거치면서 참된 신자들의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도 비록 사도들이 옥에 갇혔지만,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참된 신자의 고난은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무엇인가 하실 일이 있어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여러분들이 복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잠시 고난을 당한다면 기꺼이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짜 신자, 엉터리 신자에게는 절대로 고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신자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그렇게 부흥하였는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복음 전파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던 상관없이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주위 사람이 예수를 믿는 신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신자가 아닙니다. 분명히 다 아는 신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거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선포하는 신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내게 손해가 올 것 같고, 상대방에게 미움을 살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대고 얼버무리는 복음이 아닙니다. 비록 똑바로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담대히 올바로 복음을 전하는 그들 때문에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분명한 복음을 믿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십니까? 우리 모두 그런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성도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친밀한 교제입니다. 이미 2장에서 보았듯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가족처럼 대하며,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었습니다. 서로 필요를 채우며, 사랑을 나누었기에 비록 고난이 있어도 힘을 내고 좁을 길을 함께 걸어 갔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교회의 부흥을 가져온 것입니다. 바로 참된 신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단교파 사람들이 이러한 교제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빠지면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잘못된 진리를 가르치니까 이 부분에 잘못하면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진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이 부분을 실천을 잘 못하면 부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서로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명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두 사도가 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하나가 되어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고 더욱 사랑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금방 오천명이 넘게 된 것입니다. 한 두 사람만 열심히 사랑한다고 교회가 부흥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참된 신자로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이 교회 안에 참된 신자가 적고,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들로 가득차면 그런 교제가 이루어질 수가 없지요.
여러분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친밀한 교제로 세상에서 어려움을 이기는 힘을 얻고 격려를 받으며 한 가족 같이 대하고 있습니까? 그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성도들의 삶이 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교회 밖에서 참된 신자로 살기 때문에, 빛으로 소금으로 정직하게 살기 때문에 손해 볼 각오를 하고, 억울함을 당할 각오를 하고, 어떤 고난도 달게 받을 각오를 하며 사는 것이 곧 교회의 부흥을, 하나님 나라 확장을 가져온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정말 목숨을 내놓고 신앙생활 하였습니다. 로마정권이 그렇게 신자들을 맹수에게 찢겨 죽이고, 불에 태우고, 노예를 삼으며 핍박하였어도 복음은 놀랍게 더욱 전파되어 결국 로마 나라 전체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유는 이 세상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참된 신자들을 부러워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소망이 없는데, 죽으면 그만인데 참된 신자들은 아니거든요. 그들과 다르게 살거든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사십니까? 복음을 위하여, 주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 위하여, 교회 위하여 고난을 받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할렐루야!’ 입니다. 진짜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어떤 신자입니까? 오늘 본문의 제사장들이나, 성전 맡은 자들이나, 사두개인들과 같이 믿음이 없는 종교인들입니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적당히 믿는 신자로 어떤 때는 신자이고 어떤 때는 신자 아닌 것처럼 생활하십니까? 신앙생활 흉내만 내고, 경건의 모양만 보이는 신자입니까?
아니면 정말 거듭나셨습니까?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참된 중생 체험인 있는 신자,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기를 바랍니다. 어떤 표시가 있다고 하였습니까? 분명한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복음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분명하고도 담대히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서로 친밀한 교제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들처럼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이러한 참된 신자가 모인 공동체는 반드시 부흥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된 신자들로 말미암아 부흥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 도우심을 구합시다. 꼭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그런 참된 신자들로 만드시고 빚으셔서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신자들이 있지만, 참된 신자들이 모여 참된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31 주일설교 [3/11/07] 우리가 믿는 것 1 한 태일 목사 2007-03-16 2451
1230 주일설교 [2/10/08] 더 신사적이어서 한 태일 목사 2008-02-12 2446
1229 주일설교 [12/23/07]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한 태일 목사 2007-12-28 2446
1228 주일설교 [1/7/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1 한 태일 목사 2007-01-09 2442
1227 주일설교 [1/6/08] 허락하신 비전을 이루어 주소서 한 태일 목사 2008-01-08 2437
1226 주일설교 [7/8/07] 구원받을만한 믿음 한 태일 목사 2007-07-10 2430
1225 주일설교 [3/23/08] 절망에서 소망으로 한 태일 목사 2008-03-24 2422
1224 주일설교 [12/9/07] 나를 살피고 판단하사 한 태일 목사 2007-12-11 2422
1223 주일설교 [4/1/07] 우리가 믿는 것 4 한 태일 목사 2007-04-03 2422
1222 주일설교 [12/2/07] 믿음에서 믿음으로 한 태일 목사 2007-12-05 2419
1221 주일설교 [10/22/06]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 한 태일 목사 2006-10-23 2419
1220 주일설교 [11/27/05] 훈련으로 되는 제자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19
1219 주일설교 [5/1/05] 예수의 이름으로 한 태일 목사 2005-05-03 2419
1218 주일설교 [7/3/05] 모범적인 교회, 모범적인 성도 한 태일 목사 2006-08-12 2416
1217 주일설교 [4/10/05] 예수는 누구신가 한 태일 목사 2005-04-12 2416
1216 주일설교 [10/20/10] 수요예배 - The Gospel of Grace 한 태일 목사 2010-10-22 2402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