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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5: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12    
[8/2/06]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사도행전 9:26-31)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하여 받으신 고통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집이요(딤전 3:15),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고전 12:27; 엡 4:12)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중심하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이 땅에 세우시고, 영혼 구원을 통한 그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지난 주에도 잠시 살펴 보았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한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주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참으로 예수께서 머릿돌이 되시고,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지옥의 권세도 감히 넘보지 못합니다. 다만 교회는 다시 오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하여 준비하는 신부로서 정결하게 예비되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거하는 집으로서 머릿돌이시오, 모퉁이 돌이신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돌들마다 서로 연결하여 한 몸을 이뤄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는 사명을 받아 열심히 일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 피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것을 보면 기쁘고,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에 속한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생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보람도 느끼며, 개인적인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교회가 나옵니다. 비록 외부로부터 핍박이 있었지만 초대교회는 든든히 서 갔다고 합니다. 부흥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초대교회는 든든히 서며 부흥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다메섹에 있던 유대인들이 사울이 완전히 변한 것을 보고 잡아 죽이려고 했을 때에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그를 담아 피신하도록 하였습니다(25절).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180도 변하기 전의 오명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도들은 그를 여전히 꺼리며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행한 사울의 잔인한 핍박이, 비록 다메섹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그들이 소문으로 들었다 하더라도, 아직도 그들로 하여금 사울이 예수의 제자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순전히 받아들일 수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사울을 소개하고 추천한 자가 구브로에서 레위 가문으로 출생한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초대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성도를 잘 보살피면서 덕을 끼침으로 사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바나바, 즉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행 4:36). 그는 자기 밭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갖다 놓을 만큼(행 4:37) 깊이 헌신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앞장 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바나바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사울이 어떻게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변하게 된 사울의 회심과 소명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다메섹에서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 하였는지를 자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사도들을 만나기 전, 바나바와 만날 기회가 있었음을 시사하며, 이 교제를 통해 바나바는 사울이 같은 형제로서 ‘예수의 사람’인 것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나바가 어떤 인격의 제자인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소개하였을 때에 사도들은 사울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몇 주일 전에 설교하였듯이 다메섹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이 사울을 한 형제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아나니아가 큰 역할을 했다면,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바나바를 통하여 사울을 한 형제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나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제 예루살렘에서도 주의 제자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예루살렘에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하며,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주(Lord)이심을 변론을 하게 됩니다(28-29절).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곳 예루살렘에서도 이들의 핍박과 비난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29절하). 아마도 사울은 이 곳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한 스데반을 생각하며 더욱 결연하게 그들과 변론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 속한 주의 제자들이 사울을 피신시키기로 계획함으로써, 사울은 다시 한번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그리고 더욱 안전하다고 판단된 사울의 출생지인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로 인도되었습니다(30절).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속에서 영적으로, 질적으로 그리고 숫적으로 성장해 나감을, 복음이 확장되고 있음을 31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핍박이 심하던 때인데도 교회가 든든히 서서 부흥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가 든든히 서 가며 부흥하는 교회입니까?

첫째는, 평안한 교회입니다.
다툼과 갈등이 없고 하나가 되는 교회입니다. 서로 겸손하여 낮추어 섬기려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마음에 평안과 쉼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서로 자기를 내세우며,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다른 성도를 업신여기면 하나가 될 수 없고,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싫어집니다. 그러니 어떻게 든든히 서가며, 부흥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서로 용서하며 용납하고, 화해와 사랑의 나눔이 있어 하나를 이루는 평안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주를 경외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고 봉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속일 경우에 받는 심판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직접 계시하시고 역사하심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였습니다.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높임을 받는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교회입니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회를 섬기고 봉사한다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다면 교회는 무너져 갈 것입니다. 지금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처럼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하였습니다. 정말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령의 위로가 있는 교회입니다.
벌써 아나니아나 바나바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통하여 사울을 위로하고 세우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든든히 서 가는 교회는 성도들을 통한 성령의 위로가 넘칩니다. 상한 심령이 치료를 받고, 실망한 영혼들이 새 힘을 얻으며 회복이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넘어지는 자를 붙잡아 주는 모습이 있습니다. 삭막하지 않습니다. 왜 9장에서 길게 아나니아와 바나바가 사울을 세우는 모습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안팎으로 핍박이 심한 가운데 신앙생활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그러한 위로와 격려, 사람을 세워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움을 받은 그들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움을 받은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세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위로하십니다. 함께 열심히 기도할 때에 위로하시고 영적인 치유도 체험합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말미암아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성도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나가는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악한 영이 주장하여서 서로 당파를 만들고, 시기와 질투로 눈을 흘기며 미워하고 혀로 살인하는 교회라면 당연히 든든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교회입니다. 아니 금방 무너지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사탄 마귀의 궤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늘 성령이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악한 영이 잠간 장난을 치더라도 금방 패하여 물러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포되는 말씀의 은혜와 힘써 기도하심으로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서로 위로와 격려가 넘치는 말로 세워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 정말 성령이 역사하는 구나’라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체험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교회가 든든히 서 갈 때에 나타나는 결과는 부흥입니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31절하) 하였습니다. 영적, 질적, 그리고 숫적인 부흥입니다. 즉 성숙과 성장입니다. 영적, 질적인 성숙이 없이 숫적으로만 부흥한다면 얼마 못 가서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꽹과리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놀라운 성령의 역사로 성도들이 영적으로 질적으로 성숙해져 갔기에,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가 그들 가운데 역사하였기에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로 숫적인 부흥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합니다. 말씀 훈련, 기도 훈련이 중요합니다. 먼저 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계속 물을 공급받으며 흙으로부터 영양분을 잘 취하는 건강한 나무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교회는, 생수와 영적인 양식을 잘 취하는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늘 평안하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넘쳐서 부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영적 훈련을 받아, 말씀을 잘 먹고 소화시키고,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마시며 기도하고 교제함으로 성숙해져서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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