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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1-30 (월) 11: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80    
복음의 제사장 직무의 파트너(롬 15:14-21)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에 파트너를 잘 만난다는 것은 참 복입니다. 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업을 할 때도, 아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파트너를 잘 만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나와 파트너가 능력이 있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함께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며, 삶의 어떤 목적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파트너가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이 그런 파트너가 되십니까?

사도 바울은 1장 18절부터 15장 13절까지 길게 로마서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리에 대하여, 우리의 믿음의 내용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신론, 인론, 죄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성화론 등 말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는 서신의 끝맺음(Epilogue) 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앞으로의 계획(15:22-33), 개인적인 인사(16:1-24), 그리고 축도(16:25-27)로 끝맺고 있습니다.
특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15:30)라고 함으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자신의 사역의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합니다.
우선 듣기만 했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을 칭찬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절)고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던 “선(goodness)”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에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이기도 한 선함(갈 5:22), 그리고 빛의 열매이기도 한 선함(엡 5:9)이 충만했다고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이 성도들에게서 드러났다는 말씀입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탁월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올바른 앎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로 알기에 그들의 삶에 선함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권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설명한 단어, “권하다(admonish)”가 여기도 나왔습니다. 바로 마음, 생각, 정신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 다는 뜻의 권하다 입니다. 서로 잘 듣기에 권면하여서 흩어졌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하는 자들임을 바울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성도들에게 로마서를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15절) 하였습니다. 즉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큰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복음의 감격을 생각나게 하여 더욱 불일 듯 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이는 로마서 서두(Prologue)의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1:11)라고 언급했듯이, 신령한 은혜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직분의 은혜를 나누기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16절)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는 주로 이방인들이 사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적 이방인들 말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을 전도하는 일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라고 합니다. 먼저 자신을 그 일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합니다. 여기 일군(minister)은 사역자를 말합니다. 거룩한 직분을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성삼위 하나님이 다 등장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성령 안에서 복음을 듣는 자가 거룩하게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만왕의 왕으로부터 이런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신 이유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마 4:19). 즉 목사나 전도사 등 교역자들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왜 전도하는 일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라고 하였을까요? 전도 대상자를 제물로 드려야 할 자라고 할까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일시적으로라도 사함을 얻기 위하여 제물을 제사장들에게 가져 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이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흠이 없는 온전한 희생제물이어야 하며 반드시 드리는 자의 소유였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전도하는 직무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로 보았습니다. 즉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사 66:20절하)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도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교회로 인도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심령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소유를 뜻하는 인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제사장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는 일입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너무나 고귀한 일이기에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제물이 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되었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 입니다.
또한 그렇게 제물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복음을 전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만 그런 직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체험하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것 아닙니다. 내 지식과 명예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것 아닙니다. 그럼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일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즉 좋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성령님께서 하신 일들을 자랑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바울은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9절)고 하였습니다. 일루리곤은 마게도냐 북쪽 경계 지역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200마일 떨어졌습니다. 참으로 먼 곳까지 전도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이웃부터 시작해서 해외 선교까지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음 주일에 살펴보겠지만 단기선교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전도할 때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20-21절; 사 52:15 인용)고 하였습니다. 즉 다른 분이 전도한 곳에는 가서 전도하지 않겠다는 원칙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다른 교회 잘 다니고 있는데, 봉사 잘 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 오라고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닙니다. 양 도둑질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선교사가, 복음전도자가 일하고 있는 곳에 가서 선교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선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열매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 놓더라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말을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성경을 많이 몰라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전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믿게 되니까요. 성령의 능력은 여러분이 말을 잘 못하고, 성경도 잘 모르는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유명한 George Muller 는 ‘우리들의 연약함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을 의지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의 모습이 믿는 자로서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 전하겠지요.
그런데 전도는 목사나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나 하나쯤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런 분은 직무 유기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파트너가 되어 일하기 원하십니다. 동역하기 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용하시기 원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또한 목사인 저도 여러분이 제 파트너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니 당연히 파트너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함께 해야 하는 파트너이십니다.
그럼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좋은 파트너가 되려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능력이 크시니 믿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하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는지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지상 대명령(마 22:37-40)과 지상 대사명(마 28:19-20)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온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제일 사랑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함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웃에게부터 시작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아야 하는 사명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신실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트너를 신뢰하지 못하면 함께 일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연약하여 실수하거나 쓰러지면 비난하며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미 한 배를 타고 천성을 향하여 가는 동지들이요, 형제, 자매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와 선교에 열심인 교회에는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외부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서 온 노력을 기울이면 내부의 문제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전도,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늘 내부의 문제들로 끙끙 앓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 각 지회, 11개의 전도회입니다. 전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모임입니다. 권사회와 소망회까지 합치면 모두 13개의 지회가 됩니다. 전도의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야 합니다. 15개 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역 모임이 은혜가 넘치게 되면 믿지 않는 분들이 은혜를 맛보게 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이유는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를 앞둔 주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됨을 이루어, 각 지회와 구역이 하나됨을 이루어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회원들과 구역원들이 영혼 구원이라는 비전을 공유하여 다 함께 전도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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