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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8-12 (월) 05:4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27    
병을 고치시며 죄를 사하시는 주님 (눅 5:12-26)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치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지만 지푸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알고 믿는 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의지하면 건져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하십니다(Deliver). 다윗은 그러한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1-2)!

오늘 본문에도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부르짖었더니 중병을 고쳐주시고 죄 사함을 받는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다른 병자들도 고치시며, 귀신들을 쫓아 내신 후에(4:32-44)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온 베드로와 그 동무들에게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며 놀라운 능력을 보이신 후에(5:1-11) 한 동네에 가셨습니다.
그 동네에서 온 몸에 나병 혹은 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문둥병(Leprosy)이 걸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간구합니다(12절, 마 8:2). 여기 엎드린다는 단어는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예배하면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주’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인들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을 향하여 ‘주 하나님이여, 당신이 원하시면(if you are willing) 나를 고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발 고쳐주시겠습니까?’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긍휼을 구하되 선택은 주님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간구입니다. 사실 당시 문둥병자는 가족과 친지가 있는 한 동네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동네에 들어와 예수님을 찾아 왔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간절함과 절박감으로 율법을 어기면서라도 고침을 받기 원했습니다. 병도 병이지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 외로운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냥 말씀만 하셔도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예수님이, 온 몸에 문둥병이 있는 그에게 손을 대며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자를 사람이 접촉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레 13:45-46). 부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넘어서 손으로 이 사람을 만지신 것입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는 모습입니다. 문둥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만지시며 고쳐주십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저를 경계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게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14절)고 하십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고, 사람들이 그저 병만 고치기 위하여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명하기를 가서 율법을 따라 제사장에게 깨끗하게 되었음을 보이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나서(레 14장), 가족과 친지들, 사회로부터 격리된 불행한 삶으로부터 회복되도록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했으나 자신이 혼자 조용히 간직하기에는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기에 그는 소문을 낸 것 같습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들었습니다(15절). 하지만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16절)고 기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오는 것을 본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합니다. 바쁘실수록 시간을 내어 기도하셨습니다(눅 4:42, 막 1:35).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겠기에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시하는 곳에서 사역하기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끄는 곳이 아니라 기도가 이끄는 곳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꼭 필요한 곳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 기도하셔야 합니다. 내 뜻대로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려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으려면,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감당하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자주, 무시로, 하나님 아버지께 묻고, 듣고, 인도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기사를 전합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더라”(17절)고 하였습니다. 교법사는 율법학자 혹은 서기관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앞에서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과 부딪히고 논쟁을 하게 될 것임을 아시면서도 치유의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들의 반대가 온 이스라엘로부터 나타나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침상에 메고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습니다(18절, 참고: 막 2:3-12). 너무 많은 사람이 집 앞에서부터 모여 있기에 도저히 그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메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붕에 올라가 짚으로 된 지붕을 뜯고 침상을 줄에 매어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19절). 그러자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0절)고 하셨습니다. 그 병의 근원이 죄이었기에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천사가 그 이름을 계시하면서 알려준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인간은 행복하게 영원히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병, 고통의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인 병의 치유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회복이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으려면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고 하였고, 우리가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고”(엡 2:3절하-5절상) 하였습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이유는 저희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침상에 메고 온 네 친구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도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것이 네 친구입니다. 친구들의 사랑입니다. 한 마음으로 이 중풍병자가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원했으면 지붕을 뜯고자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요?
우리도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고 회복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한 마음으로 힘써야 합니다. ‘나는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도와 선교의 일에, 하나님 나라 일에 다 함께 한 마음으로 수고하고 애쓰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21절)라고 합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을 신성모독죄로 단정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니 당연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입견(presupposition)과 편견(prejudice) 때문입니다. 전통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생 생각해오던 사고방식을 뛰어 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교만, 고집 혹은 아집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C S Lewis 는 그의 명저 ‘단순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에 그렇게 화를 내며 신성모독죄라 하는 이유를 말하기를, ‘만약 그런 선언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정말 어리석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우리는 누가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해준다고 하니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그렇다. 그가 예수님에게 무슨 잘못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용서한다고 하니 참람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용서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 사랑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모르니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이 이런 의논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23절)고 묻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생각할 때에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장 사함 받은 증거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쉽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둘 다 어렵다고 반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둘 다 못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기 원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24절)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즉각적으로 고침을 받고 침상을 가지고 나갑니다(25절). 그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26절)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 부쳐도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기적을, 확실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많은 사람이 믿지를 못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요 12:37)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기적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이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24절에서 자신을 인자(Son of Man)로 표현하심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Incarnation) 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하였듯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향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으로서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받아주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 멘!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문둥병 환자도,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도 예수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찾아 왔습니다. 고쳐주시리라 믿기에, 주가 되심을 믿기에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간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인간의 근본적인 영혼의 병인 죄 문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립니다. 자신이 하나님임을, 죄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분임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인자이시기에 자비와 긍휼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율법을 뛰어넘어 손을 대시고 사랑으로, 열정으로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영혼과 육체의 병을 모두 고치시는 능력의 주 하나님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을 어렵게 합니까? 어떤 고통이, 질병이 있으십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부르짖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고쳐주시옵소서!’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의 치유의 손이 여러분들을 만지시고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큰 일,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큰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이 얼마나 크냐에 달린 것입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크신 하나님을 믿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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