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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6-15 (일) 20: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91    
[6/15/08] 모델링
모델링 (사도행전 20:32-38)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버지들이 영적 지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를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모델(Model)이 무엇입니까? 모델 하우스는 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집을 보여주며 앞으로 그렇게 짓게 된다는 것을 아닙니까? 모델이 입는 옷이 마음에 들면 그런 옷을 만들어 팔 테니 사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모델링이라는 말은 모델이 되어 준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아버지들이, 우리 영적 지도자들이 모델링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좋은, 신실한 모델링 말입니다. 본받을만한 모델링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전에 밀레도를 떠나면서 에베소교회 목회자들과 장로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려는 사탄의 무리,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어그러진 말들로 양 떼를 흩으려고 할테니 조심할 것을 경고한 후에(20:28-30), 자신이 모범을 보인 삶, 즉 모델링(Modeling)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들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32절상)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 그들과 헤어지면서 그들을 어떤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믿고 맡겼더라면 불안하여 아마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이 뜻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무지하여져서,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데에 열심을 잃어버리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절하)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우며, 우리에게 기업, 즉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상속 받을 유업을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어찌하든지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본받아 물질에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물질에 대한 모델링을 말하고 있습니다.나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적어도 물질문제에 있어서는 정직하고 깨끗함을 말합니다. 바울 스스로가 그런 삶의 본을 보여 주었음을 가리키면서 주님께서도 종종 하신 말씀을 강조하십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3-35절)고 하시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울면서 그를 전송하였다고 기록합니다(36-38절).
여러분! 아버지가 되어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서 이기적이어야 되겠습니까? 물질을 탐하며, 물질 문제에 있어서 정직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도 따라서 자신만 알고, 물질을 탐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물질 문제에 정직하지 못하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고 하였습니다(마 10:8).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받는 것을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꾸로 이야기 합니다. 받는 것보다 오히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논리와는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종종 있지요. 높아지고 싶으면 낮아지고, 섬김을 받고 싶으면 섬기는 자가 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살고 싶으면 죽으라고 합니다. 자아를 죽이라고 합니다. 진리의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도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주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들, 영적 지도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왜 받기보다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모든 것을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아마도 내가 노력해서 모든 것이 주어진 것으로, 현재 가진 것을 다 내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착각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왔음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더라면 어떻게 모든 것을 소유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모든 자연은 거저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 물을 구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요 4:10). 구원의 복음도 거저 받았습니다. 영생도 거저 받았습니다. 성령도 선물로 받았습니다(행 2:38). 성경 말씀도 거저 받았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도 거저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선물입니다. 건강도, 힘도 거저 받았습니다. 가정도, 자녀도 말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한다면 사랑의 표현으로 주는 자로, 나누는 자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잊고, 잠시 주신 것들을 맡아있는 청지기 임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기가 아까운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대신하여 모든 희생을 치루셨으니 우리도 마땅히 희생해야 합니다.
즉,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그 대가를 치루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을 치루기 싫거나, 어려워서 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저 주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줄려면 내가 손해를 보는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온갖 모욕과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기꺼이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는, 은혜를 입은 우리는 주어야 합니다. 그 큰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당연히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대가를 치루면서, 희생을 하면서 주어야 합니다. 아무 말없이 주어야 합니다. 주고선 무엇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바로 그것이 거저 주는 것이지요.

셋째로,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 어떻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까?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어야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면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늘 받기만 좋아하는 이기적인 세상 가운데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주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일른지 몰라도 곧 그 진실함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올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하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교회(성도)가 이 세상과 분명히 다르다면, 교회(성도)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관심을, 매력을 끌게 될 것이다. 그 때에야 세상은 교회(성도)가 들려주는 메시지를 받을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이상하게 여길른지 몰라도"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요, 맛을 내는 소금인 것입니다.

넷째로, 주는 것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생에서든지 아니면 천국에서 상급으로 말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는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다"(눅 6:38) 고 하였습니다. 잠언 11장 24-25절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조금 살아보신 분들은 그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인색한 사람이 잘 사는 것 많이 보지 못하였지요.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 인색한 분은 하나님께서도 인색하게 복을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인색한 분은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잘 받지 못하고, 구두쇠로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철회사 회장이었던 카네기는 "오늘 말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라는 성경 말씀이 자기를 부자가 되게 했다" 고 그의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고, 유명한 백화점 J C Penny 설립자인 페니 회장도 나중에 말하기를 "받는 것이나 소유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해도 사도행전 20장 35절을 실천하게 될 때 부와 함께 오래가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축복을 받은 거부들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주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을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축복입니다. 그것은 의롭고 선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지혜로운 행위입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 예물 뿐입니다. 1827년 3월 26일은 세계적인 음악가 베토벤이 고난에 찬 그의 생애를 마감하던 쓸쓸한 밤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던 시인 그리파르첼은 이렇게 조사를 읊었습니다. "그는 오직 한 사람의 훌륭한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모든 것을 주고 떠났다. 그가 인간에게 받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떠났다" 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고간 것이 많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부모님들이 주고 갔습니다. 우리의 선생님들이, 지도자들이, 친구들이 주고 갔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저 주고만 떠나셨습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구원을 주고 떠났습니다. 생명을 주고 떠나셨습니다. 죽어져야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님도 보내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사랑을,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주는 교회(성도)는 복이 있습니다. 주는 교회(성도)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도 살아 남습니다. 승리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시다. 아픔이 있더라도 주면서 삽시다. 그 대가와 희생을 기꺼이 치릅시다. 저 바깥 세상에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오늘 본문의 바울처럼 우리도 자녀들 앞에서,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보고 있듯이 받기보다 주는 자가 되어 삶의 모델들이 됩시다. 우리에게 은혜를 끼친 분들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분들이라도 그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하시고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자들, 우리의 시간이 필요한 자들, 우리의 물질이 필요한 자들을 돌아봅시다. 실천합시다. 더군다나 아버지들이라면, 영적인 지도자들이라면 말입니다.
우리 경향가든교회는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경향가든 성도님들은 주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기대하고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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