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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2-20 (월) 07: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73    
살피고 쫓아내라(롬 16:17-20)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마 13:24-30). 또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마 7:15). 우리의 눈에 구별이 잘 안되어 마지막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 경우가 아니라 이리의 경우는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으면 그들을 구별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양으로 가장한 이리로 말미암아 교회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써 농사를 잘 해놓은 밭을 멧돼지가 망쳐 놓을 수 있듯이, 그들이 포도원인 교회를 망가뜨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고전 13:6). 참 사랑은 악을 용서는 하여도 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까지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받아들이면 큰 일 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끝내면서 그 동안 자신의 파트너로서 수고한 자들 가운데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자들을 소개하면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사랑의 인사를 하라고 하며, 모든 교회가 로마교회 문안하지만, 예외가 있음을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무하고나 무조건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며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제는 물론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헤어지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17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영적으로 미성숙하여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실수를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가르쳐준 교훈, 교리를 거스리는 자들을 말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가르침과 다른, 대조가 되는 주장을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인사조차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떠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할 때 귀담아 듣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이 성경말씀과 일치하는지,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지, 우리를 더욱 경건하게 하는지, 성도들과 더욱 가깝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며, 관계가 깨어지게 하는데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교훈과 다르게 주장함으로 분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거치게(ska,ndalon, put obstacles, cause to stumbling)’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스캔들을 일으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살피고(skopei/n, watch out)’라는 단어는 자세히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망원경(telescope) 혹은 현미경(microscope)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을 자세히 살피려면 성경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교역자들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이들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이거나 이단과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인본주의적인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성경 전체를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든지, 삼위일체를 믿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기에 한 하나님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가, 세 인격체가 있음을 믿습니다. 분명히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본래 속성상 한 분이지만 세 분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까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그 아들로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으로서 하늘에서는 성부요, 땅에 오셨을 때는 성자요, 우리 마음에 오실 때는 성령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형편에 따라서 모양이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양태론이라고 하는 이론입니다.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때는 성령님이 되시기에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나 지금 그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구원관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 번만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주문을 외듯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구원 받은 날짜와 시간을 모르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는 정말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가르칩니다. 이 같은 말들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주장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런 자들을 만나면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갈라서라, 쫓아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니 출교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초신자나 순진한 자 즉 분별력이 없는 미성숙한 성도를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입으로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야망 곧 부와 명예와 권력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욕심쟁이들 입니다. 이교도의 교주들이나 이단의 우두머리들을 보세요.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겸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만 따라와 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하고 욕하면 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순진한(naive)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까?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합니다. 부드러운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아첨과 아부하는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냥 덮어두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속히 쫓아내야 합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두었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칩니다. 불씨가 보이면 바로 발로 밟아서 꺼버려야지 그냥 두면 가라지로 붙어버리게 되고, 교회 전체가 화염에 싸여서 다 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하는 훌륭한 교인들이라는 것을 듣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뻐한다고 합니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9절)고 권면합니다.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잘 따르기에 기뻐하는데,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는 미련하게 굴라고 합니다. 무지하여 판단을 흐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조지폐를 구별해 내려면 진짜 지폐를 잘 알아야 하듯이 분별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속이지 못할 정도로 선해야 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속지 않을 만큼 지혜로워야 합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세상에 보내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누가 이리인지 지혜롭게 분별하고 어찌하든지 불의나 비진리와 타협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고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바울이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고 말했듯이 말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런 영적 전쟁을 하는 우리들에게 격려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0절)! 바울은 메시아가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창 3:15)을 생각하며,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치셨으나, 이제 곧 다시 오셔서 그 꼬리까지 우리의 발 아래서 완전히 상하게 하여 그가 무저갱에,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고통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 복음의 능력 아래 사탄 마귀는 완전히 패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습니다. 로마교회 교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진리를 배웠듯이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웠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다른 것은 다 먹을 수 있어도 선악과는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유혹하러 온 뱀을 잘 살피고 그에게서 떠나야 했습니다. 로마교회 교인들도 미혹하게 하려는 자들을 잘 살피고 떠나야 하듯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를 속인 뱀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배만 섬기는 자였던 것처럼, 로마교회 교인들도 어떤 사람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인지 자기를 섬기는 자인지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뱀의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속아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약간 비틀어서 다르게 말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아첨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교회 교인들도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9-31)고 말입니다. 정말 에베소교회가 바울의 권면을 듣고 이리들을 쫓아낸 것을 나중에 예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고 말입니다. 정말 초대교회는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밖으로는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이 핍박을 했고, 안으로는 이리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헌데 적어도 에베소교회는 참과 거짓을,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여 살피고 거짓을, 비진리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잘 살피고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탄 마귀에게 조금도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틈을 보이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가정을 분열시키고 또 여러 사람을 실족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23년 간 두 번 정도 마귀의 하수인들이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나 우리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자기들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교회라고 다 교회가 이닙니다. 사탄의 교회도 있으며, 천주교회도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성경 중심의 정통 신앙, 보수주의,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우리 교회이기에 이단은 물론이거니와 조금이라도 성경을 훼손하거나, 자유주의 신앙, 혹은 한 쪽으로 치우친 신앙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런 신앙으로 무장되어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려면 교회 교역자들을 신뢰하시면서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십시오.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각종 제자훈련반이나 구역모임에 참석하여 성경을 잘 배우십시오. 그리고 아직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조차 잘 알지 못하여 미성숙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무 설교 CD나 인터넷 설교를 듣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미혹될 수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허물 수 있는 자들이 있나 살펴서 과감하게 쫓아내는 용기가 있기를 원합니다. 순수한 양들만, 알곡들만 모여서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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