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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11-19 (일) 08:21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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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0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를 (민 11:1-15)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하였기에(요일 3:15) 더욱 겁이 나서 누구를 미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싫어하는 사람은 좀 있는데 가장 싫은 사람이 옆에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무엇을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주어진 환경을 탓하거나,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의 책임이 큰데 말입니다. 그런 분과는 정말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과 같이 있다 보면 나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위대한 모세도 자신이 이끄는 백성들이 광야 행진 중에 원망하고 불평하니까 자기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올 때 섞여서 나온 무리가 탐욕으로 불평을 시작한 것입니다(4절).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이방인들(출 12:38)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 이스라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기적을 체험하고 출애굽할 때는 좋았는데 광야에 들어와 약 1년 정도 지난 다음, 힘들고 고기가 먹고 싶어서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덩달아 이스라엘 백성들도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이렇게 원망과 불평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를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전에는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의 10가지 재앙을 목도하고 나서 출애굽을 했건만 홍해가 가로 막혔을 때에도 금방 원망과 불평을 했었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로 들어왔을 때에도 먹을 것이 없다고, 물이 없다고 원망과 불평을 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불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의 문맥은 출애굽하여 1년 정도 광야 생활을 하고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십계명 등 율법을 받고 내려왔을 때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던 그들이 모세의 중보기도로 심판을 면하고 나서, 모세는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과 율법을 받고 내려와서 가데스 바네아로 진행한지 3일이 지난 것이었습니다(민 10:33).
그 때 악한 말로 여호와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었습니다(1절). 낮에 진행하는 데 햇빛이 뜨거우니 구름기둥으로 가리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민 10:34). 이런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 환경을 좋게 해주어도 불평이 끊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그들이 악한 말로 불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여호와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1절) 하였습니다. 자신을 향해 악한 말, 은혜를 모르는 반항하는 말로 원망하는 것을 듣고서 아마 하나님께서 번개로 내리치셔서 천막 한 끝이 불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불사름’의 뜻인 ‘다베라’라고 칭했던 것입니다(3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하셨고,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6:9)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고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2)라고 하셨습니다.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우리가 하는 행동을 다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계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거짓말, 험담, 비방하는 말뿐만 아니라 옆 사람에게 불평하는 말도 다 듣고 계십니다. 물론 선한 말, 사랑의 말도 다 듣고 계십니다. 불신앙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는지, 아니면 경외하는지 우리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말하기 전에, 들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한 말로 서로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니까 금방 진노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그 백성들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니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기도 함으로 불이 꺼졌습니다(2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중보기도에 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가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기를 만났을 때 성령에게 사로잡힌 하나님의 사람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성령에게 사로잡힌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중보기도팀 모두가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너무 충격적인 것은 자신들이 악한 말로 하나님께 원망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내리는 것을 경험하고도 얼마되지 않아, 앞서 언급한 많은 이방인들의 영향으로 또 하나님께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만 먹는 것에 싫증이 나서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합니다. 울면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겠느냐고 합니다(4절). 그러면서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5-6절)라고 합니다. 광야로 나와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하늘에서 기적 같이 내려온 만나였습니다. 7-9절까지 그 만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코 맛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맛이 기름 섞인 과자 맛 같았다고 했습니다(8절). 그런데 지금 이 따위 만나 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면서 그렇게 잘 먹지 못했습니다. 5절에서 고기에 대한 언급이 없듯이, 고기는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저 고기가마 곁에서 지키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출 16:3). 고기 부스러기나 주어 먹었을 뿐입니다. 그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현재를 불평하며 과거에는 좋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요, 예표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일시적인 만나보다 더 나은 영원한 생명의 떡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탐욕으로 세상 것들을 원하며 불평하는 신자가 있다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합니다.
얼마나 한심하면 고기를 못 먹고 있다고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10절). 그것을 모세가 들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심히 컸다고 합니다. 모세는 또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세가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함께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게 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11-14절)고 말입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께 왜 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불신앙의 백성들을 자기에게 맡겨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아주 어린 젖먹이처럼 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자신은 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행스러운 것은 모세는 사람에게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직접 불평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에게도 불평하지 말아야 하지만, 사람들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사람들에게 불평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전염이 되어서 완전히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말을 왜곡되게 하기도 하고, 과장하기도 하고 해서 어떤 때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평을 사람에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불평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서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요.
그러니 정히 어쩔 수 없어서 불평하려면 사람에게 하지 말고 모세처럼 하나님에게 불평하세요. 토해내세요. 탄식하세요. 그것은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밖에 들을 수 없는 자리에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전혀 불평을 하지 않으면 더 좋지만, 믿음이 적어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원해서 그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지 순종하여 여태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젠 정말 더 이상 감당이 안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15절)라고 하였겠습니까? 마치 로뎀 나무 아래 엘리야처럼 죽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도저히 못 감당하겠으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었던 것을 말입니다(막 14:36). 물론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그래도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우리도 배워야지요.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있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 평안과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행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현재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조금만 자기 마음에, 자기 뜻에 무엇이 잘 안되면 원망과 불평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자신들을 출애굽하게 하셔야 했고, 광야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것을 해결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잘 먹고, 잘 입고, 따뜻하고, 춥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노예의 삶을 기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바로 왕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탈출하게 된 것을 벌써 잊었습니다. 1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건져주신 것 생각하면, 노예의 삶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을 생각하면 잘 못 먹어도, 잘 입지 못해도, 좀 덥고 추워도 감사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자주 자주 강조합니다.
우리의 입에서도 자꾸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이유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축복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떻게 현재의 우리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거두어 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건강을 주시고, 직장을 주시고, 사업체를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근데 정말 당연합니까? 아니 남들과 비교하면서, 그것도 자기보다 더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부모를, 남편이나 아내를, 자녀들을 원망하며 불평합니까? 그러시면 본문에 나오는 많은 이방인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감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일의 소망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 후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참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왜 빨리 도달하지 않느냐고, 왜 이렇게 멀지’ 하면서 짜증과 신경실을 내며 불평하는 것은, 광야를 지나야만 가나안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애굽에서 직접 가나안으로 갈 수 없다는 상식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은 불신앙의 결과로 한달이면 도달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을 39년 이상 걸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우리에게는 더 좋은 날이 온다는 소망이 없다면, 그 꿈을 잃어버리면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을 지나야 내일이 온다는 상식을 왜 잊고 사십니까? 오늘보다 내일이 훨씬 더 좋을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정말 이 세상보다 우리가 맞이할 하늘나라는,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은 더 이상 고통이 없는, 아픔이 없는, 죄를 모르는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휘황찬란한 곳이라고 계시록은 말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고대하던 주님을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헌데 한 해를 돌아보기 전에, 오늘 지금 이 시간 그저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어도 말입니다. 바울에게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로마 감옥에 갇힌 그의 고백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고 하였고, 이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하였습니다.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삶에 자족하십시오.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옆 사람에게 원망이나 불평하면서 그저 내가 불행한 핑계거리를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여정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 감사하십시오. 광야를 지나지 않고는 가나안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현재 없는 것보다 있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을 헤아려 보세요. 하늘에서 내려주신 복을 세어보세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지금 우리의 감사를, 찬송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Charles Wesley 가 쓴 찬송이 생각납니다.
만 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 다 가지고 구주의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내 은혜로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고 그 크신 영광 널리 펴 다 알게 하소서.
내 주의 귀한 이름이 날 위로하시고 이 귀에 음악 같으니 참 희락되도다.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하셨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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