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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7-29 (월) 10: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83    
만일 육체의 부활이 없으면(고전 15:12-19)


저는 진실로 예수를 믿으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부활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사실 진짜 신자가 아니지요.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사실 성경이 아니라도,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못 믿는다는 자체가 사탄, 마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이 너무나 많고, 불신자들이 부활이 거짓이라고 증명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학자들까지도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진실이기에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끊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은 믿을지언정 우리가 죽은 다음에 부활할 것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12절하).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서 우리 인간의 육체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는 자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혼돈의 이유는 당시 이방인들의 철학과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죽음 이후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는 가운데 잘못된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어떤 종교는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잠자거나 쉰다고만 이야기합니다. 어떤 종교는 죽으면 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아무 것도 남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혹자는 천국은 있는데, 지옥은 없습니다(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 어떤 종교는 사람이 죽으면 훗날 다시 소생하는데 짐승이나 벌레가 되기도 합니다(윤회사상). 또한 당시 헬라 철학은 이원론(Dualism)을 주장하여 영적(정신적)인 것은 선하고 육적(물질)은 것은 악하다는 영지주의자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육체의 부활은 비위가 상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아덴(아테네)에서 전도할 때에 헬라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행 17:3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고린도교회 유대인들 가운데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어서 부활을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도 육체의 부활은 말하고 있습니다(욥 19:26). 특히 다니엘 선지자는 “땅의 띠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는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자주 육체의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요 6:44; 11:25). 그럼에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역설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3절, 15절하-16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하실 때에는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마리아의 몸에서 정상적으로 출생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가졌는데 사람이 아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죄성은 없었지만,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먹지 않으면 배고파 하셨고, 피곤해 하셨고, 목말라 하셨고, 눈물을 흘리셨고, 슬퍼하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 인생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인생은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믿는 우리도 사망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을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6-8)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죽음은 우리의 마지막 순종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작은 일부터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법을 배웠고,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맨 나중에 맡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의 죽음, 영원한 운명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최후의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은 자손들과 후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잘 믿는 것 같은데 죽을 때 수치스럽게, 죽기 싫어 발버둥치면서 죽으면 무슨 창피입니까? 평소에 정말 부활을 믿고 있었는지 표시 나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작은 일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면서 나중에 자기 영혼은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말로 떠듭니다. 어떻게 작은 일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사람이 영원한 운명을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말하면 복음에 부활의 능력이 있기에, 어떤 사람도 살릴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삶에서 아무리 지쳐있고,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다 살려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우리의 부활이요 능력입니다.

둘째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거짓이요, 믿음도 헛것입니다(14-15절상, 17-18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는데 복음은 용서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도 않았는데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사기를 치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다면 아무리 믿어도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죄 가운데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17-18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믿음은 필요 없는 것이요,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능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곧 복음이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인 것입니다. 거짓 소식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영웅들이 다 바보들인 것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모세, 여호수아, 갈렙, 라합, 다윗, 수많은 선지자들이 다 헛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다 헛것 때문에 무의미하게 죽었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들의 믿음이 다 헛것이었을까요? 다 거짓이었을까요?
그러면 복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무엇으로 증명을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그 증거가 됩니다. 올바른 복음이 증거되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던 사람도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회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이요,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회복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비록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사심으로 사탄, 마귀의 머리를 치셨지만, 아직 완전히 그들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 부활하신 주님을 모르고,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자기 욕심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아가서 그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주위를 돌아다 보십시오. 얼마나 마귀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까?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의 됩니다(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19절)고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 삶이 전부라고 한다면,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고 그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육체의 유혹과 이생의 자랑들이 몰려올 때에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위하여 죄를 거절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들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는 아무 낙도 찾지 않고 나그네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활도 없고, 복음이 거짓이고, 자기 혼자 그렇게 헛것을 믿고 살았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고, 천국이 있다는 것보다는 이 세상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까? 조금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텐데 말입니다.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일시적인 것이라, 언젠가는 없어질 것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종말이 오면 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과감하게 떨쳐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부활을 믿고, 주님과 함께 살 영원한 세상을 믿는 자들이 절대로 불쌍한 자들이 아닙니다. 이제 곧 알게 될 날이 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부활하셨고, 우리도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정말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복음이 거짓이요, 우리의 믿음이 다 헛것입니다만 복음은 진실이요, 진리이기에 2000여년 동안 오늘도 온 세계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 사함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도 주님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만, 부활이 분명히 있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탄,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믿고 사십시오.
이 부활의 복음이 전파된 곳마다 개인의 삶과 사회가 변했습니다. 그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2000여년의 세계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역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람마다, 앞으로 주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사람마다 새 생명을 받아 부흥을 체험한 것을 명백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없는 부패한 사람의 마음에는 두려움, 불안, 전쟁, 악독이 가득할 뿐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삶을 의미있게 합니다. 따라서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산다 하더라도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입니다.  
여러분들은 부활의 소망이 확실합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시고, 그 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죽었을 때 남은 성도들이 여러분은 그 사모하는 나라에 드디어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게 하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속한 나라가 어디입니까? 비록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났고, 이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 세상의 교육을 받았고,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속한 나라는 하나님 나라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성령의 인도 아래, 성령의 지배 아래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공의와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의 만남 속에서 말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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