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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10-14 (월) 07: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9    
주님의 영광의 찬송이 됩시다 (엡 1:11-12)


지난 주 창립 25주년 기념 부흥성회에 안민 총장을 통하여 주신 말씀에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제게 말해주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다들 기억하고 있으신지요? 오늘은 제가 집회 때마다 주신 은혜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첫날 저녁 집회에서는 ‘마지막 사명, 광야의 찬송’이라는 제목으로 모세가 광야 40년을 끝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노래를 그 백성들에게 들려주라는 명령을 받고 부른 신명기 32장의 노래의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배부르고 살찌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 언약을 어길 것이니 이 노래가 그 증인처럼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 31:19-21). 사실 그 동안 모세의 여정은 힘들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도 많았습니다. 자신은 한번의 실수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노래를 지어 부르라니,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할 수 있었으나 모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잠잠히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그의 마지막 사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신명기 32장 모세의 노래는 3절(단락으)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1절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신 32:1-14). 그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이끌어 내시고, 인도하시며, 지켜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냐는 노래입니다.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신 분이라는 노래입니다. 그 대적들을 물리치신 분이라는 노래입니다. 이런 분은 세상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분이 모세를,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2절은 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신 32:15-25). 은혜를 모르는 망할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에노스’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구원의 감격이 오래가야 하건만, 적어도 한달, 2달, 3달은 가야 하는데 3일이 지나고 나서 불평하며, 원망하더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언약의 돌판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데 40일을 못 기다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잘 기다립니까? 아니면 금방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아닙니까(엡 2:1)? 3절은 그러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애통하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다시 그 대적들을 물리쳐 주십니다(신 32:26-47).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모세의 노래는 곧 믿음의 노래요, 소망의 노래요, 사랑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노래를, 찬양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부르심을 따라 세상을 향하여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성도(교회), 내용이 있는 성도(교회)가 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도 잊지 말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며, 우리의 대적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부르신 대로 끝까지 사명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날 새벽집회에서 ‘위대한 고백, 다윗의 찬송’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시편 23편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가 기대하지 않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기대하고 그를 선택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부족함은 있었습니다. 큰 실수도 했습니다.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행 13:22). 이유는 그는 상황과 관계 없이 일평생 찬양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양을 치는 목자일 때도, 왕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노래했습니다. 높은 자리인 왕이 되었을 때에도 시편 145편을 노래했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낮은 자리인 들판에서 양을 칠 때에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나단이 자신의 죄를 지적할 때에도 진솔하게 회개하며 시편 51편을 노래했습니다. 모두 물러가게 하고 홀로 침상을 눈물로 적시면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 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며 변치 않는 마음 내 안에 주소서.’
그런데 사실 다윗의 위대한 찬양은 그가 잘 나갈 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아들 압살롬이 자기를 죽이고자 할 때에, 다 잃어버렸을 때 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부른 노래가 시편 62편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여호와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여호와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되시며 오직 주만이 나의 생명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이어서 63편에서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나의 몸과 마음 주를 갈망하며 이제 내가 주께 고백하는 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생명의 피난처시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 손 들리라.’
이렇게 평생을 노래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을 정리해 놓은 노래가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도 평생에 이렇게 노래를 하고 살 수 있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인내하고 앞을 향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날 저녁집회에서는 ‘교회의 핵심가치’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성도(교회)를 꿈꾸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 원하는데,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게 될 줄 알고 돈을 목적으로 삽니다. 잘 살게 되면 행복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돈이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잘 산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행복하게 되는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합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이 찾아옵니다.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인생의 핵심가치를 추구하고 살면 다른 것은 다 따라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상최대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라’ 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까? 언제 그렇게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과거에 있었다면 그 때의 감격을 회복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그 증거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 삶을 바쳐서 교회를 지키고 세우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주님이 왕이심을 고백하며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모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누구나 사랑하고 싶지만 우리가 그렇게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가까이 있는 가족들, 교우들,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가시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삶 속에 이 핵심가치를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교회와 우리 가까이 있는 분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셋째 날, 주일 1부 예배에서는 ‘나의 찬송을 부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점점 결정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그 때 이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사람을 세우는 일인가 무너뜨리는 일인가, 사람을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성경을 근거로 어떤 원칙, 원리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찬양, 기도, 봉사 등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일에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찬양, 찬송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삶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운 일만 닥칠 때도 하나님에게 노래를 해야 하는가? 왜 교회는 즐거울 때만 아니라 슬플 때에도 노래를 하는가? 노래할 기분이 있을 때만 하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찬양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하라고 합니다. 명령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힘들어도 우리가 찬송할 이유는 첫째,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역전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긴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57)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욥은 다 잃었어도, 절망가운데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욥 1:21절하)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찬송할 둘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인치신 이유가 무엇인가(엡 1:3-14)? 놀랍게도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하여(엡 1:6),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하여(엡 1:12),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하여(엡 1:14) 라는 말씀입니다. 찬송할 셋째 이유는 찬양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사 43:21).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퍼질 때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암 8:3). 그 백성들에게 죄악이 가득하기에, 공의가 사라지고,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사랑이 사라지고, 음란과 패역으로 하나님을 배역하기에 재앙이,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아무 노래나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노래를, 지정곡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래해야 합니다. 삶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겉과 속이 같은 노래입니다. 아모스 시대 백성들은 겉과 속이 달랐기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찬양이 아름다워도 부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찬양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칭송하다’ 칭찬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기에 그 성품을 기억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2) ‘경외하다’ 무릎 꿇고 항복하다. 삶의 주인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 ‘갈채를 보내다’, 박수를 치다. 손을 들어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사랑,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이 담겨있는 노래입니다. 사랑의 고백입니다. 4) ‘인정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인정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주일 2부 마지막 집회에서는 ‘은혜의 인생, 부르심의 삶’이라는 주제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안민 총장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인생 여정을 간증하면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복을 허락하신 이유는 늘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하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삶,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삶이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삶, 사람을 세우는 삶의 목적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교회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나갈 때, 그 본질을 잊지 않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확실히 믿고 그런 성도로, 그런 교회로 다음세대를 향해 나아가는 25년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환경이 열악해도, 상황이 좋지 않아 너무 힘들어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이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영광의 찬송이 되실 것입니다. 질이, 내용이 있는 성도가, 교회가 됩니다. 격이, 품격이 있는 성도가, 교회가 됩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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