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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6-01 (목) 23:3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510    
구속함을 얻은 144,000의 새노래(계 14:1-5)
하나님 나라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우리에게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 외에, 이 세상 삶에서도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비록 믿음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돌보심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들의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마귀를 상징하는 붉은 용의 공격(12장)과 그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의 공격(13장)에 대하여 계시한 후, 14장에서 사탄 마귀의 공격을 잘 이겨낸 성도들에게 앞으로 어떤 영광을 누리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훗날 있을 놀라운 영광을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오늘 만나는 어려움을 이겨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리 핍박이 심해도 구원의 감격을 생각하며 새 노래를 부르며 견딜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명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절) 하였습니다. 여기 시온산은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은 주후 70년에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신약의 교회, 기독교 신앙 공동체를 말합니다.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루살렘이나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요 4장).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6:19). 교회에 어린양이 서있습니다.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리지 못하며 강하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사탄 마귀가 교회에 속한 자를 무너뜨리려고 하려면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권속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144,000명의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에게는 교회만큼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과 천사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교회를, 믿음의 공동체를 이탈하게 되면 큰 일인 것입니다. 거기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겸손이 있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가장 안전한 시온산입니다. 물론 여기 144,000은 구원 받은 모든 성도를 뜻합니다(7:4). 사탄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666의 표를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았지만(13:16-17),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은 이마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성령의 인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우선 새 노래의 찬양을 부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2-3절) 하였습니다. 즉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많은 물소리 같습니다. 아주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큰 뇌성과도 같습니다. 확신에 찬 큰 노래라는 뜻입니다. 또한 거문고 타는 소리와 같습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구속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면 배울 수가 없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배워서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배울 수 없는 것은 노래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노래의 내용 때문입니다. 노래의 주제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의 구원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에 감사와 감격이 들어있는 노래입니다. 그 예가 15장에 나오는데, 모세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15:3-4) 하였습니다. 이는 출애굽한 후에 모세가 찬양한 ‘새노래’, 출애굽기 15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즉 찬양은 곡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사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르는 자의 감격이 중요합니다. 나를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항상 찬양합니다. 새벽에도 찬양합니다. 낮에도 찬양합니다. 밤에도 찬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사 43:21). 찬양으로 기도하고, 찬양으로 감사하고, 찬양으로 서로 위로합니다. 우리의 찬양 가운데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의미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 노래와 다른 점입니다. 세상 노래도 우리의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도 나게 하고,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사랑을 노래합니다만 다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찬양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그 은혜를, 그 진리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속함을 얻지 못한 사람은 절대 부를 수 없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새 노래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시 149:1)라고 한 것입니다.

   또 144,000의 구속함을 얻은 백성의 다른 특징은 순결(purity)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4절상)고 하였습니다. 여기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성적인 순결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영적으로 순결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의 모습 말입니다. 세상 것과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하여 안팎으로 심한 핍박이 있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지조와 절개를 지킵니다. 그것이 바로 정절이 있는 자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의 경고를 마음에 새깁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그 입의 말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5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흠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 진실(sincerity)이 있어 주님을 증거한다는 말입니다. 생활 습관이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에 선한 영향력이 있어서 복음의 증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수로 거짓말하거나 흠이 있는 행동을 했을 때에는 심령에 견디지 못하는 고통을 겪으며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이 씻기 원합니다.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가운데도 그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마치 슈베르트나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말입니다. 이유는 지휘자인 주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함을 따라갑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4절하) 하였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자가 아닙니다. 사탄 마귀의 인도를 받지 않습니다. 가는 방향과 목적지가 다릅니다. 참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 갑니다. 참 목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때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실 줄 믿고 따라갑니다. 즉 온전히 주님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익은 열매를 주님께 드립니다. 사실 처음 익은 열매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바쳐진 존재이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리라”(마 4:19)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도구가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를 믿음의 공동체로 묶어주신 주님의 몸인 교회가 가장 안전한 곳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성령의 은혜가 있으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셔서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철저하게 교회를 중심하고 사시면 여러분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구속함을 얻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늘 새 노래의 찬양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에 감사가 넘치며, 기도와 간구가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담기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이, 삶이 순수하고 순결하기 바랍니다. 비록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주님 사랑하며, 말씀 사랑하며 사십시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십시오. 아골 골짝 빈들이라도 가라면 가십시오. 온전히 신뢰하며 그 뜻을 따라 가십시오. 잠시 후면 주님 뵈올 날이 옵니다.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내면 정말 좋은 날이, 복된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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