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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10-24 (목) 10:5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52    
교회의 구제 (딤전 5:3-16)
기독교 문화가 기초가 되는 사회에서는 약자들에 대한 배려, 돕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런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여자, 아이들, 노약자, 장애우등 약자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삽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고아나 과부를 돌보라고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9)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시 146:9) 하였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 7:13)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초대교회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잘 하였습니다(행 9:36-41). 특히 교회 안의 어려운 자들을 위하여 헌금을 하며 양식을 주며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구제 사역을 잘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 목사와 에베소교회에게 특히 과부를 구제하는 사역에 대한 원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3절)고 하였습니다. ‘경대하라’는 말은 존경하고 잘 대하라, 돌보라는 뜻입니다. 그 필요를 채워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부라도 다 구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참 과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정말로 교회가 도와주고 돌보아야 할 과부를 말합니다. 교회가 잘 판단해서 구별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설명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4절)고 하였습니다. 가족이 있는 과부, 특히 자녀들과 손자들이 있는 과부는 그들이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자녀들이 복을 받는 길이라는 뜻입니다(출 20:12, 엡 6:1-3). 만약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자기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자는 그 영혼이 지옥에 갈 자라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 할 의무, 성도로서의 삶의 원칙을 잃어버린 자라고 큰 죄를 짓고 있는 자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잘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보다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자녀나 손자가 없으되 친척이라도 있으면 그 친척이 과부를 도와주라고 합니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 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친 부모나 조모가 아니더라도 친척 가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참 과부입니까? “참 과부로서 의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5-6절)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가 도와야 할 과부는 영적으로 존경할만한 자로서 그 믿음을 나타내고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돌볼 자녀나 손자도 없고, 있어도 불효자들이라서 그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밤낮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입니다. 일락, 세상 쾌락을 좋아하지 않는 자입니다. 세상 즐거움을 좋아하는 과부는 육체적으로는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방불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둘 다 사랑한다면 실제로는 세상을, 사탄 마귀를 따르는 자입니다.
참 과부는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10절) 하였습니다. 사실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행실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자기 자녀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녀들까지 양육하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입니다.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환난 당한 자들을 뿌리치지 않고 돕는 자입니다. 또한 성도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는 겸손한 자입니다. 이처럼 모든 선한 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참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9절) 하였습니다. 참 과부의 외적 기준이 60세는 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부 되기 전에 한 남편의 아내로서 정조를 지키던 자라야 합니다.
60세가 안된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11절)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참 과부의 자격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대부분의 젊은 과부는 교회를 섬기려는 헌신이 정욕으로 인하여 나뉘어 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았느니라”(11절하-12절)고 하였습니다. 즉 나이가 젊었기에 정욕이 아직 강하게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헌신을 약속했지만 정욕 때문에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가고자 할 때 변하더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충고한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7:8-9)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처음 믿음을 저버렸다’는 뜻은 젊은 과부들이 평생 동안 그리스도에게, 교회에 온전히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저버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 시집을 가고자 하니 심판을, 책망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13절)라고 한 것처럼, 미성숙하여 인생의 목적이 없는 자들처럼 게으르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늘 기도와 간구로 선한 행실의 증거를 가진 참 과부와 달리, 젊은 과부들은 대부분 시간도 낭비하며 교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마땅히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젊은 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14절)고 권면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을러서 남의 집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젊은 과부들은 사탄 마귀가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고, 더 이상 죄 짓지 말고 시집을 가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부지런히 집을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목적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15절) 한 것입니다. 아마 젊은 과부들 가운데 애초부터 참 믿음이 없었기에 그리스도에게, 교회에게 서약한 것을 아예 깨뜨리고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서약을 해놓고 믿지 않는 사람과도 결혼하면서 있는 것 같던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린 바 되어”(딤후 3:6)라고 한 것처럼, 사탄에게 사로잡혀 떠난 어리석은 여자나 거짓 교훈에 넘어간 자들입니다.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 말입니다(딤전 4:1).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에 속한 자이거나 악령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거나 사탄의 공중권세를 잡은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약 4:4)고 하였고,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잘 모릅니다.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때가 되면 심판하십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물론 오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구제 사역을 할 때에 어떤 원칙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무분별하게 나눠주면 안됩니다. 과부인 경우에는 잘 판단하여 참 과부에게 구제해야 합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하고 돌보아야 할 자들을 찾아내어 구제해야 합니다. 참 과부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가 있는지, 손자가 있는지, 친척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이 먼저 과부를 돌보아야 하게 해야 합니다. 안하고 있으면 권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저히 능력이 안된다고 한다면 교회가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과부가 참 믿음이 있어서 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와 간구로 살면서 선한 행실을 하는 자라야 합니다. 즉 영적으로 성숙함과 선한 행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런 분들을 교회가 돌보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젊은 과부가 있으면 가능하면 재혼을 하게 권면해야 합니다. 물론 젊은 과부 중에도 성숙하며 온전히 주께 헌신되어 잘 섬기고 있으면 도와야 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젊은 과부는 정욕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다시 믿음의 남자를 만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가정을 꾸미고 섬기고 바쁘게 살도록 말입니다.
과부만이 아니라 고아나 나그네들, 학대를 받고 사는 사람들을 교회는 도와야 합니다. 개개인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고,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여기도록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한 인생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는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사명을 지혜롭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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