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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9-25 (목) 21: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78    
[9/21/08] 고난 중에도 찬양을
고난 중에도 찬양을 (시 편 63:1-7)
요즈음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갖은 노력을 다하며 애쓰는 분들도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아니면 또 다른 어려움들이 여러분을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나요? 가정에서 사춘기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혹은 부부 사이의 갈등, 오랜 질병으로 지쳐서, 혹은 직장에서, 혹은 대인관계에서 깊은 상처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왜 우리 가정은 불행할까 하는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어서 우울증 현상까지 나타납니까? 그리하여 나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까지도 우울하게 합니까?
원하지 않는 고난으로 고통을 당할 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고난을 가져온 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고난 중에도 오히려 찬양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는 그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표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다윗이 유다 광야로 도망쳤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다윗에게 유다 광야, 빈 들은 인생으로 말하면 최고의 밑바닥이었고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던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이 시편은 마귀의 노예가 되어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에게 쫓길 때인지, 아니면 나중에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다윗은 그의 인생에서 아주 캄캄한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그는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4-7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만나는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혀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입니다. 정말 다윗은 사울 왕에게 잘했습니다. 충성된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기에 도망쳤던 것입니다. 빈 들로 말입니다. 빈 들에서, 토굴에서 세 번씩이나 사울 왕을 복수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기에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들도 요셉처럼, 욥처럼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참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다윗의 불순종의 범죄는 먼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입니다(삼하 24장, 대상 21장). 왕이 되어 승승장구할 때에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여태껏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니 군사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지 말자는 충신 요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 만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기에 그 분만을 의지하기보다 군사의 수, 사람의 수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끌고자 하는 그 시작을 보여주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신앙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이스라엘 전역에 온역(전염병)을 사흘간 내려서 칠 만명이 죽고 온 집과 골목마다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죄를 숨기려 하다가 우리아까지 죽여버리는 죄를 짓습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지적을 당한 후에 회개를 하지만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 아들 압살롬이 아비의 후궁들을 겁탈하기도 하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자기가 왕이 되고자 구테타를 일으키어 왕궁으로 쳐들어 오게 되어 다윗 왕과 몇 몇 가족들은 도망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대면하며 고난을 당하였습니까?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는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짓는 범죄로 말미암아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인지 알아내어 대처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라면 다윗처럼 당연히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겸비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담담히 그 대가들을 치러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내게 원하시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그 어떤 경우의 고난 중에라도 다윗처럼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다윗은 그 고난의 밤에 주님을 묵상하며 찬송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주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3절). 이 세상에서의 모든 재물과 지위와 권세를 다 빼앗기고, 심지어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조차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주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물이 없는 마르고 곤핍한 그 땅에서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으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느낌이 그에게 부어지는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과거에 그런 체험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입에서 찬송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2-3절)! 과거에 성전에서 주를 바라보았듯이, 빈 들에서도, 어두운 밤에도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하심, 긍휼하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에는 결코 편할 때가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그 은혜를, 인자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3-4절). 3절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걸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라도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인생 밑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고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언제나 찾아오셔서 아무 말없이 그 오물을 닦아주시고, 그가 토한 것을 치워주시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같으면 ‘야 너 또 이렇게 했냐? 얼마나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죽어볼래’할텐데,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힘들었냐? 얼마나 괴로웠겠느냐?’ 하면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분명히 그가 잘못을 저질렀고 미련해서 죄에 빠졌는데도 하나님께 울면서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내치시지 않고 회복시키시고 더 좋은 곳으로 올려주시는 분이심을 다윗은 경험한 것입니다. 비록 인구조사로 인한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압살롬의 반역으로 한동안 어려웠지만, 결국 다시 그의 왕위를 회복시키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고난의 밤을 통과한 후에는 아침을 주신 것입니다. 즉 그 고난은 회복을 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를 악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감히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 진리를 체험한 사람이 어찌 한평생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4절하)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찬양을 부르면서 손을 든다는 것은 좀 쑥스러운 일이고, 누가 하나님에 대하여 물어볼 때에 불쑥 손을 든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매우 기뻐하고 있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에는, 은혜가 충만할 때에는 그런 쑥스러움이, 창피함이 사라집니다. 손을 들고 찬양을 하여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욥과 같은 의인도 하루 아침에 자녀도, 건강도, 재산도 모두 잃어버리고 아내조차 도망가고 남은 것 하나 없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고통을 당하고, 세 친구가 와서 격려는커녕 딴 소리들을 하니 그 역시 잠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후가 찾아와 욥과 세 친구들에게 ‘고통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고통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뜻으로 말합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 한 사람도 없구나”(욥 35:10)!
여러분! 밤중에 노래할 때에는 낮에 노래할 때의 의미와 많이 다릅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보다 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고백한 하박국 선지자는, 그 이유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19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그래도 좋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님만 계시면 좋습니다. 굶주려도, 가진 것이 모두 사라져도, 하나님은 나의 기쁨이요, 나의 사랑이요, 나의 힘이십니다. 나의 구원이십니다. 결국에는 나를 사슴과 같이 힘있게 만들어 어두운 밤도 마음껏 뛰게 하실 것입니다. 결국 이 어둠을 헤쳐 버리시고 내게 아름다운 날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부를 수 있는 찬양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에게는 어두운 밤에 이런 노래를 부를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실 때에 비로소 우리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엘리후는 또한 우리가 인생의 밤을 만날 때에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신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고난의 쓴 물을 먹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없는 어리석은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더욱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인내하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도 마음을 아파하시면서 말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사람들은 거의 다 밤에 지어낸 작품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고난을 때때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까닭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면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좀 마음에 들도록 만들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지혜를 가르쳐 주시겠지. 한번 배워봅시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보지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두운 밤을 대하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참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3-4)고 하였듯이, 사실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히 5:8).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운 밤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헤아려 알지는 못해도,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그 크신 사랑을,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사람들은 내가 잘 나갈 때에, 돈 잘 벌 때에, 높은 위치에 있을 때에 찾아오지만 내가 아쉬울 때에,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는 거의 모두 외면해 버리기에 종종 배신감을 느끼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없을 때에 우리를 돕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자하심을,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사탄은 자꾸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하고 모르게 합니다. 그 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십시오.
어떠한 어둠의 밤을 지나게 되더라도, 어떠한 폭풍우, 비바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나는 나의 것이 아니오 주님의 것임을 늘 생각하십시오. 주의 품에 안기십시오. 만약 나의 불순종으로 인한 고난이라면 회개하고 순종의 길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겸손해 지십시오. 그리하여 원망보다는 감사로, 의심보다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바라보십시오. 그 섭리를 확실히 믿으십시오. 아니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 그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한 순간 한 순간 헤쳐나가는 작은 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만,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탄의 세력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고난 중에도 여러분의 입술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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