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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8-21 (월) 05:4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410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 6:1-8)



사람들이 교회를 수년간 다니면서 복음의 말씀을 자주 들었고, 주일을 빠지지 않으며 심지어 봉사도 하는 성실한 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자신의 주님으로 믿고 자신을 내어맡기는 참된 성도가 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분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믿음의 초보에 머무르는 어린아이 신앙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의 신앙으로 자라가야 한다고 했습니다(5:11-14) 죽는 날까지 말입니다. 그러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단단한 영적 음식도 잘 먹고 소화시키며 지속적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매 순간 말씀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고, 고칠 것은 고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하면서 말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는 철들은 자녀처럼 점점 주님의 마음을 더 알아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미성숙한 채로 머물지 말고 완전한 데로, 성숙한 데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반쪽 진리만을 알고 믿기에 자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구원을 받지 못한 심령일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치 산상수훈 설교 가운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여기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믿음이 없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미 5장에서 배운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없어 순종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11절). 사실 믿음과 순종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불순종할 수 없지요. 불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불순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연약하여 실수로 불순종할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그 때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똑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해서 짓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참 믿음이 아니든지, 아니면 어린아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1-2절)고 하였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예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맥상 자꾸 거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보다 성숙한 믿음의 경지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진보를 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초보인 구약성경의 가르침에만 머물고 있는 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고편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예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모형(type) 혹은 그림자(shadow)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뜻은 구약 유대인들이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희생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물을 드린 것으로 회개를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죄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잘 믿지 않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있습니까? 또한 세례들이라고 한 것은 우리가 아는 세례(baptism)가 아니라 구약의 결례식(washings)을 뜻하는 것으로 제사장들이나 희생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 물두멍에 손을 씻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안수도 희생제물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예식을 말합니다. 즉 손을 씻었다고, 희생제물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고 마음이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도 구약에 나타난 교훈들만을 생각하고 거기서 머물지 말고 부활 후에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불신앙 때문에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받을 일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내가 나중에 부활할 것에 대한 사실로만 만족하지 말고 어떤 부활로 주님을 맞이할 것이냐는 말씀입니다. 부끄러운 부활이 될 것인지, 상급을 많이 받는 부활이 될 것인지 생각하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초보적인 반쪽 진리로서는 완전한데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 구약의 교훈들이 확실해 지고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따를 생각을 하지 않고 구약의 교훈들에만 집착한다면 어떻게 참 신앙으로 점점 성숙해져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3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한다’는 뜻은 완전한 데로 나아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셔야 보다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갈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반쪽 진리에만 계속 머문다거나 잠시 하나님을 경험해 보았으나 참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4-6절)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들을 성경학자들 사이에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빛을 체험하고, 은사도 맛보고, 성령 체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도 체험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니, 믿었다가 타락한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의 문제는 다른 성경 말씀과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타락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선물을 사탄 마귀가 빼앗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한번 구원 받으면 절대로 구원은 빼앗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첫 번째 해석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비록 어떤 이들이 예수님의 빛도, 신령한 은사도, 성령도 경험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도 경험했으나 진실로 믿은 것이 아니었기에 타락하여 회개하지 못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도 신약에도 그런 사람들의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할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옆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불신앙으로 안식에 못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따르는 무리들에게 3년 동안의 사역에서 수많은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믿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주옥 같은 설교와 놀라운 기적을 옆에서 경험했더라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참 빛의 비췸도 받았고, 신령한 은사도, 성령님의 하시는 일도 경험해 보았다 하더라도 참 믿음이 아니라면 타락할 수 있고 회개하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고 좋은 것을 경험했어도, 그 크신 능력을 경험했어도 나중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지옥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서 분명히 예수님을 욕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마찬가지입니다(마 12:31). 마치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라고 할 때, “내가 너희를 도저히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그러한 신령한 것을 체험하였어도 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가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나요? 삶의 열매로 아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로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비유로 말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7-8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경험하고, 신령한 은사도 경험하고, 성령님도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이 좋은 줄도 알고,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까지 경험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면, 그의 삶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서 저주를 받아 불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비한 경험도 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아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와 주로 믿고 온전히 몸과 마음을 헌신하여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이생과 내세에 받을 상급이 많습니다. 자신의 세대가 아니면 그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들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 안에 있는 것 같다가 어떤 때는 아닌 사람입니다. 자신의 취향, 입 맛에 따라 주님 안에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맛보고 입으로 고백했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님 멀리 합니다. 마치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 가지는 불에 던져 버린다고 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 떠나지 않습니다. 계속 주님 안에 거합니다. 그래서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이런 경고를 하면서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을 또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믿는 자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핍박이 힘들어서 배교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배교하는 자들은 처음부터 참 믿음이 있었던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아닌지 테스트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십니다. 사탄 마귀가 시험합니다. 욥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진짜 믿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마귀가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욥의 모든 여건이 다 좋고, 부자라서 그렇다고 말입니다. 만약 가난해지고, 여건이 좋지 않게 되면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험해 보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했습니다. 정말 다 빼앗아 갔습니다. 몸에 병까지 얻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참 믿음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어떤 교인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삶의 패턴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던 그대로를 고집합니다. 물론 바꾸면 안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진리에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성도들은 점점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변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더라도 커가면서 변하지 않습니까? 어린아이 얼굴이 그대로 있지 않지요. 몸이 그대로 있습니까? 마음 씀씀이도 그냥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성장해가면서 바뀝니다. 성숙으로의 변화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해갑니다. 점점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그것이 진정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믿기 전의 사고방식, 가치관을 그대로 가진 채 산다고 하면 어쩌면 참 믿음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이 성경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도, 말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애벌레가 껍질을 깨고 나아와야 나비가 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변화를 받게 되면 열매가 나타납니다. 똑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미워할 생각이 들었다가도 금방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사랑하려고 합니다. 미워하는 데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전도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악한 생각을 품고 악한 말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바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 참 믿음이 아니었기에 타락하여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자가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빛을 받았고, 은사도 맛 보았고, 성령체험도 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 좋다는 것과 그 능력을 경험했다면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다고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참 믿음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선한 열매를 맺어 주님께 드립니다.
그러려면 반쪽 진리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더 많은 진리를 깨달으셔야 합니다. 잠깐 맛을 본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계속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알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주님에게 헌신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순종이 가능합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한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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