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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9-11 (월) 11:1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468    
사랑이 여기 있으니(요일 4.9-10)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반론을 제기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과도 같이 소중합니다. 다 아시다시피 사랑에 살고 죽는 인간이 아닙니까? 인생이 아무리 험해도 사랑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부모입니까? 자녀입니까? 친구입니까?
   문제는 인간에게는 이런 남녀의 에로스 사랑이나 형제나 친구의 필레오 사랑이나 부모와 자녀의 스톨게 사랑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완전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어서 육체적인, 정신적인 사랑이 채워진다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영혼의 사랑을 갈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모든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를 찾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에로스나 필레오나 스톨게 사랑으로 그 심령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 사랑을 찾기 전에는 그 심령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을 찾고 알게 된 사람은 다른 인간적인 사랑이 많이 없어도 그 심령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로 그 하나님 사랑이 여기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10절)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찾는 사랑이 여기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는 사랑이 있었으나, 그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시기 위해 인간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입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화목제(물)이라 함은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은 하셔야 했고, 또 한편으로, 사랑이시기에 저들을 용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그에게 모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죄가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사 53:6). 타락한 인간은 마음이 부패하여져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믿거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데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고 하셨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고도 하셨습니다. 정죄라 함은 심판을 뜻합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롬 6:23). 여기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죽으면 끝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이라 함은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정죄(저주)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10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하신 말씀대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을 보내셔서 희생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서론에 언급한 에로스 사랑이나 필레오 사랑이나 스톨게 사랑은 다 조건적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하나님 사랑에 가장 가까운 것이 부모의 사랑이지만 그래도 무조건은 아닙니다. 끝까지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다 큰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식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 무한한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한 사랑은 우리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이해하고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가장 잔인한 형벌이 십자가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주위 사람들이 침을 뱉으며 욕하고 저주하는 가운데 벌거벗긴 채로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 십자가 나무의 큰 못에 의지하여 6시간 정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면서 천천히 죽어가셨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잔인하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잔인한 것은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인간들이 잔인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북쪽 나인이란 성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 성에 사는 과부의 독자였습니다. 죽은 아들 앞에 우는 과부를 보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 하시며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졌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눅 7:11-17). 이는 예수님의 기적을 베푸시는 능력만이 아니라 독자를 잃고 슬퍼하는 과부에 대한 주님의 사랑의 소문이 퍼져서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들이 모여든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바로 아무 조건 없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평생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안 들어보신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는지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개보다 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를 그렇게 사랑을 하면 절대로 주인에게 대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을 위하여 삽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셔서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죽게 하신 십자가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어떻게 내 마음대로 살겠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진리는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도 그랬듯이(사 53장),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말입니다(시 16:10). 우리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나중에 부활할텐데 그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어떤 사람도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가 해결이 안되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석가모니를 통해서, 마호메트를 통해서, 공자를 통해서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지난 2000여년 역사상 우리 예수님만큼 사람들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으며 찬양과 경배를 받는 분이 없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세상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영역에 주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가 주전(BC)과 주후(AD)로 바뀌었으니까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점철된 성경은 믿을만한 세계성서공회의 통계에 의하면 2015년 말까지 전세계적으로 2935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 70억의 인구 가운데 98% 이상이 자기 나라 말의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들 가운데 작년에도 올해도 가장 많이 인쇄가 되고 팔리는 책은 오직 성경입니다. 왜 그렇지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시간이 흐르면 들통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2000여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리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오늘도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정말 교만한 사람입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크신 하나님 사랑의 증거입니다. 예수님 만이 모든 인생이 갖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해답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과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함께 교제하십니다. 물론 영으로 말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 친구나 형제를 통하여 말입니다. 아니 지금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을 여시고 하나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셔서 심판을, 저주를 받지 않게 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지금 온 세상은 온갖 재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도 믿지 않으신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지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시고,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오 하나님! 이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이제까지 잘못한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로 내 마음에 영접합니다. 이제부터 나의 심령을 주장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면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며,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되며 아름답고 존귀한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셔서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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