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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9-06 (수) 09:3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59    
[9/3/06] 어떤 복음입니까?
어떤 복음입니까? (사도행전 10:24-48)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 교제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복음의 편지를 한 장씩 쓰고 있지요/ 여러분이 행하는 행동과 말들로/ 사람들은 여러분이 쓰는 것을 읽지요/ 거짓이거나 진실이거나 여러분은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어떤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꼭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활로 말입니다. 어떤 성도는 진정으로 빛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그저 형식적이고 내용이 없어 빛을 비추기는커녕 더 어두움으로 인도하는 기독교를 전하기도 합니다. 어떤 성도는 어려움과 환란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인내하면서 잘 극복함으로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낙심하면서 절망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삶으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또 어떤 성도는 진실하며, 감사하며, 말을 조심하며 생활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기에 예수님께서 정말 살아계심을 나타내지만, 어떤 성도는 거짓말을 쉽게 하고, 늘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살면서 불신자와 다름없이 욕하고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라는 가짜 복음을 심어줍니다.
한편 어떤 성도들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한다면서 무조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부자가 되고, 병도 낳고, 자식도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기복 신앙을 전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해방 신학을, 또 어떤 이들은 윤리적인, 철학적인 면을 강조하며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어떤 복음을 믿고, 전하고 있습니까?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고정관념, 전통을 깨뜨리시기 위하여 세 번씩이나 부정한 짐승을 먹으라는 환상을 보이신 후에(11-16절),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니 그가 일가 친척,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4절). 베드로가 그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를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합니다(25절). 그 때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26절) 하였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베드로를 최초의 교황으로 여기며, ‘신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로마 천주교는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기다리며 모인 사람들을 둘러 본 후 고넬료에게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28절)? 베드로는 아직도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로부터 그에게 임했던 환상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베드로는 드디어 욥바 피장의 집에서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고백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35절)!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에게는 편견이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편애하시거나 또는 어떤 특정한 나라나 민족, 백성들을 일방적으로 아끼시지 않습니다.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라 하더라도 예외없이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은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우리 주님의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편견을,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방문과 질문에 반갑게 맞으면서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하)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참된 복음을 전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째로, 화평의 복음입니다(36절). 왜 복음이 화평의 복음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할 수, 화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그의 진노 아래 있었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자들은 이웃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을 전합니다(37-38절상). 보통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말할 때에 우리는 믿는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며,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세례 받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38절상) 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인정하셨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막 1:9-11, 눅 3:21-22, 요 1:32-34) 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사건보다 중요하기에 사복음서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포한 것입니다. 인정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그 기쁘신 뜻을 이루실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삼위의 한 분이신 성자 그리스도이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사역입니다(38절하).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신 이후로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의 사역은 두 가지였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를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의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마귀에게 눌린 자들인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마귀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의 사역을 전해야 합니다. 죄로부터 눌림을 받고 사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회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회개하여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은 자들에게 산상수훈의 설교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내용을 설명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그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여야 합니다. 회개와 후회와 차이가 무엇입니까? 회개에는 후회가 포함됩니다만, 후회만으로 그치면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penance)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돈 몇 푼에 팔고 난 후, 후회하고 목을 매고 죽은 것처럼 자기 잘못에 대하여 고치고 돌아서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회개(repentance)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어도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통곡하며 가슴저리는 눈물을 흘리고 결국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 갔던 길에서 180도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탕자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야 했나요? 왜 그 능력으로 사셔서 계속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셨나요? 왜 예수님의 죽음이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데 그렇게 중요합니까? 대답은 주님께서 우리가 죽을 자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하게 하게 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큰 벽, 막힌 담과 같습니다. 이 벽을, 담을 허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었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희생제물이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사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던 우리가 화평하게 되어, 부자관계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40-41절).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비롯하여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정말 살아나셔서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환상으로 본 것도 아니고 영으로만 살아나신 부활이 아니라, 실제 육체적으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죽었다가 정말 살아나 하늘로 올라갔습니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죽음의 권세까지 이긴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재판장으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42절).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세상 끝날에 예수님 재림하셔서 산자와 죽은 자, 영벌을 받을 자와 영생에 거할 자를 나누는 재판을 하실 것이라는, 즉 예수님이 심판주임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선언이 바로 이것입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우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예수 그리스도)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상)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43절에 “저(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하고 베드로는 복음 증거를 마칩니다. 즉 복음의 전체 내용 가운데 핵심은 죄 용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첫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어떤 복음을 믿고 전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지 않으십니까? 누구에게나 심판의 날이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고 사탄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실 것입니다. 죽음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에게 죄의 능력과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시면,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인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45절 이하에 베드로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함께 갔던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 증거로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46절). 그래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48절). 할렐루야!

이미 복음을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고 그 능력을 힘입어 사시는 여러분들! 어떤 복음을 전하고 삽니까? 오늘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전하고 사십니까? 평화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부활의 복음, 심판의 복음, 용서의 복음을 전하십니까? 친히 죄 사함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셨습니까? 훗날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할 재판장으로 주님을 전하십니까? 꼭 입을 열어서가 아니라도, 여러분의 생활 속에 이런 예수님께서 살아계십니까? 그 크신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처럼 사십니까?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평하여 화목을 이루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용서하며 화평하고 사십니까? 여러분들이 주님을 본받아 사랑하고 살기에 주위 사람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까? 참된 복음,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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