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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2-14 (월) 23:0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49    
[2/13/05] 거듭나지 아니하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한복음 3:1-15)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구원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한 마디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아주 강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하였습니다(1절). 즉 종교 엘리트이자, 지금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정도 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성도 있었고, 재산도 좀 있었고, 거기에다 권력까지 겸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겉으로 볼 때에는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던 이 사람 속에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빈 공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에 없을 것이 없이 다 있긴 한데 답답함이 그 안에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먼저 주님께 극찬을 늘어 놓습니다(2절). 주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인사치레를 그럴듯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어쩌면 동문서답처럼 들립니다. ‘당신은 위대한 선생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하시니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속으로 무척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한다는 자체가 상식을 벗어나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다는 말이 ‘아니 어떻게 이 늙은 몸으로 어머니 뱃속에 또 들어갑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고 묻습니다(4절). 지성인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으로 엘리트라도 영적으로 무지하면 할 수 없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처음 하신 말씀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 이번에는 거듭난다는 말 대신에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을 들어간다는 말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니고데모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은 육신으로 출생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영으로 출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과 육을 혼돈하지 말아라. 너는 육신으로 태어났을 뿐, 아직도 영으로는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너는 이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 하십니다(6-7절). 예수님께서 이처럼 거듭나는 문제를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한 번 더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너도 인생을 살만치 살았으니 인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니 너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많구나. 너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세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리로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줄을 내가 안다. ‘하나님 나라는 율법을 잘 지키면 들어갈 수 있을까? 얼만큼 잘 지켜야 하나? 전부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는데’ 하면서. 꼭 알아 두어라. 육신으로 사는 것은 서론에 불과하다. 인생의 본론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두번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 곳에는 절대 못 들어간다’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니고데모 한 사람의 관심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특히 인생을 좀 산 사람들은 누구나 실존적 허무감을 느끼게 되면서, ‘인생이 이러다가 끝나는 것인가? 사람이 늙어서 나중에 자식들한테 천대받다가 무덤에 들어가면 그만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실패했다는 사람도 인생 황혼기에 느끼는 허무는 본질상 같습니다. 오죽하면 가장 화려하게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이 세상을 살다간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들의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이라고 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오늘 말씀하셨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영적으로 무지하여서 그렇습니다(9절). 세상 지혜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하)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믿음이나 하나님 나라 혹은 죄 사함과 같은 영적인 신령한 진리를 들을 때에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거듭납니까?

뱃속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하여서는 부모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으로 거듭나기 위하여서는 물과 성령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5절).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거듭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씨로 뿌려서, 그 씨가 움이 트고 싹이 나면서 생명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날 때 말씀과 성령이 수고를 합니다. 세상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하여 어머니는 죽음과 같은 해산의 진통을 겪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 고통이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싹트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만으로는 안됩니다.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셔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듭나는 기적은 말씀과 성령의 합작품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 아기가 하는 일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출생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부모가 합니다. 어머니가 9개월을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몸 속에 생명을 키워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태어나는 아기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태어날 때 그저 울면 됩니다. 숨을 쉬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기가 산 아기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낳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였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고 합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따지면 평생 교회를 다닌 사람이 거듭나지 못해서 하나님께 그 이유를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준비를 하나님이 하시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 책임지셔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가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으려는 결단입니다. 은혜를 받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은 태아가 숨을 쉬면서 엄마의 움직임에 자기를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에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수용하는 것입니다. 즉 거듭난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어떤 행동에 앞서 본질, 태도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믿고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하였습니다. 믿고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내가 한 일은 하나도 없이 거저 주시는 것이기에 선물이라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대속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이 계시고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 생활 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자유를 만끽하면서 찬송하며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생의 날이 길어지면서 그들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마실 물이 없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원망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진노하시고 불뱀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불뱀이라 함은 그 뱀에게 한번 물려 독이 퍼지면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퉁퉁 부어 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원망하던 사람 중에 수만 명이 이 불뱀에 물려 죽어갔습니다. 모세가 이런 참상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하나님께 그들을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셨습니다.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이 말씀을 듣고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을 다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며, 장대 위에 높이 들린 놋뱀은 자기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러므로 이 사랑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해주실 것은 다 해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하시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죄,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고 있는 죄,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한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합니다. 오셔서 나의 구세주가,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한 마디만 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아 멘!
이미 거듭나신 여러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였습니다. 물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고 해서 겉으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얼굴도, 성격이나 습관도 그렇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새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새 것이 되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기적입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내주하셔서 가르쳐 주십니다. 속 사람이, 인격이, 성품이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하십니다. 나쁜 습관, 세상적인 정욕, 이기적인 모습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의 노력에 따라서 그 정도는 성도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거듭난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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