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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2-11 (월) 11: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7    
메시아,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눅 2:25-38)


우리 인생들은 수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복된 만남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만남도 있습니다. 좋은 만남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남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의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만나서 변화를 받고 구원의 길에서 놀라운 복을 받는 분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그런 자들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들은 무엇을 사모하고 사십니까? 인생에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많이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영혼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을 이방 나라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실 메시아를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 또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사 53장).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영혼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예언된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동안 살펴본 사가랴와 엘리사벳,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인생을 오래 산,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연로한 분들이었습니다. 평생 메시아를 대망하다가 결국 만났고, 그래서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선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살펴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의롭고(righteous) 경건하다(devote)’는 의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헌신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신실한 자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는 지난 400년이 넘도록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메시아, 구원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분이 오시기를 대망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가 그 백성을 위로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을 때에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하신 것처럼, 자신을 ‘보혜사(Counselor or Comforter)’ 곧 ‘위로자’로 말씀하셨습니다. 25절의 위로와 똑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는 동사형이고 하나는 명사형입니다.
이런 위로자를 기다리던 시므온 위에 성령님이 계셨다고 합니다(25절하).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그 백성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하거나 능력을 나타낼 때에 성령님의 임함을 뜻합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세례 요한도(1:15), 엘리사벳도(1:41), 그리고 스가랴도(1:67) 성령충만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아 예언을 하며 찬송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26절). 개인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메시아,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기다렸으면 죽기 전에는 꼭 볼 것이라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을까요?
그 결과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성전에 들어갔다가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율법의 규례를 따라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려고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을 때 만난 것입니다(27절). 그러자 그 아기가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알아보고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28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9-32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주재여(Sovereign Lord)”라고 함은 하나님을 절대주권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언되어진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눈을 감지 못할 종이었는데 이제 약속의 말씀대로 보게 하셔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는 찬송입니다. 얼마나 그가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는지 잘 나타나는 찬송입니다. 늙고 고달픈 몸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눈으로 보고,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메시아,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만민을 위하여 예비하신 분이어서 이방인들에게까지 그 복음의 빛이 비추일 것이며, 주의 백성들의 영광이 될 것이라는 찬송입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대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다시금 새겨 듣고는 놀랍니다.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33절)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하면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합니다.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폐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34절하-35절)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폐함이, 즉 망함이 되며, 어떤 사람에게는 흥함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에 많은 유대주의자들이 비방하고 핍박하였으며, 아시다시피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예수님이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했으며,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이 다 드러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35절).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겸손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고백하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교만하여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니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주인은 사탄 마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부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표적이 되어 아들이 죽게 되니 마리아에게 칼이 그 마음을 찌르는 듯 한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믿은 자들은 예수님을 주로 섬기며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아,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 속에 있는 생각이 다 드러나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구분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게 된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시므온에 이어 안나라고 하는 여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84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36-37절) 하였습니다. 안나(Anna)는 히브리어로는 사무엘의 어머니와 동일한 이름 한나(Hannah)입니다. 시므온과 달리 안나는 그 신분이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아셀’은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습니다(창 30:13).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하고 아셀 지파를 비롯한 북왕국 나머지 10지파는 포로생활 후 귀환하였어도 다 흩어져 버린 소수의 지파로 남았습니다. ‘바누엘’의 히브리식 이름은 ‘브니엘’이며, 그 뜻이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바로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던 장소의 이름입니다. 즉 믿음의 족보가 있는 여인으로서 몇 살에 결혼했는지 정확히 모르나 결혼생활은 7년 밖에 못하고 남편이 죽는 바람에 과부로 84년을 살았습니다. 어떤 번역에서는 본문의 아기 예수를 만날 당시에 84세라는 해석도 있지만, 우리말 번역에 의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13세 성인식을 하고 나서 결혼을 하곤 했으니 14세 후에 결혼을 했다면 105세가 족히 넘기 때문에 성경이 매우 늙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과부가 된 후로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떠나지 않고, 아예 성전에서 살며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섬겼다고 합니다. 이는 그녀가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된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 곧 메시아를 고대하며 기도했음을 뜻합니다. 메시아만이 자신의 84년 동안의 힘들었던 삶과 온 이스라엘의 가슴에 응어리졌던 것을 풀어주고 위로할 수 있음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아마 이 날도 기도하다가 시므온의 찬송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부모에게 돌려주었을 바로 그 때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38절)고 한 것처럼, 안나는 아기 예수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성전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메시아,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기 예수를 가리키며 백성들에게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사 52:9)는 말씀을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시므온이나 안나 두 사람 다 나이 많아 늙을 때까지 하나님에게 온전히 헌신된 인생으로서 평생 그 백성의 위로가 되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메시아를 만났고,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며 예수님이 바로 예언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취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시므온의 특징은 의롭고 경건한 자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성전에서 개인적으로도 받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꼭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시므온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서,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으로 영적 체험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좁은 길이라도 의의 길을 가는 이 시대의 경건하고 신실한 신앙인들이기를 바랍니다. 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사모하며, 만나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받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만난 경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시므온처럼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위로가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안나처럼 인생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시시로 간절히 기도함으로 극복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때로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84년 과부의 삶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섬겼던 안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메시아를 만나게 하시고 위로를 받아 모든 사람에게 그를 증거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두 사람에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사십시오. 귀한 만남을 주실 때 그것을 증거하고 사십시오. 크신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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