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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68    
[3/5/06] 영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 (사도행전 7:17-43)

오늘날 어떤 공동체이던 사람들은 참된 지도자를 찾습니다. 정말 바라볼만한,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를 찾습니다. 한 나라이건, 어느 사회이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그 백성들의 복입니다.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이 진실하고 참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영적 지도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 한 사람이 오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성전과 율법을 비판한다는 죄목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에 고소를 당하였을 때에, 그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론하는 긴 설교를 하던 중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운데(2절-50절), 그들이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2-7절). 이어서 스데반은 요셉의 형제들의 시기로 인한 사악함을 산헤드린 공회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빗대어 말하면서 요셉의 의로움을 대조하고 있습니다(8-16절). 그리고 길게 그 유명한 모세, 그 공회 의원들이 받드는 율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17-43절). 물론 초점은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교회 시대에서도 그들의 그렇게 존경하는 모세를 복종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똑 같은 실수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말고, 제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권하고 있는 스데반입니다.
우선 스데반은 모세가 구속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17-19절). 첫째, 야곱과 요셉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고, 둘째, 애굽에 새로운 왕이 통치를 시작했는데 요셉을 전혀 모르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백성들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번영하는 것을 악한 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 핍박의 절정이 이스라엘 후손의 아이가 태어나면 내어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눈물을 머금고 강물에 버렸는데 애굽 왕 바로의 딸이 발견하고 가져가 기릅니다.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그 이후 120년을 산 모세의 일생을 스데반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을 합니다. 사십년이라는 표현을 세 번 사용합니다(23, 30, 36절). 모세는 첫 사십년 동안 바로의 왕궁에서 공주의 양자로 살면서 애굽의 학술을 배웁니다(22절). 당시 애굽(Egypt)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서 모세가 학문을 배웠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첫째, 영적 지도자라고 해서 세상 지식에 무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몰상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공부는 안 하고 성경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세상 지식과 지혜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옹졸하거나 편협한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삼십년을 육신의 아버지 아래서 목수 일을 배웠습니다.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모세가 사십세가 되었을 때에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후에, 동족 이스라엘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입니다(24절). 이 일로 그는 바로의 왕궁에서 떠나 빈들로 나갑니다. 이 모습을 성경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7)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행동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대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비록 고난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며 때가 되면 보상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행동을 당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궁에서 살면서 세상 모든 것을 누리며 살지 왜 떨쳐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감당하였습니다. 모든 원통한 일을,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흘 만에 살리실 것을 알았기에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도 견디어 내었습니다.

셋째로, 모세가 이렇게 자기 백성을 도와준 이튿날 서로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화해시키려고 하다가 욕을 먹는 것이었습니다(26-28절). 그 백성 둘이 싸우다가 이제는 모세를 향하여 밀뜨리며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27절) 하며 배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들로부터 도망하여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가서 거기서 사십년을 보내게 됩니다. 이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이 모세에게는 인격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고 기르며, 고난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사십세까지는 화려한 궁에서 세상 모든 것을 누리며 살다가, 이제 사막에서 양 떼를 먹이며 거친 음식을 먹고, 천막을 치고 잠을 자며,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돌아다 보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고난의 시간을 통하여 훈련을 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내를 배웁니다. 많은 핍박과 배척, 오해와 거절 당함 속에서 자신의 영성을 쌓아갑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지내며 훈련 받았습니다. 자신을 깎아내고, 교만을 버리며 신앙 훈련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세 번 시험을 받으셨고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넷째로, 모세는 사십년의 훈련이 끝난 후 팔십 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습니다.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가 선 곳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십니다(33절).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도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만이 거룩한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가리켜 “이 사람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3)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은 비록 그들이 일컫는 ‘거룩한 땅’,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특별한 건물과 무관할지라도 거룩한 땅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34절) 하십니다.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임명하십니다(35절). 모세는 처음에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었으며, 그 일을 위하여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지도자는 자기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이라면 그 길이 비록 거칠고 험해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과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의회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들 앞에서 신명기 18장 15절을 인용하면서 결론적으로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36-38절)고 외칩니다. 그러나 이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떠 받드는 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떻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광야교회에서 모세를 대적하고 불순종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 7가지를 고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순종하려는 뜻을 버리고, 거절하고, 도리어 마음이 애굽으로 향했고, 아론에게 우상신을 만들라고 요구하였고, 그 우상 앞에 제사를 드렸고, 그것을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39-41절).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하였는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중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합니다(42절하-43절, 암 5:25-27).
즉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였듯이 우리 예수님도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데, 너희가 거절하고 빌라도에 내어주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는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금 너희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척하고 거절하면 그들에게도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언제까지 거절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자신이 메시아 임을, 그리스도 임을 증명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증인이 되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회개하시고, 성령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영적 지도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진실하고 모세처럼 참된 영적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세라고 해서 실수와 실패를 한 적이 없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1) 이 세상 지식과 지혜, 상식을 얻기에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은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간접 경험을 통하여 생각의 폭을,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아래에 놓지만, 그래도 필요합니다. 2)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잊지 마십시오. 전지전능하시고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에 속해있는 Christian 입니다. 이에 걸맞는 행동을 하십시오. 3) 고난을 통해 훈련을 잘 받으십시오. 무엇보다도 인격 훈련이 가장 중요합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나가시면서 고통을 주실 때에도 잘 받으셔서 여러분 자신 안에 아름다운 성품들이 심어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4) 내가 원하는,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순종하십시오. 때로 여러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십시오.
모세의 실수에서 덧붙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적 지도자는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하고 들어주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절대로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도 연약한 때가 있어서, 따르는 백성이 너무하다 싶으니까 장막에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울며 푸념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 그렇게 하는 것은 좋습니다. 아니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쉽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도 한번은 참다 못하여,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라고 그 반석을 향하여 말하라고 했는데, 그 백성들을 향하여 분노하면서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씩이나 내려쳤고, 비록 물은 나왔지만 그것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기질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한도에 이르러서도 참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삽니다.
그러한 성령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쳐서 모두가 영적 지도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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