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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11-12 (월) 23:1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13    
[11/11/07] 복음에 합당한 생활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서 1:27-30)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돈이 많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즉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고 사는 사람이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더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마 그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의 주위 있는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그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는 자리에 있지를 않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사도행전 16장 19-34절 강해에서 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며, 악한 영을 쫓아 내다가 옷 찢김을 당하며 심한 매를 많이 맞고, 발을 쇠고랑에 묶인 채 깊은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 자신들은 물론이고 함께 갇힌 죄수들의 쇠고랑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어도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한 그 자리에서, 할 일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받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빌립보 성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다 마치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쓰신 빌립보서 중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본문의 말씀을 주시면서 여러분과 나누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원하시는 일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영적으로 행복하기 원합니다.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입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복음에 합당한 깨끗한 양심을 회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를 섬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7절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아주 특별한 한 단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하늘 나라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답게 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저버리지 말고 생활하라는 뜻입니다. 즉,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 그 정체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라는 건전한 자아상을 갖고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말함은 빌립보 교인들이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도 1차, 2차 전도여행에서 이방인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었고, 지금 로마의 깊은 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고난의 자리에서라도 그리스도인임을, 하늘나라 시민임을 잊지 말고 그 귀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인데, 단지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장 2장 1-4절을 살펴보면 문맥상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고난은 거창한 순교와 같은 고난이 아니라, 서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교회 생활에서의 섬김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실생활에서 교회를 섬기다가, 성도들을 섬기다가 부딪치는 고난입니다. ‘믿음 때문에 총 칼 앞에 순교할 것이냐 아니면 살려고 배교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잘해보자고 하다가 부딪치는 교회 생활 가운데 ‘게으르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을 것이냐 아니면 좀 힘들더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섬김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혜를 이야기할 때에 늘 당할 고난을 함께 거론합니다. 이유는 받은 은혜에는 반드시 소명이 포함되고, 소명은 충성된 삶을 요구하고, 충성된 삶은 구체적인 고난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가 자기 소명을 따라 살려고 할 때에 고난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불행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서론에 언급하였듯이 오히려 그 사람은 고난 가운데 행복을 맛보게 되어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잘 깨닫고 보람을 느낄 때에 비로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 그 의미와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고난일 뿐이지, 그 은혜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고난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고난을 피함으로써 행복을 얻고자 하지 말고,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붙들고 섬김으로써 그 고난 속에 깃든 놀라운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모두 불태울 가치 있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에 비로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행복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한 공동체로 묶어 주신 것은 고난을 겪을 때 옆에 함께 길을 걸으며, 함께 짐을 지며, 함께 섬기는 사람들이 있으면 보다 쉽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한 후에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27절하-28절상) 하였습니다. ‘일심으로’는 원어대로 직역하면 ‘한 영으로’라는 뜻입니다. ‘한 뜻으로’는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이라는 뜻입니다. 즉 좀 힘들고 어려워도 한 교회 안에서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인, 악한 영이 싸우려고 그러는데 우리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이기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협력하여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싸워 이겼다는 소식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힘들 때 자주 만나야 합니다. 서로 피하면 어떻게 하나가 되어 대적을 이기겠습니까? 겁내지 말고 싸워 이기려면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사소통입니다. 만약 의사소통이 끊어지게 되면 그 싸움은 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거의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서로 더 마음이 통하여 위하며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본문 30절에서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서로 자주 만나 교제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기도하면 웬만한 핍박이 두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28절하)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하나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대적하는 악한 영들에게는 멸망의 사인이요, 우리에게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사인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일들만 하고 계십니까? 혹은 그저 자신의 죄성을 미워하며, 그 죄와 싸우느라고 온 정력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물론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와 다투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명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기 안에만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라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본 후에, 하나님께 새로운 은혜를 구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섬기는 삶이 없으면, 그것은 깨달은 말씀에 대한, 은혜에 대한 배신입니다. 비록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한다면 기꺼이 감당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행복이, 축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7-18)!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각 지회 정기총회가 있으며, 이제 마지막 달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당회는 새로 구역장님들과 제직들도 임명해야 합니다. 각 부서장도 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서의 고충은 마땅히 섬기며 일하셔야 할 분들이 섬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섬기지 않고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결코 내적인 평안과 기쁨을,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데도 섬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부족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실 줄 믿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평안과 기쁨, 축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섬기면 하나님께서 정말 갚아주시고, 복을 내려 주실 텐데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셔서 서로 자원하여 ‘목사님, 기도하면서 제가 해 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도 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자 하는 분들이 많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좀 고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물론 함께 섬기고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방관하면서 구경이나 하고 비판하면서 전혀 섬기지 않는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크게 축복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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