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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3-13 (월) 05:3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91    
천사보다 훨씬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히 1:4-14)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삼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고 한다면 천사의 존재도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직접적으로 천사를 108번 언급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165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특별한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또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함입니다(히 1:14). 천사들은 영물(spirit beings)입니다. 육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는 합니다. 그래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고 아브라함의 예(창 18장)를 들었습니다. 때로는 주님의 부활을 알리던 천사의 모습을 묘사한,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 28:4) 한 것처럼 빛난 영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주 영특하며,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기뻐한다고 했으니 감정도 있습니다(눅 15:10).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도 합니다(마 1:20-23). 사람보다 먼저 창조되었으며, 영물이기에 죽지를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헌데 삼분의 일이 타락하여 사탄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계 12:4). 그래서 소위 귀신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문제는 당시 유대인들은 이 천사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여 만든 유대인들의 전통(유전)인 미쉬나나 탈무드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주위에 천사들이 둘러서 천사들이 하나님과 상의하여 일을 하며,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조차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골 2:18)고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천사들 중 하나 정도로 여기거나 가장 높은 천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가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영은 거룩하고 육은 타락했다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주장하는 이원론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천사들의 존재를 믿되,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들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바로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인이 되시며, 창조주이시며,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며, 그 영광의 광채이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뛰어난 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심지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천사들보다도 우리 예수님이 비교할 수 조차 없는 훨씬 탁월한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이기에 성경을 인용하면서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타이틀이 천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더욱 아름다운 이름으로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말씀입니다.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4절)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천사 정도로 알고 이름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타이틀이 다릅니다. 이미 2절에서도 언급하였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시편 2:7과 사무엘하 7:14을 인용하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5절) 하였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탄생을 나단 선지자가 예언하였었습니다(삼하 7:14). 하나님께서는 천사에게는 아들이라고 한 적이 없고, 낳았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를 아들로, 양자 삼겠다고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천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를 갖지는 못하였습니다.
둘째, 주님은 천사들이 예배해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97:7과 신명기 32:43의 헬라어 70인역(LXX)을 인용하여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6절)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게 되어 있는데, 그 아들에게도 예배를 해야 한다면 곧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경배했다고 했습니다(눅 2:8-15). 다시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천군천사가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을 말입니다(계 5:11-12).
천사들은 다만 바람처럼, 불꽃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편 104:4을 인용하면서,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전령과도 같이 말입니다.
셋째, 주님은 그 위엄과 권위에 있어서, 본질상 천사보다 뛰어납니다. 시편 45:6-7을 인용하여,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 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8-9절) 하였습니다. ‘홀(scepter)’은 왕위를 뜻합니다. 왕권을 가지고 영원히, 공평하게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천사는 그런 권세가 없습니다. 왕권을 가지신 주님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십니다. 빛이시기에 어두움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진리이시기에 거짓을 모르십니다. 사랑이시기에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성도들은 그 마음에 사랑이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어떤 부류들보다 탁월한 것은 당연합니다.
넷째, 주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시편 102:25-27을 인용하여,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10-12절)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는 완전히 멸망할 날이 옵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피조물인 천사들도 변합니다. 타락하여 사탄 마귀의 종이 된 천사들은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마 25:41).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고 하였습니다. 견고한 반석이십니다. 영원히 신뢰할 분이십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주님은 천사들보다도 그 능력이 뛰어납니다. 시편 110:1을 인용하여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13절) 하였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그 권세로, 그 능력으로 원수인 사탄 마귀를 발등상(footstool)이 되게 하십니다. 이미 그 머리를 치신 주님께서 이제 곧 그 꼬리조차 완전히 짓밟을 날이 옵니다.
반면에 천사들은 우리 주님의 종의 역할을 합니다. “모든 천사들을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4절) 하였듯이 말입니다. 즉 천사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마치 야고보 사도를 죽인 헤롯 왕이 베드로까지 잡아 감옥에 넣었을 때 주님의 사자가 베드로를 구해주었듯이 말입니다(행 12:7-10).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들을 돌보시고 지키도록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십니까? 하늘의 어떤 천사의 이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훨씬 탁월한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찬양합니까?
물론 우리는 천사들이 오늘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영적인 존재이므로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돌보며, 돕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결코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타락한 천사장, 사탄 마귀를 경배하는 무리들이 있기는 합니다. 사탄 교회(Satan Church) 교인들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 어떤 천사들도 우리 주님을 경배하도록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놀라운 이름이요, 지혜와 권능의 이름이요, 사랑과 구원의 이름이요, 치료와 위로의 이름입니다. 이유는 우리 주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군천사들조차 경배해야 할 분이요, 그 위엄과 권위는 하나님과 동일하며 본질상 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합니다. 피조물들과 달리 주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신실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은 엄청나서 사탄 마귀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물론 이 말씀이 아무거나 내가 원하는 것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주신 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며,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말입니다. 또한 그 이름에 능력이 있어서 사탄 마귀를 물리칠 때도, 귀신을 쫓아낼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니다. 때로는 육체의 질병이나 영혼의 질병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죄 사함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그 놀라운 이름을 믿게 하시고, 그 이름을 허락하셔서 그 능력을 체험하고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서 험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삽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능력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삽니다. 고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유명한 성 프란시스코처럼 이렇게 기도하며 행하고 삽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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