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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3-20 (월) 05: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81    
하나님의 선물을 무시하지 마십시오(히 2:1-4)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말 세상의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고 소중한, 아니 가장 중요한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귀한 선물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 말하며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주님에게 헌신하지 못합니다. 선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시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복음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바로 알고, 깨닫고, 믿고 있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세주(Savior)와 주(Lord)로 받아들이며 삶을 주님에게 드리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즉 그 큰 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고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고 그냥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알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큰 구원의 선물을 등한히 여긴다고 말하며,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3절상)라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 ‘우리’라고 1인칭 복수를 사용한 것은 나라와 인종을 초월하여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사람 모두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구원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와 주로 받아들이면서, 그 구원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까? 왜 우리 자신을 주님에게 헌신해야 합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1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러므로’는 1장 전체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이미 지난 2주일에 걸쳐서 말씀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인이 되시며, 창조주이시며, 하나님 본체이며, 그 영광의 광채이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뛰어난 분입니다. 심지어 천사들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는 훨씬 탁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을 선물로 주셨는데 누가 거절한다는 말입니까? 누가 가볍게, 등한히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정말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가 주의를 기울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만약 구원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며 무시한다면 앞으로 무시무시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2-3절상)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때때로 천사들이 전한 율법의 말씀을 어겨 범죄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공변된(공평한, just) 보응(형벌)을 받은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어긴 자들에게 그 죄악이 돌아가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민 15:31; 참고- 레 24:14-16)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우상을 섬기거나, 간음을 하거나 하나님을 모독한 자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원어에 의하면 여기 ‘범죄함(violation or transgression)’은 ‘의지적으로 선을 넘다’라는 뜻이며, ‘순종치 아니함(disobedience)’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를 않고, 즉 귀를 막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초청, 명령, 경고를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적극적인 죄라고 하면 하나는 수동적인 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죄에 대하여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과거에 심판하셨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등한히 여기며 무시하는 자를 심판하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밞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8-29)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다면 어떻게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수 있겠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도 하며, 공의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정말 지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하셨고,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45)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죄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죄는 벌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옥을 무저갱(Abyss, 계 9:11; 11:7) 또는 유황불 붙는 못(계 19:20)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천국의 상급에 차이가 있듯이 지옥의 형벌에도 차이는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청지기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 12:47-48상)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동안 빛을, 은혜를 많은 받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였어야 했고, 그렇지 못했으면 그에 상응한 보응이, 심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선물을 등한히 여기면 안될 셋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확증하신(confirm)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님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3절하-4절)고 하였습니다. 즉 구원의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말씀한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인데, 하나님도 확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고 하였습니다. 주님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며, 구세주이며, 주가 되심을 말씀하셨고, 권능과 기적을 행하시면서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예수님을 보고,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아니 이미 앞서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히 12:1). 바로 믿음장인 11장에 등장한 수많은 믿음의 위대한 선배들을 말합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뜻을 따라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표적들(signs), 기사들(wonders), 그리고 여러 가지 능력, 기적들(miracles)을 보여주시며 구원의 복음을 확증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심으로 확증하였습니다. 즉 성령님의 사역으로 구원의 복음이 확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체험이 있으신 분들은 결코 구원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로 말미암아 온 세계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 주신 구원, 만세 전에 작정하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은 바로 하나님의 구속사(Redemptive History)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창조사역도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에는 어떤 희생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구원 역사에는 큰 희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임을 당하는 희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이 세상 역사는 구속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이 큰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모든 사건들이 바로 이 구원을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분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을 너무 경솔히, 등한히 취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희생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무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낫겠지 하고 교회를 다닙니다만, 복음 때문에 희생하고 손해를 보며 어려움을 참아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저 받았다고만 생각해서 그런지 그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구원의 선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자기에게 이익이 안되면 신앙을 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보다 더 잘 살기 위하여 얼마든지 신앙을 버립니다. 진리의 말씀보다는 돈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예배보다는 취미생활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보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보다 자기 자녀가, 자기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이 진짜입니까?
참 신앙은 구원은 거저 받았지만, 그 구원의 선물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잘 깨닫고 있기에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다 합한다 해도 구원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다 얻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7)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선물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등한히 여길 수 없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정말 만유의 주인이 되십니까?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십니까? 창조주이시며, 하나님 본체이며, 그 영광의 광채이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심지어 천사들보다도 우리 예수님이 비교할 수 조차 없는 훨씬 탁월한 분입니까? 그런 분이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하여져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구원을 가볍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렇게 구원을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지옥의 심판이 영원히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정말 지옥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또한 우리 주님께서 먼저 확증하셨고, 주님의 수많은 제자들이 확증을 했고, 하나님께서도 많은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확증을 했는데 어떻게 구원의 선물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성령님까지 보내셔서 수많은 증거를 보이시고 확증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구원의 선물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즐겁게 주님께 헌신하여 드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무엇이 아깝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사랑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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