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83,953
오늘방문 : 2853
어제방문 : 2861
전체글등록 : 3,860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6-23 (금) 00:0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24    
사랑의 사역(마 4:23-25)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말과 행실, 그리고 사역에 예수님을 온전히 닮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모든 섬김도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하셨던 대로 해야 합니다. 그 태도나 방법을 주님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의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섬김의 기본태도는 영혼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의 놀라운 기적 행하심이 그가 메시아, 위대한 왕인 것을 나타냅니다. 사복음서 모든 내용의 초점이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에 있습니다.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가 하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즉 만왕의 왕 되신 주님의 사역이 그 말씀(words)과 그의 역사(works)에 있음을 종합한 것입니다. 주님의 Credentials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르치시며(teaching), 복음을 전파하시며(preaching), 병든 자를 고치시는(healing) 사역입니다. 물론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선교사역도 영혼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5-36)고 다시 주님의 사역을 요약한 것처럼 말입니다. 민망히 여기셨다는 것이 바로 열정(compassion),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이 사역을 위하여 앞서 동역자들을,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4:18-22).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그들을 부르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정확한 계획 속에 그의 신성(divinity)을 나타내는 말씀과 역사를 보여 줍니다. 갈릴리에서 있었던 만왕의 왕의 사역들은 유명한 산상수훈의 말씀 사역(5-7장)과 그가 베푸신 기적의 내용(8-9장)입니다.

첫째는,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23절 상반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라고 합니다. 저희 회당들(synagogues)에서 가르치셨다 함으로 비록 이방인들과 함께 사는 갈릴리 지역이지만 예수님의 주된 말씀 사역지는 역시 유대인의 회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하면서 시작하여 말라기 선지자 이후 주님 오시기 전 400년 암흑기에 확장된 것으로 믿어집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삶에서 회당은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전이 가장 거룩한 예배 장소이지만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기에 그 성전을 그들의 삶에 그렇게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이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으로 삶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회당은 그들의 예배 장소였을 뿐 아니라, 교육을 받는 장소요, 함께 교제하는 장소요, 법이 집행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보통 10명의 유대인 장로들이 모이면 회당이 구성되었습니다. 예배는 매 안식일 즉 금요일 해지는 시간부터 토요일 해지는 시간까지 드려졌으며, 그 시간에는 모세오경(Torah) 가운데 한 부분이 읽혀지고, 선지서 가운데 한 부분이 읽혀집니다. 그리고 기도와 찬양, 응답하는 시간이 있은 후에 랍비에 의하여 성경 한 부분이 강해됩니다. 때때로 초빙한 랍비나 방문하는 서기관 등, 율법학자들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예수님도, 바울도 초청된 그 시간을 사용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눅 4:16-17; 행 13:15-16).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를 받을 때에 회당 지도자들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회중들 사이의 모든 법적 문제를 처리하였습니다. 회당은 또한 유대 소년의 공립학교 역할을 감당하며 탈무드를 가르치고, 읽기, 쓰기와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장성한 유대인들에게는 수준 높은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회당이 예수님 말씀 사역의 첫 강단이 되었습니다. 공생애 사역 초기에는 어느 회당을 가든지 방문하는 랍비로서 환영을 받았던 주님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질문에 대답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회당에서 신실한 유대인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도 몇 몇 남은 자와 같은 신실한 유대인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받아 들이기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에 ‘가르치고(dida,skw)’의 뜻은 ‘정확한 정보, 지식을 전달한다’라는 의미로 그 내용(content)에 초첨이 있습니다. 당시 헬라 사람들이 즐겨 하던 여러 철학적 사고나 의견들을 토론하는 형식이 아닙니다(참고- 행 17:21). 회당에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성경 강해였습니다. 읽혀진 성경 말씀에 대하여 구절 혹은 단락을 풀어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말씀을 배우려고 하여야 하구요. 이 말씀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멕시코 선교사역도 이미 세워진 교회당에서 합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둘째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23절 중간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전파한다(khru,ssw, proclaim)는 설교한다(preaching)와 같은 말로 ‘선포한다’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강해하고 설명하실 뿐 아니라, 천국 복음 즉,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왕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심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그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주님의 설교에서는 복음이, 하나님 나라가, 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중심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경제 이야기, 사회 문제, 개인적인 논쟁 등이 설교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와 심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있었습니다. 주님 설교 사역이 유대 지도자들의 저항과 거역에 부딪히자 점점 그 내용이 죄에 대한 심판으로 치우쳐 갔습니다. 저들의 위선적이고 사악한 마음을 보게 되신 주님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왕되신 주님이 처음 외친 복음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믿는 자에게 허락하신 은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였습니다. 즉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입니다. 누구나 왕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허락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좋은 소식입니다. 유대인들은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헬라(그리이스), 메데와 바사(페르시아), 바벨론 등의 나라들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왕으로서 그들을 직접 통치하심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위 이방나라들처럼 왕을 달라고 하였습니다(삼상 12:12). 그러다가 그 왕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죄악 가운데 다스리기에 그들에게는 잠깐 동안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다가 오랜 세월을 부패와 타락 속에 슬픔과 종속된 삶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설교하시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나라를 그들 앞에 보여줄 왕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 왕의 복음을 거절하며, 그 하나님 나라를 거절한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도 이 구원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죄와 심판에 대한 선포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선포도 아울러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미 영적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이제 곧 우리 눈에 보이게 될 나라로 임할 것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뭇 심령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준비하도록 말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가든교회를 세워 주신 줄로 믿습니다. 단기선교사역도 결국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셋째로, 병을 고치시는 사역입니다.
