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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2-04 (월) 08:1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69    
율법대로 바쳐진 아기 예수(눅 2:21-24)


우리 성도들 가운데 율법을 말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은혜를 말하면 긍정적으로 아주 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율법을 아예 무시하고, 은혜만 강조합니다. 구약시대에서 율법이 다스렸다면, 신약시대는 은혜가 다스리니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은혜만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이는 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첫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자신이 율법을 폐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율법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요,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습니다. 물론 율법을 다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십계명과 같이 오늘도 지켜야 하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 그 이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아기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없는데,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아기 예수에 대한 아주 중요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행동이 주는 교훈입니다. 이 짧은 네 구절에서 계속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고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모세의 법대로 …”(22절), “주의 율법에 쓴 바 …”(23절),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4절) 하였고, 나중에 그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성전에 들어가 행하였다고 했고(27절), 또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39절)고 하였습니다. 즉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모든 일을 감당하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부모의 도움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말하기도 전에, 걷기도 전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선택 받은 나라의 백성으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기 원합니다. 누가는 제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며, 그 이름이 정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할 8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21절)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기 훨씬 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 그 후손들은 반드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언약의 징표(sign)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에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9-11)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창 17:22) 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새 언약에서는 육체의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에 할례를 받은 것으로 교만하던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아 선지자는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느니라”(렘 4:4)고 하였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어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33)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할례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성령세례를 주시고, 우리 심령에 인치신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요셉과 마리아도 하나님 명령대로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할례가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바로 서론에서 언급한 율법을 이루기 위하여서 입니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갈 4:4-5)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나중에 세례 받으실 필요도 없으신 분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말입니다(마 3:15).
또한,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은 아기가 할례를 받을 때에 이름을 정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도 할례 후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임신하여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헬라어의 ‘예수(Jesus)’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여호수아(Joshua)’와 동일합니다. ‘예수’ 이름의 뜻처럼, ‘여호수아’라는 뜻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며 구세주로 믿는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듯이 세상 모든 사람 누구나 다 구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합니다(롬 3:23). 그리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롬 6:23). 죽음도 죄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길이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분은, 죄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로마 교황도, 공자나 맹자 그 누구도 우리의 죄를 사하시지 못합니다. 예수님 밖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실 분이 없으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할례 받게 하고 나서 율법에 따라 결례의 날이 차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갑니다.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22절)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번제와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를 부정하게 여겨서 정결하게 되는 결례 기간이 지난 다음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7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요 제 8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레 12:2-4)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마리아도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고 나서 만 33일이 지난 후에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으로 번제를 드리고, 출산에 대한 부정을 제거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정한 제물은 양이나 소였으나 가난한 자들은 비둘기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서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23절) 한 것이 바로 감사의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를 뜻합니다. 여기 주의 율법에 써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출 13:2)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마치 한나가 기도로 받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듯이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아기들의 유아세례식은 옛날 할례가 언약의 자손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우리 아기가 언약의 후손임을 믿고, 믿음으로 아기를 키우겠다는 결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번제 제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기를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온전히 맡기셨습니까? 아니면 자꾸 내가 자녀를 control 하려고 하십니까?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어서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24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비둘기(doves)나 반구(pigeons)는 비슷한 것입니다. 산 비둘기와 집 비둘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드릴 수 있는 번제나 속죄제 제물입니다.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 비둘기 둘이나 집 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 12:8)고 한대로 말입니다. 정결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야 하나님과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지 마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를 받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이렇게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를 말씀대로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대로 33일의 결례의 날을 지나고 나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아기 예수를 바쳤습니다. 산모 마리아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마치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하나님 앞에 의인답게 행동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6)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아기 예수도 부모와 함께 모든 율법을 준수함으로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더 큰 대속의 사역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하였습니다. 아들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십자가의 고난이라도 잘 감당하면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직분을 온전하게 수행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는 모든 자의 영원한 근원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은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야 믿음으로 거저 받지만, 우리 주님의 통곡의 기도와 눈물과,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배운 순종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의 아무 노력 없이 선물로 주어졌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굉장한 선물입니다. 소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 크신 은혜를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쳐졌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니 앞으로도 주실 은혜를 생각하며, 약속의 말씀에 소망을 갖고 순종해야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처럼, 예수님처럼 우리도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고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더라도 말입니다. 할 말 다하고, 기질대로 성질부리고 살면 절대로 성숙한 성도가 되기는 힘듭니다.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 무슨 말을 하며, 하나님 앞에 무슨 성질을 부리겠습니까?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20)고 하였습니다. 억울해도 말 없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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