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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10-10 (목) 23:3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355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막 10:28-31)



우리 교회에서 전도에 힘을 쓰는 분들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전도에 열심을 내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받은 것이 너무 많고 커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나아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열정으로 하십니까? 그렇다면 정말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구원의 은총과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당연히 열정을 가지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렇게 일하는 분들에게 받을 축복도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축복의 약속이 우리로 더욱 신실한 일군으로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문맥은 주님께서 부자가 그 재물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 후에(10:23-25), 28절에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님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부자가 재물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우리는 재물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데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29-31절까지 대답하신 것을 살펴보며,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어떤 복을 받는지 알고 확신하기 원합니다.
   우선 29절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 일군’ 혹은 ‘주님의 제자’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일꾼은 주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입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버렸다는 뜻이 정말 내 팽개치듯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복음보다는 덜 사랑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서라면 가족이나 집이나 어떤 소유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요, 주님의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그 무엇보다도 주님과 복음을 사랑하며 일하는 자들은 어떤 복을 받게 됩니까?

   첫째, 이 세상에서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드린 것의 백배나 더 받습니다(30절상). 주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라고 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수학과 인간의 수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1 – 1 = 0 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하십니다. 하나 있는 데서 그 하나를 드렸는데 0 는 물론 아니고, 둘도 아니고 100 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수학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믿고 실천할 때에만 가능한 하나님의 수학이요, 성령 역사의 체험입니다.
   즉 여러분들이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드렸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약속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런데 고난도 겸하여 받습니다(30절하). “핍박을 겸하여 받고” 하였습니다. 핍박이라 함은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는 자에게 오는 고통, 고난을 뜻합니다. 즉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들은 여러 축복도 받지만, 고난도 함께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으로부터 핍박이 온다는 뜻입니다. 사탄, 마귀가 시기하여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과 고통을 말합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는데, 주님을 따르는 종들이 전혀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주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오”(요 15:2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사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며, 그것이 큰 축복인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일꾼 삼으신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핍박은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또한 감당할 고난만 허락하시는 줄 믿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이 후에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30절하). 그런 하나님의 일꾼들은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세상에 비하면 잠시 잠깐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예외적으로 90세, 100세까지 사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래도 주님 재림 후에 다가올 수천억 년보다도 더 긴 영원에 비하면 경점입니다. 그 영원의 삶이 우리 앞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그 미래를 내다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정말 중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이 짧은 인생, 남은 시간에 누구를 미워하고, 싸우고 하는 시간은 정말 아깝습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방황하고 사는 인생들을 인도하는 일에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산 자들에게 그 영원한 시간에 주어질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한 자들에게는 자랑의 면류관이(데살전 2:19), 주님과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으며 고난 속에서도 잘 참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이(약 1:12),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고전 9:25),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먹이고 인도한 자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벧전 5:2-4),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딤후 4:8) 주어지게 됩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넷째로, 나중에 주님을 따른 자가 먼저 되는 복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31절). 주님의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먼저 믿었다고 교만하여지면 나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늦게 믿었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늦게 믿었어도 신실하게 충성을 다하면 얼마든지 먼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많지요. 늦게 믿었으나 더 열심히 전도하며 사시는 분들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먼저 가고 빨리 가는 것 같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31절과 동일한 말씀을 기록한 마태복음 19장 30절 이후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과 집 주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20:1-16)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일하러 온 일꾼도, 12시, 오후 3시, 5시에 일하러 온 일꾼도 다 함께 오후 6시에 일을 마쳤을 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주어졌는데, 오전 9시에 제일 먼저 일하러 온 일꾼이 주인에게 불평할 때에 주인이 그도 다른 일꾼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하였음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것은 주인에게 달렸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수학입니다. 주인은 품꾼들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틀린 수학입니다.
   신앙적인 우월감, 자만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시 종교적인 열심을 품고 교만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얼마나 싫어하시며 꾸짖으셨습니까? 겸손히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일의 결국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일꾼이 일을 끝내고 평가는 주인이 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오래했어도 주인이 작은 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무 상을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불순한 동기로, 혹은 악한 성품으로 일을 했다면 말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주인의 눈에 나중일 수 있고, 나중 된 것이 먼저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약해서 안돼, 배운 것이 별로 없어 무식해서 안돼, 나이 많아서 안돼, 혹은 가난해서 안돼’ 라고 생각하시면서 게으르면, 아니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꾸중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모습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가난하고, 무식하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충성하시면,  주님께서 도우시며 나중에 놀라운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결코 우리 하나님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수고하는 일꾼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공평하신 분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신실하게 충성하는 자들을 반드시 복 주십니다.
   첫째로, 이 세상에 살면서도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희생한 것보다도 백배나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시대가 아니면 여러분의 자손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로, 그런데 그 복과 함께 고난도 겸하여 받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그의 종들도 핍박을 받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견딜만한 것만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소중한 영생을 받습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상급을 누리며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일한대로 상급을 주십니다. 혹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그저 겸손히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위하여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일의 결국은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수고를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일일이 다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상을 주시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전도하시다가 피곤하고 힘들다고 여겨지시면 이런 주님의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자비하신 주님의 눈길을 기억하시고, 우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가진 모든 것으로 충성할 것을 다짐하십시다. 약속의 말씀이, 주님의 상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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