   23절 하반절부터 24절에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된 나쁜 습관으로 인하여 병에 걸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로 병을 얻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실 때에 육체적 질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질병과 고통이 반드시 그 사람의 죄나 무지함으로 인한 것, 혹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예가 욥입니다(욥 1:1).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이가 자신의 죄가 아니면 부모의 죄로 인함이라고 가정할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사역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 만으로도 그가 참 메시아임이 충분하였었습니다. 제자들도 기적을 보기 전에 말씀만 듣고 그를 좇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말씀으로만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많은 능력으로도 또한 참 메시아임을 보이셨습니다. 그의 말씀처럼 그의 병 고치시는 기적도 앞으로 도래할 그 영광스러운 나라가 어떠할 것인지를 맛보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 주님이 고쳐준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를 살펴보면, 첫째 질병은 귀신에 들려서 고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신약 성경에 사탄 마귀가 부리는 악한 영들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병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귀신을 좇아 내는 능력을 받은 은사를 설명하기도 하고(고전 12:10,28-29), 하나님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두운 사탄의 권세와 싸워 이김이 나오기도 합니다(눅 9:1; 10:17-19; 행 8:6-7). 둘째 질병은 간질병입니다. 경기, 경련을 일으키는 병으로 중심 신경계통의 문제로 발생하는 병입니다. 셋째 질병은 중풍병과 같은 각색 질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고치신 병은 영적인 병, 정신적인 병, 육신적인 병 모두를 가리킵니다. 주님의 능력이 이 모든 병을 고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병에 걸린 자들을 고치시는 그의 사역은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로, 다시 한번 그가 확실히 구약에서 예언되어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것이며(사 35:5-10; 61:1-3), 둘째로, 이 모든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 열정을 나타내며, 셋째로, 이 기적들은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보여짐의 증거인 것입니다. 열두 제자에게 그 권능을 주시고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좇아 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7-8)고 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고 하였습니다.
   그의 절대적인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사역 기간에 누구든지 주께로 나오는 자는 예외없이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동일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그의 선하신 뜻 가운데 고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주님께서 말씀으로, 혹은 자신의 몸에 닿기만 하여도 직접 고치셨고, 기도도 없이 고치셨습니다. 또한 즉각 나음을 입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낫게 하셨습니다. 주께로 나오는 자는 그의 믿음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아니 주위 사람에 이끌린 사람조차 낫게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조차 낫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병 고치는 기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는 자들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오늘날도 우리에게 병 고치는 은사가 없어도,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들의 기도를 통하여서도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하여야 할 사명 가운데 하나가 영적, 정신적, 육적 병든 자들을 위하여 주께서 고쳐 주시길 기도하여야 합니다. 의사를 사용하시든지, 좋은 약을 사용하시든지 오늘도 기적을 베푸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교사역도 치료사역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이 함께 사역을 합니다. 물론 선교지에서의 수술기구나 약들도 제한적입니다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시면 고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 그들에게 우리가 주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그 심령들에게 회복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단기선교팀 여러분!
만왕의 왕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주로 하셨던 일들을 오늘 살펴 보았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설교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워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 복음에 대하여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와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위로하고 기도로 주께 고쳐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의사를 사용하든지 약을 사용하든지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영혼들을 고쳐달라고 부르짖어 그들이 강건하게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이 있고, 십자가의 복음, 부활 승천하셔서 다시 오시고자 약속하신 주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가 있고, 각종 질병 가운데 고침을 받는 곳에 참으로 주님이 역사하심을 뭇 사람들이 보고 모여 주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25절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무리들 가운데 잘못 믿고 따라와 대부분이 주님을 버리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따라오는 허다한 무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선교사역 위에 많은 사람이 은혜를 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로서 이 사랑의 선교사역, 가르치고, 복음을 선포하고, 아픈 자들을 고치는, 이 일을 감당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23 주일설교 세례 요한처럼 (마 11:7-15) 한태일 목사 2022-01-16 600
1222 주일설교 내가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2-14) 한태일 목사 2022-01-09 623
1221 수요설교 서로 비방하지 말라 (약 4:11-12) 한태일 목사 2022-01-06 626
1220 주일설교 주님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 선교적 삶을 살자 (벧전 2:9) 한태일 목사 2022-01-05 629
1219 주일설교 하나님 앞에 성결하십니까? (출 39:27-31) 한태일 목사 2021-12-26 728
1218 주일설교 무궁한 평강을 더하는 하나님의 열심 (사 9:6-7) 한태일 목사 2021-12-19 888
1217 수요설교 임마누엘의 성탄 (요 1:14) 한태일 목사 2021-12-16 617
1216 주일설교 화목하게 하는 직책 (고후 5:18-21) 한태일 목사 2021-12-12 753
1215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27-30) 한태일 목사 2021-12-09 671
1214 주일설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고전 4:1-5) 한태일 목사 2021-12-05 640
1213 수요설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약 4:6-10) 한태일 목사 2021-12-02 605
1212 주일설교 환란과 핍박 중에도 (눅 21:12-19) 한태일 목사 2021-11-28 677
1211 주일설교 감사해야 할 이유 (2) (시 100:1-5) 한태일 목사 2021-11-21 602
1210 주일설교 감사해야 할 이유 (시 93:1-5) 한태일 목사 2021-11-14 611
1209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들 (1) (눅 21:5-11) 한태일 목사 2021-11-07 719
1208 수요설교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 하십니까? (약 4:4-6) 한태일 목사 2021-11-05 741
1,,,1112131415161718192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