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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2-18 (월) 06: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9    
예수님의 성장과정은(눅 2:38-52)

신구약 성경에 그 어떤 인물도, 어떤 믿음의 영웅들도 그들의 어린 성장과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사복음서에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아기 때, 유년기에 어떻게 자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몇 가지 일을 오늘 본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탄생 때에, 그리고 자라면서 세상 어떤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 자라면서도 자신이 예언되어진 메시아, 그리스도 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살펴본 대로 요셉과 마리아는 기적적으로 아기 예수 낳았고, 할례를 행했고, 천사의 말대로 이름을 지었고, 결례의식을 행하고,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면서 아기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부모는 정말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39절)고 누가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자라가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고 12세가 되기까지 성장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라가며 강하여지고”는 키가 크고 튼튼해진다는 말입니다. 즉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육체적으로 성장하며 강하여졌다고 합니다. 부모가 잘 먹이고, 스스로 활동하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성장입니다. 둘째, 지식적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지혜가 충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지혜, Torah 혹은 탈무드 교육을 통한 지적인 성장입니다. 셋째, 영적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요약한 52절에서도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하반절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지만, 원어에 더 가까운 번역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혜를 받더라’ 입니다. 즉 예수님은 지혜, 지식적와, 육체적으로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의 은혜도 더 자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 더욱 깊어져 가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올바르고 깊어져 간다는 뜻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우리 부모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말씀들입니다. 부모들 대부분은 육체적인 성장과 지식적인 성장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만, 영적인 성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실 셋 중에 가장 중요한, 제일 먼저 양육이 되어야 할 부분이 영적인 성장인데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녀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부모들이 본을 보여야 하겠지요. 우리 부모들이 육체의 건강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천국으로 부르실 그 날까지 성장해야 하는데, 영적으로 자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하여 애쓰며 기도하며 살고 있으신지요?

이어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42절)의 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이제 13살이 되면 성년식을 거쳐 어른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데 바로 1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해 유월절 절기를 맞아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41-42절). 그런데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12살의 예수님은 아직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데,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들과 함께 하룻길 정도 간 것입니다(43-44절). 당연히 예수님이 함께 동행한 줄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보니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당황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가면서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는 것이었습니다(45절).
사흘 후에야 예수님을 찾게 되었는데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Rabbi)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46절). 바로 유대 랍비들의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묻고 토의하고 하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4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기이히 여기다(amazed)’의 헬라어 원어의 뜻은 ‘정신이 잃어버리다, 자신을 놓치다, 깜짝 놀라다’ 입니다. 단지 12살 아이의 질문과 대답이 랍비들의 정신을 나가게 한 것입니다. 마치 12살의 학생이 상대성이론의 원자 역할을 말한다든가 대학생도 풀 수 없는 미적분 수학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수들이 놀랄 수 밖에요. 사실 누가가 이 ‘기이히 여기다’라는 헬라어를 사용할 때에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날 때였습니다(눅 8:56; 24:22; 행 2:7, 12; 10:45 등). 즉 벌써 12살 때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절)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게서 나올 반응입니다. 아이를 꾸짖고 책망하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하십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내 아버지의 집”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생략이 되었고 그냥 관사만 있습니다.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내 아버지의 것들’이라고 해야 합니다만, NIV 나 ESV 와 같은 영어번역과 우리말 번역에서는 문맥을 고려하여 집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번역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있을 곳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성전인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일들’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KJV).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들에 관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번역입니다.
그래서 둘을 종합하여 해석하면, 예수님은 성전에 있어야 했으며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여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금 마리아가 네 아버지 요셉과 함께 근심하며 그를 찾았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50절)고 한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12년 전 예수님 탄생하실 때 천사의 계시나, 목자들이나 동방박사들의 찬송,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찬송과 계시, 마리아 스스로의 찬양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없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고 선한 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치셨습니다. 몇 구절 예를 들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절상),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적과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찌어다”(대상 16:12-13),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절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고 하였고,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합니다. 기록된 글로서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남긴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말씀을 붙들고 주신 은혜들을, 간증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리아도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51절하).

예수님을 잃어버렸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은 사건이 있고 나서, “예수께서 한 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51절)고 하였습니다. 이는 혹시 바로 앞에 부모들의 꾸지람에 응답한 예수님의 말씀이 마치 육신의 부모에 대한 사춘기 반항이나 불순종으로 오해할까 염려하여 기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부모님께 잘 순종한 본을 보인 모범적인 아들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말씀은 부모에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겠지요. 신구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기도 하구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어떻게 자랐으며, 12살 유년기 시절에 있었던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탄생하실 때에도 특별한 아기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자라가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온전히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기에 조금도 흠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9)고 한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예수님처럼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지식적으로도 많이 잘 배우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점점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성경말씀의 가르침과 기도로 양육을 받아서 영적 거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한편 우리 모두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은혜를 받고, 은혜를 끼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라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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