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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8-14 (화) 02: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85    
[8/12/07] 하나가 되게 하는 지혜
하나되게 하는 지혜 (사도행전 15:12-21)
성경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종이건 자유인이건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3-15, 18-19) 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러므로 주 안에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신 그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으로 용납하여 성령이 하나로 묶어주신 것이 끊어지지 않게 힘써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에도 살펴 보았지만, 오늘 본문에 안디옥 교회에서 내려온 사도들과 장로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 신자들이 예루살렘 총회로 모여서 많은 변론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이 할례를 비롯하여 율법을 지키느냐 아니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럴 필요가 없느냐 논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는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이 첨예하였었는데, 더욱 분열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렸듯이 변론이 거의 마칠 즈음에 사도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증거하고 있고, 마음도 깨끗이 되어 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모두 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에 하나님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를 않으니, 그들에게 굳이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도 못하던 멍에를 메라고, 율법을 지키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전통을 한 순간에 다 없애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어도 그 멍에를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요구를 계속 하다가는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게 생겼습니다. 배타적인 선민의식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 모두가 예루살렘 교회에 모인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결론적으로 그렇게 설교를 하자 온 무리가 조용해졌습니다. 그 때에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역사하신 표적과 기사를 간증하였습니다(12절). 사람들의 관심을 율법, 그 전통의식에서 현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표적과 기사에 초점을 둠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뒷받침하는 간증이었습니다. 그들의 간증이 마치자, 아마도 총회의 의장으로 사회를 보고 있던 야고보 감독이 회의를 화평하게 끝마치는 제안을 합니다.
그는 베드로가 말씀한 것을 먼저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14절)라고 합니다. 시므온은 베드로의 유대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백성이 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아모스 9장 11-12절을 인용하면서,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스라엘)을 일으키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다시 서게 될 것을 말하며, 유대인들 가운데 믿게 될 그 남은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을 모아 주를 찾게 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주장했던 것처럼 야고보는 지금 현재 성령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할 도리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베드로의 말에 동의하면서 회의의 결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 사회를 보는 의장으로서 회의의 분위기와 참석한 사람들의 의중을 읽고 그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결정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9절-20절에 몇 가지 중재안을 내 놓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19절하). 이는 할례에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총회의 사실상 결론에 해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이방인들, 믿음의 형제들에게 할례란 쓸데없는 멍에요,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니 요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마 이 원칙적인 문제가 해결되어도 실제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실제문제를 이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정말 유대인 신자들의 눈에 보기에 아주 거슬리는 여러 사례들이 회의 때에 보고가 된 것 같습니다. 실생활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원칙, 즉 할례의 여부 보다는 당장 눈에 띄어 서로의 감정을 손상시키는 사소한 일이 더 큰 걸림돌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걸림돌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들 사이의 교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결국에 가서는 다시 원칙적인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유대인 신자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으로 거론된 이방인들의 관습이 아마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졸라 죽인 것’, ‘피를 먹는 것’ 네 가지로 압축된 것입니다(20절).
그래서 둘째는, 우상 제물에 바쳐진 것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함부로 우상 제물에 바쳐진 음식을 먹었던 것인데, 이 일이 유대 신자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음행을 금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부도덕한 삶을 정리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우상신을 믿으며, 우상 제단에서 여사제와 성관계를 가졌던 습관으로 인하여 이방인 신자들 가운데서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계속하여 음행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넷째는, 동물을 함부로 목졸라 죽이면서 그 피를 먹는 것을 금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수많은 짐승들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간 것을 기억하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거나 그 피를 먹지 말라고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도저히 유대 신자들로 하여금 이방인 신자들과 하나가 되게 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이방인들의 관습을 금하도록 하자고 결론을 맺고 공문을 띄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런 율법에 금한 것을 각 성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읽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21절). 당시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곳에 회당을 지어 이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곳에서 살다가 유대적 색채가 짙게 배여 있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 신자들에게 그들의 대충 알고 있는 유대인의 율법 중 이 네 가지를 지키도록 하는 것은 결코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할례식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양보를 하라고 하고,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유대인들이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사실 구별된 성도로서 해서는 안될 요구사항을 제안하면서 양보를 하라고 하는 야고보 사도의 중재안이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 규제 조항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맞게 이 네 가지 규정을 요약하라면, 우상 숭배 금지, 부도덕 금지, 살인 금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나 동물을 피채 그대로 먹는 것 금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야고보의 결론적 제안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 즉 사도들과 장로들, 영적지도자들에게 아주 적당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제 아무도 이방 신자들에게 할례의 필요성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 눈살 찌푸리는 짓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복음 사역에, 교회의 부흥에 그들은 모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령의 사역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그들의 어떤 특권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이방 신자들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대함이 있어서 꺼림칙해 하던 모든 요소들도 야고보의 입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 자매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열망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결국 회의는 안디옥 및 다른 지역에 보낼 대표를 뽑고 공문 편지를 작성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루살렘 총회는 자신들의 이러한 결정이 “성령과 우리”, 즉 성령님의 인도 하에 예루살렘 총회가  결정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28절). 그 회의 참석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이 결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았고 느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모두가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교회,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지혜로운 결정, 바로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유는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하나님의 지도, 인도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 주 안에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양보를 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탄은 자꾸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성도들을 갈라 놓으려고 합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목숨을 거는 사람들 때문에, 자존심을 내 세우는 사람들 때문에 분란이 일어납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하나님의 뜻,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을 지키는 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건다면 얼마든지 비본질적인 것을 양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날의 야고보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하나되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지혜였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지혜였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총회에 모였던 지도자들처럼 모두가 주 안에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애쓰는 사람들이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하나되는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하나되게 하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문화적, 사회적, 인종적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지방색, 개성, 취향 등을 넘어서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몸을 사랑하는 데에서 오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어찌하든지 하나됨을 깨뜨리려는 세력들을 물리치십시오. 한 가족입니다. 가족이 깨지고, 갈라지는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할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본질적인 것을 붙잡고, 비본질적인 것에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다면 적반하장 아니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이 자꾸 안을 보지 말고, 바깥으로 돌려 주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처럼 이방인 한 사람이라도 더 믿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목적이 같으면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목적을 가지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 나아가는 우리 경향가든의 모든 교우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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