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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3-02 (목) 12:1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97    
사탄의 마지막 저항(계 12:13-17)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사탄의 공격으로 늘 긴장관계에 있는 상황이 많습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말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는데, 그 무엇 때문에 서먹서먹한 관계 혹은 불편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사탄의 장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탄이 교회를 핍박하며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천사들에게 패한 후에(7-12절) 땅으로 내려와 남자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핍박하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이, 긴장관계가 조성됩니다.
사실 이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난 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뱀에게 저주하신 내용입니다. 물론 여기서 뱀은 사탄을 가리키며, 뱀의 후손은 사탄의 사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성경의 역사는, 아니 세계의 역사는 바로 이 둘 사이의 전쟁의 역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야 이 전쟁은 끝납니다.
구약시대의 예를 들면, 노아 시대에는 노아와 여덟 식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탄의 종들이 된 타락한 인간들이어서 둘 사이의 긴장이 흐르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홍수로 노아와 그 식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판하였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 시대에는 주로 가나안 족속과 애굽 족속과의 긴장관계였습니다. 그러다가 야곱의 아들들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이 있어서 요셉이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모세 때에는 애굽 바로 왕의 시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은 거의 씨를 말릴 뻔 했습니다. 바로가 남자 아이는 모두 나일 강에다 던져 죽이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가 살아 남게 되어 그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블레셋을 비롯한 주위 나라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태평성대로 끝나는가 했으나 그가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관계를 맺는 바람에 결국 나라는 둘로 나뉘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또한 주위 나라들과 끊임없이 긴장관계로 있다가 앗수르에게, 바벨론에게 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새 언약의 성취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태어나게 되고 신약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탄생 하신 후에도 계속 사탄의 세력들과 전쟁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13절)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후손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치셨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전쟁은 메시아가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오실 메시아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오신 메시아로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 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이미 패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한다면 이미 이긴 전쟁, 이길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뱀은 지금 남은 꼬리를 가지고 공격할 뿐입니다. 저들은 이기려고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 그냥 화가 나서 분풀이로 싸움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때가 얼마 못된 줄 알므로 크게 분을 내어 내려갔음이라”(12절하)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탄에게 지면 되겠습니까? 만약 진다면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를 특별히 보호하십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14절) 하였습니다. 사탄의 핍박을 피해 도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독수리의 두 날개를 주신다는 것은 핍박 중에 신속히 강력한 새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기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고 표현하셨습니다. 즉 기적을 베푸셔서 바로의 군대를 물리치고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14절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핍박을 받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때 비가 오지 않은 3년 반과 같습니다. 이 시간에 교회는 함께 찬송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날개를 받아 날아오르며 광야에서 양육을 받습니다(6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세력을 사용하여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잘 견디어 내면 됩니다. 분명히 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와 인내입니다.

뱀은 여자를 죽일 수 없음을 알고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15-16절) 하였습니다. 여자를 뒤에서 몰래 공격을 하는데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이 여자를 떠내려가게 합니다. 그러나 땅이 여자를 도와서 물을 삼켜버리는 바람에 여자는 안전합니다.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직접 공격하니 안되어서 간접적으로 공격을 합니다. 가짜, 거짓 영이 들어와 더럽히려 합니다. 이단 사상이나 세상적인 것이 파고들어와 흔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땅이 여자를 돕습니다. 아마도 외부적인 요인이 생겨서 교회가 정신을 차리고 그런 거짓 영을, 세상적인 것들을 쫓아낸다는 말입니다. 외적인 환경의 변화를 주어서 물리치게 한다는 뜻입니다. 땅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미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제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됨으로 정신을 차리고 순교할지언정 교회를 지켰습니다.
오늘은 삼일절 98주년 기념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일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궐기 했으나 조선총독부가 물러난 것도 아니고 우리 나라가 독립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탄이 이긴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지 않은, 세계의 어떤 민족 저항운동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 민족이 참여하였습니다. 인도의 간디 운동도 유명하지만 그 운동에는 최상층 브라만 계급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삼일운동은 참여하지 않은 계급이 없는 운동이었습니다. 전국에 거의 동시에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전화와 전보는 일본의 통제를 받았고 파발과 봉화도 접수되었고 철도와 우편도 장악되었고 보부상도 와해되었습니다.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경북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이 운동이 일찍 일어난 동네와 늦게 일어난 동네가 1달 차이 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폭력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간디 운동을 능가한 비폭력 공명정대한 방법이었습니다. 기미독립선언문을 보면, '우리는 ‘일본의 잘못을 탓하려 하지 않노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삼일운동으로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개념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삼일운동 전에는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일운동 전에는 백성들은 왕의 나라라고 했고 나라를 위해 싸운 자들은 왕을 위해 싸웠습니다. 왕을 부모와 같이 여겨 충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 운동 후에는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백성들은 '우리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획기적 전환점을 가진 운동이 없었습니다. 영국 권리청원이나 프랑스의 대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후에도 그와 같은 개념들이 만들어졌지만 이렇게 피지배 식민지 나라에서 명확한 근대성을 만들어 낸 것은 전무후무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우리 기독교인이 삼일 독립운동의 주체였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꽤 되지만 당시 기독교인은 전 국민 1.5%밖에 안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이 314곳에서 일어났는데 그 중 68%가 기독교인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니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참가한 것입니다. 처음 집결 장소가 교회나 기독교 학교였고 주도하는 사람들이 장로와 목사와 교사와 기독학생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의 민족대표 33명 중 16명이 목사와 장로였습니다. 독립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혔는데 종교인들 가운데 80%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사탄의 세력에 저항했던 그들이었습니다. 믿는 자들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해방이 되고 나서도 5년이 지나 또 한국전쟁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의 큰 박해를 치르고 난 다음 정말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한국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면서 비상하였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지금까지의 모습은 또 한번의 큰 외적인 어려움이 나타날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7절)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한번 패하였다고 그냥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더 화가 나서 싸우려고 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무너뜨리려고, 싸우려고 합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이 세상 불신자들과는 다른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상대로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섰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대대적으로 한번 싸워보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마지막 때가 되면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숨어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사탄의 세력과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사탄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던, 아니 드러내던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약간 힘들게 할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세력은 단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히려 사탄의 핍박이 올 때 우리는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하늘 위로 오르며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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