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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4-28 (월) 21: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42    
[4/27/08]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사도행전 19:8-20)
주님의 교회는 여러분이 다 동의하고 좋아하듯이 쉴만한 물가요 푸른 초장과 같아 이 세상 삶에 시달리고 지친 분들이 찾아와 위로 받는 곳, 사랑 받는 곳, 치료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인생살이에서 힘들어 하는 자는 누구나 차별 없이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누구나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교회에 오면 무언가 푸근함이 있고,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의 치유, 지친 영혼의 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런 곳으로만 그친다면, 위로 받고, 사랑 받고, 도움 받고, 치유 받고, 쉬고 말아 버린다면 반쪽인 교회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또한 성도들을 훈련시켜 세상에 내어 보내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위로 받고, 사랑 받고, 도움을 받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사랑을 주고, 도움을 주어 그들도 변화를 받게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뿐 아니라 밖에서 하나님의 기적의 통로가 되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참된 제자로 훈련을 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저도 목사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또 지도자들이라면, 교사라면 누군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진짜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로 불러주신 사명을 반쪽이 아니라,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 회당에서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고 권면했다고 합니다(8절). 비록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 사람들로서,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할 성도들임을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비방하였다고 합니다(9절상). 그런 저항이 심해서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게 되자,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훈련시키기 위하여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서원’이라고 우리말 번역이 잘 되었는데 소위 서당, 학교라는 뜻입니다. 자그마치 2년을 날마다 가르쳤습니다. 유대인 제자든, 헬라인 제자든 말입니다(10절). 그러니까 에베소교회의 탄생은 두란노 서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이 2년을 잘 들었다고 합니다. 우선 말씀을 듣는 일에 헌신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힘을 얻어 세상에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결론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20절) 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바울이 2년 3개월 동안이나 에베소에서 한 사역의 내용을 오늘 본문 몇 구절에 적어 놓으면서, 그 결론을 20절에 말한 것입니다. 2년간 말씀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던 가운데 한 가지 사건만을 11절에서 19절까지 기록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에베소교회에서의 바울 사역을 대표하여 적어놓은 사건으로 생각이 됩니다.
다름이 아니고 바울로 하여금 병 고치는 기적과 악령을 쫓아내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1-12절)고 하였습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당시에 다이애나 여신을 섬기는 아데미 신전이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온갖 잡신의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미신이나 소위 무당들, 주술사 혹은 마술사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술은 오늘날 눈 속임을 하는 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부리는 기술로 사람들의 영혼을 부리는 자를 뜻합니다. 즉 악한 귀신들이 들끓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빌어 병마와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나 두르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아픈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그 병이 낫고, 악한 마귀도 나갔다고 합니다. 정말 얼마나 희한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도 누가의 중요한 지적은 기적의 주체는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미신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능력이, 성령님의 능력이 악한 귀신들의 그것을 능가함을 입증할 필요가 있어서 보여주신 기적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말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이런 역사를,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정말 악한 마귀의 유혹과 공격이 얼마나 난무하는 이 세상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런 악한 마귀들을 물리치는 기적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물론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을 몰랐던 에베소의 제자들처럼(2-3절),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본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려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장면이 13-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의 한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을 포함하여 그들이 악한 귀신을 들린 자들에게 시험적으로 외칩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13절하)고 했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5-16절)고 하였습니다. 악한 귀신도, 마귀도 예수님이 누군지, 바울이 누군지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유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라는 말이지요. 그 능력이 없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악한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도리어 그 귀신에게 당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악한 귀신을 이길 수가 없지요. 이런 모습을 보고 깨달은 에베소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17절하-19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사용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잘못 사용하다가는 큰 코 다치는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믿는다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악한 행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그 놀라운 일을 보고 회개하고 자복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영향을, 악한 귀신의 영향을 받고 살던 그들이 애통하며 회개하고, 에베소의 글들이라고 불리우던 책들인 주술서들을 모아 가지고 모든 성도들 앞에서 불태웠는데, 그 책 값을 계산하면 은 오만 드라크마, 즉 오만 명이 하루에 받는 임금 정도의 가치가 나가는 것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즉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술을 하던, 주술을 믿던 그들이 이제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하는지 알게 되어, 악한 귀신과 관계된 것은 그 어떤 것도 피해야 함을 깨닫고 그들의 과거를 청산하였습니다.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과감하게 내 던져야 합니다. 불태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말입니다. 나쁜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악한 영들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내 영혼을 좀 먹는 더러운 것들을, 거짓들을 성령의 힘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제지로서 능력있는, 영향력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면 가능합니다. 절대로 악령이 성령을 이기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도,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도 이런 부흥의 불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 통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0절을 다시 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꾸준한 말씀의 훈련 위에 성령의 능력이 더해지자 주의 말씀이 세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놀랍게 퍼져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결국 신령한 표적이나 기적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적은 결코 복음 전도의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도 그랬고, 사도행전 전체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 것만 좇아가면 이 시대의 미신적인 문화에 젖어 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령께서 기름 부으실 때에 놀라운 능력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까? 이 말씀이 힘이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중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기 보다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에게 지는 삶이 아니라 악한 마귀를 사로잡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네가 누구냐?’라고 묻는 마귀에게 당당히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외칠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저 매일 남의 도움이나 받는 자로, 사랑을 받는 자로, 위로를 받는 자로 그냥 남겠습니까? 그냥 받고만 있겠습니까? 주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어 하고, 상처를 받고 헤 메이는 많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주는 통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나 자신의 삶 조차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다른 사람의 삶까지 생각하고 산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럭저럭 내 목구멍 풀칠하기에 바쁜 분이십니다. 생명력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지요? 성령을 받으신 분인지요? 생명을 소유하셨습니까?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중심하고 사십시오. 훈련을 받으십시오. 철저하게 받으십시오. 잘 무장이 되십시오. 그래서 비록 이민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도 편안함을 추구하기 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주님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대충 받는 훈련이 아니라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 훈련을, 기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경건 생활 능력이 나타나도록 말입니다. 예배를 사모하며, 말씀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아가 그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며 세력을 나타내는 것을 체험하고 사십시오. 그런 은혜가 우리 경향가든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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