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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6-12 (월) 09: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44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 3:7-19)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한지, 아니면 부드러운지 이야기를 해 보면 압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답답하고, 때로는 안타깝습니다. 어떤 때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조금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마음도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가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기 원합니다(벧후 3:9).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굳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죄의 대가를 영원히 치러야 합니다. 무시무시한 불과 유황의 못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마귀와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경고가 나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유대인들에게 모세보다 훨씬 탁월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처음 믿을 때 자랑했던 복음의 소망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으라고 하였습니다(1-6절). 그리고는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강퍅한 마음으로 광야에서 모세를, 하나님을 대적하여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히브리서 기자는 출애굽하고 나서 광야에서 40년 방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들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편 95편 7절 하반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7-11절) 하였습니다.
   우선 시편의 말씀을 성령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씀(딤후 3:16)과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이라는 말씀(벧후 1:21)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날”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마치 40년 광야생활의 출애굽 1세대들처럼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우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쉽게 진노를 퍼부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 145:8, 103:8; 출 34:6; 민 14:8 등)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듣지 않으면, 내일을 보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광야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test), 증험하였다(try)고 합니다. 이미 출애굽을 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위하여 많은 기적을 베풀었고, 광야 생활에서도 만나와 메추라기, 불 기둥과 구름기둥의 기적을 보았건만 계속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95편에서는 “므리바에서, 맛사의 날과 같이”(8절)라고 구체적으로 지명을 말했는데, 바로 물이 없다고 힘들다고 불평하던 곳을 말합니다(출 17장). 므리바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다투다’ 이며, 맛사의 뜻은 ‘시험하다’ 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이시며,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방인들이 그런다면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경험을 하고서도 마음이 강퍅하고 목이 굳어서 감히 하나님을 가지고 장난을 했으니 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항상 마음이 미혹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번역은 항상 악한 길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세상의 유혹에 그냥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돈, 명예, 권력, 정욕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치 마음이 강퍅했던 애굽의 바로 왕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기적의 재앙을 겪으면서도 마음이 강퍅하여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다가 홍해 바다에서 그 군대가 다 수장을 당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바로 왕과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적을 보는 게 결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 소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들에게 경고하였듯이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길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좀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을 불평하며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 믿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힘든 일을 만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대적한다면, 시험한다면 참 믿음이 아닌 것이죠. 하나님이 없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면 아닌 것이죠.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그 백성들 중에 죄의 유혹으로 마음이 강퍅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삼가 주의하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12-13절)고 합니다. 여기 ‘형제들아’라고 한 것은 1절에 ‘거룩한 형제들아’와는 다른 의미로 생각됩니다. 만약 정말 거룩한 형제들이라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같은 유대인 동족이기에 형제들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참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니기에 믿지 않는 악심을 품었겠지요. 여기서는 강퍅함을 믿지 않는 악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자라면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살기에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지요. 하나님에게서 멀어질까 염려하며 기도하지요.
   만약 우리 중에 누가 그렇게 마음이 강퍅하여 불신앙으로 악심을 품은 사람이 있으면 오늘 권면하라고 합니다. 이미 7절에서 오늘날이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피차 권면하라”고 하는 것은 나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의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안돼 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교만이 들어가서 넘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14절)고 하였습니다. 이미 6절에서도 복음의 소망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하였듯이, 처음 시작할 때의 확실하게 믿었던 진리의 말씀을, 복음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훗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마음을 끝까지 견고히, 무슨 일에도 흔들리지 말고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지킵니다. 정말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거짓 믿음의 사람은, 마음이 강퍅하고 목이 굳은 사람은 결코 끝까지 못 갑니다.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탄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 다른 마음을 품고 삽니다.
   그래서 함께 한 것 같은데 떨어져 나갑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7-8절 말씀을 15절에 반복합니다. 그리고는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16-17절)! 성령님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백성들이 아니냐? 40년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진노하셨냐? 범죄하여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은 자들이 아니냐고 마치 열 받은 사람모양 토하십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계속 반복되는 죄를 범한 그들이기에 그 땅에 들어가 안식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던 그 조상들이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의 그 축복과 특권을 누렸으면서도 여전히 비참하게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불신앙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데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18-19절)고 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에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맹세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너무나도 확실한, 완전한 진리임을 보여줍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도록,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주시기 위해 맹세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결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2)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2 세대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사람, 처음 마음으로 끝까지 견고히 붙잡은 사람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3)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불신앙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불순종이며, 참 신앙은 말씀에 순종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동의어라고 해도 됩니다. 믿음이 있다면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복음을 믿었을 때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그 마음이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정도에 따라 순종의 차이는 있겠지요.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것이 적다면 아주 초신자요, 어린 아기 신앙인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이라면,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양육을 받습니다.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점점 신앙이 자라면서 말씀에 대하여 더욱 순종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직분을 받아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적다면 초신자인 것입니다. 아니면 참 신자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훈련을 시키는데, 말씀으로 양육하는데 자라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자라게 되어 있고, 점점 더욱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면 마음 아파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믿음은 헌신(commitment)이 따르는 것입니다. 헌신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을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적으로(intellectually) 깨닫고, 정적으로(emotionally) 받아들이며, 의지적(willingly)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 맡기는 것이, 헌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최선을 다해 순종합니다.
   그냥 단순히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Savior)일 뿐만 아니라 주님(Lord)이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후 사도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굳은 자들, 세상의 미혹의 영으로 말미암아 목이 곧은 자들은 그렇게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라고 오늘 본문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제발 광야 40년 방황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에 못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죽은 후에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오늘이라고 했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우리 중에 누가 내일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기쁘고 즐겁게, 축복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주님께 헌신을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 사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말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주님께 헌신한 마음이 흔들리지 말도록 말입니다. 그리하여 다같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주님을 눈으로 뵈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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