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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8-09-30 (화) 08: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66    
[9/28/08] 깊은 관계를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와는 물론이고 가족, 이웃들, 특히 한 형제와 자매로 묶어주신 우리 교회 안에서의 지체들과 관계가 깊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도 가까이 친밀하게 지내기를 원하지 않고, 가족들과 한 교회 교인들과도 가까이 지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관계가 깊어질 수 있을까요? 친밀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주 대화를 많이 가지면 됩니다. 물론 대화라고 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진솔한 대화, 이쪽과 저쪽이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친밀한 관계의 열쇠입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귀재인 Peter Drucker 는 ‘의사소통의 핵심은 말 속에 포함되지 않은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숨은 의미까지 파악해야 정말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솔한 대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성도들이 이 진솔한 대화를, 의사소통을 잘 할 줄을 모릅니다. 할 마음이 있어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고, 부부사이나 부자관계도, 교인들과의 관계도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됩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무작정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무엇을 기도할지 이미 다 아십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기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에도, 새벽기도회에서 먼저 말씀을 읽는, 듣는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고 나서 입을 열고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은 사도 야고보가 성령의 감동으로 많은 핍박 가운데 흩어져 신앙생활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여러가지 시험(test), 시련(trial), 유혹(temptation)을 만날 때에 지혜롭게 잘 참고 이기라고 합니다(2-18절). 환란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 친밀한(intimate) 관계를 가지면, 더 잘 참고 이기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19절 말씀을 서두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성도의 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계가 깊어지려면 무엇보다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9절하)는 것입니다. 여기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이 누구의 말을 빨리 듣고, 내 말은 느리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경청하라는 뜻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으니, 그 진리의 말씀을 잘 경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으로 제대로 듣지도 않고 섣불리 내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상대방과의 충돌 속에 화를 내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판단, 내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화만 나는 것입니다. 그 화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삶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의인 욥이 결국 승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욥이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섬겼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도 결코 입으로 원망하는 말, 불평하는 말, 저주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자주 자신이 계시하신 말씀을 ‘들으라’‘청종하라’고 외쳤습니까?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정말 수도 없이 명령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 사용한 도구가 계시의 말씀입니다. 모세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마다 이 땅에 내보내시면서 그 백성들에게 좀 들으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계속 외쳤던 내용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 듣지 않았습니다. 청종하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들고, 오늘 본문처럼 화를 냈던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 그들이 대면했던, 치렀던 대가를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았던 사람들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듣고 순종했던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복음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아니 여러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죄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그 큰 사랑의 희생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래도 믿어지지 않으십니까?
아니, 이미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사십니까?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말 좀 들어라’고 야단을 치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습니까? 잘 따르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듣고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한걸음 더 나아가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즉 우리의 대인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사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상대방을 잘 듣고 있습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잘 듣지 않습니다. 특히 시험, 시련을 통과할 때에는 더 안 듣습니다. 충동적인 행동만 뒤 따를 뿐이지요. 사탄은 이것을 잘 알고 여러가지 시험, 유혹으로 자극하여 제대로 듣지 않고 조급한 결론으로 판단함으로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말을 하면서, 불평과 불만, gossip, 저주, 더러운 욕 등 아니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게 하지요. 그리고는 화를 내지요. 그러면 그만 대화는, 의사소통은 끊어지고 마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3장에서 말에 대하여 길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힘든 때일수록 더 잘 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서로 관계가 깊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경청하지 않아서 입니다. 제논이라는 헬라 철학자는 사람에게 눈이 둘이고, 귀도 둘인데, 입이 하나인 까닭이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적게 말하라는 뜻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말인지 모르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듣는 시늉이 아니라, 정말 좀 경청해달라는 외침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또 귀를 기울인다 해도 모두 자기 판단과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말을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는 외침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편견(prejudice)이나 가정(presupposition), 고집, 고정 관념을 좀 접어 놓고 들어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들으려면 내 마음이 비어져 있어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상대방과 진솔한 대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처럼 했다가는 오히려 또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마음을 꼭꼭 숨겨놓은 채, 마음에도 없는 말만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대인관계가 어떻게 친밀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될 수가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귀로 듣기 전에 상대방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듣는 기술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망가진 관계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과 동질감을 느껴야(identify) 합니다.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눈 높이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말 속담에도 ‘쇠 귀에 경을 읽는다’는 말이 있지요.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하는, 깨닫지를 못하는 것을 소에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아라비아 속담에는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것과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잠언 1장 5절에도 “지혜있는 자는 듣고”라고 했고, 18장 13절에는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연습, 경청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와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주위에 계신 분들의 마음을, 말을 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내 편견, 내 판단, 내 자아, 내 가정 등을 다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상대방의 입장, 형편, 처지, 눈 높이에 여러분 자신을 맞추세요. 좀 존중해 주세요. 그래야 무슨 말인지 들립니다. 그래야 그들과 관계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참된 교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집니다.
사실 성경은 믿지 않는 자에게 전도할 때에도 그 사람을 존중하라고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고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여기 우리 말에 두려움은 존중(respect)을 뜻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지도자들이, 부모들이, 아내들이, 남편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아니 우리의 자녀들이 자기들을 경청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외로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딴 곳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잘 경청해 주면 그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남는 것은 그런 깊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설교를 들으면서, ‘그래 내 말 좀 먼저 들어주세요’라고 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여러분께서 먼저 잘 들어주십시오. 그들의 말을 듣다가 보면 여러분의 상처도 치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천천히,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잘 경청하신 후에는 가능하면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가능하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생각하시면서 말하십시오. 아무 말씀도 생각이 나지 않으시면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그저 기도해 주십시오. 그 편이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분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어느 무명 작가의 시 ,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면’을 읽으면서 설교를 마치기 원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면 당신은 충고를 시작하지.
나는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당신은 말하지.
그래서 당신은 내 마음까지 짓뭉개지.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면 나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들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뿐.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돼.
그저 내 예기만 들어주면 돼.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과 우리 옆에 있는 분들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주위에 외로워 하는 분들이 쉽게 속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서로 치유함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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