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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7-24 (월) 05: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49    
심령의 수술(히 4:12-13)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으며, 실제로 그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기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하십니까?
   한번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본 유대 서기관들이 비방을 하니까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가 없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 사함을 원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함을 의사와 환자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병 들었음을 알고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의사가 수술이나 합당한 치료와 약을 통하여 병을 고침을 받지만, 그렇지 않고 병이 있음을 알면서도 의사를 찾지 않거나 아예 병을 무시하거나, 병이 들었음을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인간은 죽을 병이 걸려 있습니다.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의원이신 예수님이 심령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유명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물론 강퍅한 마음(heart)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는 약이나 가벼운 수술으로는 고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심장의 혈관이 완전히 막히고 상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죽어가는 경우는 단순히 혈관을 뚫는 수술로는 못 살립니다. 새 심장을 이식해야 하는 대 수술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소서”(시 51:10)!
   만약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있어서 수술대에 여러분의 심령을 내어 맡김으로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새 심령으로 이식 받아 새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자들은 심령 이식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born again) 새 심장(heart)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의 인침을 받고 성령이 내주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주님을 믿지 못하여 복음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안식(영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히 4:1-11). 그리고 이미 안식을 맛본 자들, 영생을 가진 자들에게도 경고하기를 순종하지 않음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영생을 얻은 사람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 자꾸 믿지 않는 자들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비성경적인 말과 행동을 합니까? 아니면 스스로 잘못된 생각과 말 때문에 힘들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자유 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습니까? 자꾸 무엇이 눌리는 듯한 삶은 아닙니까?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셨습니다. 바로 죄의 권세, 사탄 마귀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히브리서 기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2절)라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일반적인 하나님의 메시지를 뜻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거나 꿈이나 천사들을 통하여, 실제로 기적들을 보여주시면서 인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천사들이나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주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은 기록된 66권의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 설명해주는 설교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전 2:13)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성숙한 성도들과 대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도 있고, 여러분 스스로 경건의 시간을 하다가 말씀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건을 통하여 그 음성을 들려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을 심령의 수술 도구로 사용하시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고 살아계시니 당연하지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이 말씀은 오늘도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에 진실로 역사합니다. 감동을 주고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힘, 곧 에너지가 있어 역동적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계속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 딱딱한 심령이라도 옥토로 변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치 물을 계속 끓이면 수증기가 힘을 발휘하듯이 말입니다. 옛날 기차들은 수증기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폭풍도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상처로 분노하고 고민하는 심령에, 괴로워하며 절망하는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심령에 위로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합니다. 수술칼처럼 아주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을, 관절과 골수까지라도 수술이 가능하도록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인간이 꿰뚫을 수 없는 것까지 말입니다. 우리의 나쁜 습관이나 태도, 닫힌 마음, 거역하는 영, 탐욕, 탐심, 위선, 미움, 용서하지 못하는 영 등을 다 찔러 잘라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을 감찰합니다. 분석합니다. 마치 X ray 같이, MRI 같이 다 드러나게 합니다. 사람의 뜻까지, 정신까지 말입니다. 아니 속내와 동기까지 다 말입니다. 그래서 분별합니다. 분리합니다. 즉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세상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리합니다. 구분이 됩니다. 이 일이 사탄의 장난인지 아닌지, 이것이 사탄에게 속한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제어할 능력이 생깁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숨긴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우리는 병원에 가기를, 의사를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유는 혹시 암과 같은 나쁜 소식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사실(fact)을 직시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상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는데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야 합니다. 의사 앞에서 서면 벌거벗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창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옵소서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라고 말씀 앞에 벌거벗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게 됩니다.
   여기 13절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는 단어는 옛날 제사장들이 희생제물을 잡을 때 그 짐승의 목을 꼭 잡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의 목을 꽉 잡고 꼼짝 못하게 하듯이 말입니다. 즉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꼼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서론에 언급하였듯이 아직도 심령 이식수술을 받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으시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을 열고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새 심장의 새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미 심령 이식수술을 받으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여러분들! 아직도 군데 군데 치료를 받아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거벗고 자신을 다 내려 놓으십시오. 수술해 달라고 하십시오. 잘라낼 것을 과감히 잘라내도록 하십시오. 완벽한 의사, 못 고치실 것이 없으신 의사에게 내어 맡기십시오. 세상 의사들은 오진도 하고 수술도 잘못해서 더 나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이런 완벽한 의사와 싸우지 마십시오. 논쟁하지 마십시오. 수술하시려고 내미시는 손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아니 오만하게 어디를 어떻게 수술하시라고 조언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감히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에게 어떻게 하시라고 요구하겠습니까? 혹은 수술하려고 손을 대는데 소리를 지르거나 그의 손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전적으로 의존하셔도 됩니다. 때로 수술을 받을 때 아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십니다(고전 10:13). 주님은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온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녀가 병들어 아픈데 그냥 두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자녀를 고쳐주려고 할 것입니다.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이 건강하여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아 누리기 원합니다.
   정말 여러분은 그렇게 건강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경 66권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하십시오. 그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이 누구신지 잘 알게 되어 삼위의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내게 버려야 할 죄가 있는지 깨달아 진정으로 회개하며, 붙들어야 할 약속의 말씀을 주장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엑기스가 우리의 심령에서 온 몸으로 전이가 되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마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셨듯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함으로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예리한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심령 곳곳을 수술하여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꿰뚫고 있습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자아, 내 고집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 내려놓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건강하게 해 주시고, 온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교훈(teaching)하셔서 무엇이 주님의 도인지 가르쳐 주시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책망(rebuke)하십니다.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르게 훈련시키시고(training), 믿는 자로서 의(righteousness)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온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남은 인생을 그렇게 말씀과 함께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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