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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9-29 (토) 01: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489    
[9/23/07] 부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행 16:1-5)
여러분 옆에 함께 길을 갈 수 있는 동반자,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고 한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척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고독감이 밀려올 때일 것입니다. 물론 동반자 혹은 동역자도 사람 나름입니다. 함께 가다가 도중에서 헤어지면 두 사람 모두에게 만나기 전보다 더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는 쉽게 잊고 원수가 되기 쉽지요. 그래서 만남이 참 중요하고, 만남의 끝도 너무 중요하지요.
위대했던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자서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 지역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2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실라와 동행을 하였고(행 15:40), 처음 도착한 곳이 더베와 루스드라인데, 루스드라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거기서 디모데를 만나 동역자로 삼고, 여러 교회를 방문하면서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을 전하면서 지키도록 권면합니다. 그들의 이런 사역으로 말미암아 여러 교회가 부흥을 체험하게 됩니다(5절). 바로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어떻게 초대 교회들이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게 되었는지 이유들이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함께 전도여행을 시작한 실라가 있었음에도 젊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얻게 된 결과입니다.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1절상).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주님을 믿고 따라가며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제자였다는 말입니다. 둘째, 그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1절하). 그런데 유대인 어머니가 믿는 여인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그의 어머니가 유니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미 독실한 신자였음을 가리키면서 그의 외할머니인 로이스의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딤후 1:5)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디모데는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 받은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뿌리가 있는 신앙인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독실한 유대인 어머니가 헬라인과 결혼했는가? 남편이 헬라인 신자였던가? 그것은 잘 모르지만 헬라인들이 다수였던 도시 루스드라에서 유대인 인구는 소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되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디모데의 아버지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에 죽었고 그의 어머니가 혼자 신앙으로 키웠다고 봅니다. 다만 본문에서 아버지가 헬라인이었다고 밝히는 것은 단지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으려고 했을 때 그 출신 때문에 어떤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3절). 셋째, 디모데는 주위의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2절). 여기 칭찬 받는 자라 함은 인정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뿐 아니라 그 밖의 지역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모데의 신앙은 여러 지역에서 소문난 신앙이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협력하여 일을 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비록 그가 나이는 자신보다 훨씬 어려도 동반자로, 동역자로 삼고 함께 전도여행에 동참하게 한 것입니다. 아니 그의 멘토로 계속 그를 지도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결국 디모데는 여섯 개의 바울 서신에 그 이름이 등장하고(고후 1:1, 빌 1:1, 골 1:1, 데살전 1:1, 데살후 1:1, 빌레몬 1:1), 나중에 바울로부터 두 개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를 영적 아들로(고전 4:17, 딤후 1:2), 동역자로(롬 16:21, 고전 16:10) 부르며, 나중에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로 수고하게 됩니다. 한번은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를 심부름 보내면서 바울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빌 2:19-20)!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또다시 오늘 본문도 강조합니다. 우선 디모데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거짓이 없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까?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게 꼭 필요한 동역자, 동반자입니다. 아니 바로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요 동반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고 전도여행에 동반하고자 했을 때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디모데를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디모데의 부친이 헬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서는 필요했던 예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4절에서 언급한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한 공문에 의하면 전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동족 유대인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고, 디모데도 기꺼이 순복하여 할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여러가지 면으로 훌륭한 동역자를 만나 함께 사역을 함에 있어서 힘과 시간을 낭비시키는 공연한 마찰이나 갈등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참 지혜로운 결정이요, 지혜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우리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새로 얻은 동역자 디모데와 더불어 여러 성을 통과하였습니다(4절). 여러 성은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비롯하여 서쪽에 위치한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들을 의미합니다. 다녀 갔다는 말은 다니면서 전도도 하고, 거기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4절) 하였다는 말입니다. 바로 첫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사항(행 15:24-29), 그 공문을 전해주고 지키도록 격려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말라는 것과, 이방인으로서 신자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 제물을 먹지 말며, 피와 목메어 죽인 짐승을 멀리하고, 음행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중에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된 신자들이 여러 교회 안에서 이런 가르침을 따르고 지키자 여러 교회에 부흥이 찾아왔습니다(5절). 첫째는 교회들의 믿음이 견고하게,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날마다 숫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즉 교회가 내적으로, 질적으로 믿음이 강하게 되었을 때에 외적으로, 양적으로도 늘어났다는 말입니다. 이는 참 중요한 내용입니다. 교회가 내적으로, 질적으로 믿음이 강하게 되지 않으면, 믿음의 성장이 없으면 외적으로, 양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만약 교회가 내적으로, 질적으로 믿음이 강하게 되지 않으면서 양적으로만 늘어난다면 큰 문제에 봉착하여 나중에 교회가 아픔을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천히 가더라도 기초를 잘 다지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견고해져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는 부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사람의 믿음이 견고하여지면 가정의 축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다시 말씀드립니다. 교회의 참된 부흥을 원하십니까? 가정의 참된 부흥을 원하십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견고해져야 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흔들림이 없는 확신에 찬 믿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 훈련, 기도 훈련을 받으셔야 합니다. 제자 훈련을 받으셔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에 게으르면 안됩니다. 훈련을 통하여 단련이 되고 확실해 지고 강해지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믿는 자의 수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활이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고 날마다 더욱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수평적인 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에 저절로 부흥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교우 여러분!
세상에서도 독불장군은 미움을 받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은 홀로 있도록, 혼자 일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몸, 교회의 지체라고 합니다(고전 12:27; 롬 12:4-6).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홀로 따로 떼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동반자, 동역자 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우리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병욱 목사님에 의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려고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내 자신이 쓸모없다고 하는 생각과 감정이 사라질 것입니다. 너무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목사로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어떤 때에는 그냥 옆에만 있어 주어도 힘이 됩니다. ‘나에게 동반자가 있구나’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내 옆에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을 알 때에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가 된다면 얼마나 더 힘이 되겠습니까?
초대교회들이 부흥을 체험하게 된 이유는 바울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곁에 실라와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함께 교회를 돌보고, 섬기고, 가르치고, 격려할 때에 교인들의 믿음이 강하여지고 견고해 져서 교회들이 결국 놀라운 성장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짓이 없는 믿음, 진실하고 진지한 믿음, 확실한 믿음으로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 이웃들에게 칭찬을 받는, 인정을 받는 동역자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함께 교회의 축복을 체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교회, 교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심지어 불신자들에게조차 모욕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 훈련, 말씀 훈련, 기도 훈련, 경건 훈련 등을 통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견고해지기 원합니다. 강해지기 원합니다. 성숙해 지기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함께 길을 가면서 자꾸 걸림돌이 되며, 나 뿐만 아니라 옆의 사람까지 잘못가게 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함께 일을 망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는 애써야 합니다. 믿음의 진보가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서로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송길원 목사님의 책 ‘땅은 꽃으로 웃는다’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만 좋아하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도 좋아한다. 미숙한 사람은 인연도 악연으로 만들고 성숙한 사람은 악연이야말로 인연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찾지만 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산다.’
우리 모두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의 동반자, 동역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계속적인 부흥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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