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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8-31 (화) 00: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844    
[8/29/04] 영적 부흥
영적 부흥 (느헤미야 8:1-12)
지난 두 주일에 걸쳐서 저는 혹시 우리 교인들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사망을 지나고 있는 분이 있을까 싶어 설교 도중에 복음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초청한 바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자리에 앉은 모든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 생각하고 말씀드립니다.
참된 성도라고 한다면 누구나 부흥을 소원합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영적으로 새로와지며, 하나님께서 만져주셔서, 고침과 치유와 회복으로 과거에 받았던 어떤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합니다. 죽은 자와 같이 무기력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시는 특별한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부흥, 내 가정의 부흥, 내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소원합니다.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역사상 큰 부흥, 진짜 부흥은 언제나, 반드시 그 부흥의 힘을 제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둘째는 그 말씀에 반응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약 450년 전에 하나님께서 독일에 있는 몇 사람들의 심령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그 사람들의 심령에 말씀으로 불을 붙이시니 루터를 중심으로 칼빈, 멜랑톤, 쯔윙글리와 같은 사람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전 나라가 아니 유럽 전체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위클리프가 작은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존 허스가 거기에 석탄을 붓기 시작해서 루터에게로 번진 것이었습니다. 주후 1572년 타락한 로마 캐톨릭을 개혁하는 종교개혁이, 신앙의 영적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불꽃은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번지게 되어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피의 여왕 메리를 향하여 ‘옛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 이라고 외치며 영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화형을 당하는 순교를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200여년이 지난 이후에 웨슬리 형제가 등장하여 다시 한번 영국에, 유럽에, 미국에 부흥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개혁하며 움직이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디 엘 무디 목사 등이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1880년에 복음이 들어온 후에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 선주 목사님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전국으로 부흥의 불길을 비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제의 침략을 준비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핍박 속에서 우리나라 기독교는 더욱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공동체적인 영적 부흥 가운데 한 장면이 오늘 본문 느헤미야서 8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중건한 후에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을 수문 앞 광장으로 모이게 합니다(1절). 그리고는 학사 혹은 서기관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와 백성들에게 말씀 선포를 하도록 합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보다 약 16년 앞서 제 2차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고향으로 귀환하는 일을 맡아왔었습니다. 사실 에스라가 먼저 성벽 재건을 추진하였지만, 심새라는 사람이 방해하자 낙담하여 그만 일을 중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책은 통달하고 있었지만, 행정적인 지도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이제 자기의 소임은 끝났고, 자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에스라에게 성벽 재건보다 더 중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재건, 부흥을 위한 일을 맡깁니다. 건물도 중요하였지만, 이제 그 건물 안에서 거하는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염려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만이 백성들을 깨우치고 영적 회복과 부흥을 가져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2-3절)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므로 그들이 듣습니다.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영적 부흥의 첫 단계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부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존귀히 여기는 태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5-6절) 하였습니다. 일어선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대 문화권에서는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면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집중함으로 말씀을 받을 준비를 다 했다는 것입니다. 아멘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찬양에 화답하였다는 것은 승복을 뜻합니다. 그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8절) 하였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풀어 설명하여 그들이 들은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져야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말씀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뼈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 고 물으면 적어도 ‘성경 말씀에 이러이러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행동의 근거, 변호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이고,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성경이 이렇게 명령하기 때문이며, 내가 이것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이 그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대일 양육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이 더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설교 말씀만 듣고는 여러분 자신과 가정에, 교회에 이러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말씀을 듣고, 공부하여 이해가 되어지고 깨달아져야 그 다음 단계인 실천, 적용이 가능합니다. 에스라의 말씀 해석을 듣고 난 후에 백성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백성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9절상) 하였습니다. 왜 그들의 울었습니까? 지은 죄에 대한 회개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랐던 때에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열조가 지은 죄도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진노하셨던 가를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영적 부흥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죄가 더욱 잘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환하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영적 부흥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지은 죄에 대한 애통함입니다. 물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죄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내가 너희들의 죄들를 용서한다. 그리고 그 죄들을 다 잊어버리겠다. 회개하는 자들을 다 받을 것이다.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나아오라’ 하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만 울어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고정하고 더 울지 말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그만 슬퍼하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합니다(9절하-11절). 그랬더니 백성들이 또 순수히 반응합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12절)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즉, 자비와 긍휼과 그 진리에 대한 깊은 앎, 경험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곧 회개와 감격의 눈물 다음에는 감사하며 기뻐 즐거워함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 교인들은 때때로 애통하기는 잘 하여도 기뻐하기는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 기쁜 일이 있어도 애통하고 눈물을 흘리니 말입니다. 회개할 때에는 물론 울어야 하지만, 성도의 삶 자체는 기뻐하는 삶입니다. 원래 주일(the Lord’s Day)은 무엇을 기념하는 날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주일 아침 예배만큼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 날은 부활의 능력이 충만해야 하고 성도의 얼굴에 밝은 빛이 나야 합니다.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냥 무덤에 계셨다면 그럴 수가 없겠지만,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 죄를 애통하는 마음으로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십자가 죽음은 믿어도 부활은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과 말씀과 은혜를 힘입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부흥을 체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영적 부흥을 경험하는 교회 안에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위대함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 가운데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각성이 회개로 이어지고, 그 합당한 열매를 내면서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이 그 입술에서 나옵니다. 물론 이러한 부흥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간절히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것이지요.
느헤미야는 참으로 어렵게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한 후에,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중요한 백성들의 영혼 재건, 영적 부흥에 눈을 돌렸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기보다 나은 전문가 에스라 학사를 세워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읽히게 하고, 설명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심령에 부흥을 일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씀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애통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부흥에 필요한 두 요소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우리 가정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변화를 받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삶이 된다면 부흥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 중심으로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만약 제게 천 개의 영혼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전 삶을 오직 하나님 만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천국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저희 모든 소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썩을 몸은 이제 이 집에서 밖으로 나가 묘지에 묻힙니다. 그리고 거기는 저에게 어울리는 장소인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섬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큰 위안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조금이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섬길 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더 우리 주님을 많이 섬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아픕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시며 섬기셨던 예수님처럼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 무슨 가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살며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온 뜻을 행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만족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인디안 선교에 일생을 바친 데이빗 브레이너드 선교사의 장례식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설교를 하였는데, 고인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나눈 대화 중 일부를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 말고는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부흥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흥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섬기는 모든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부흥이 오지 않는 것을 핑계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힘쓰도록 명하신 일들을 태만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 부흥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부흥이 오지 않아도 항상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한 편의 설교로, 성경공부로, 제자훈련으로도 수많은 죄인들을 회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와 신앙 양심에 따라 가르칠 것입니다. 커다란 감동을 받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없어도, 여러분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돕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많은 선교비를 사용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단 몇 사람 밖에는 예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후원할 것입니다. 부흥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전도할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부흥을 주시면 이룰 수 있는 위대한 결과와 그렇게 수고하여서야 얻을 수 있는 적은 결과 차이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여 애써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 때문에, 좋으신 주님을 그렇게 초라하게 섬기는 처지 때문에 흐느끼면서 섬길 것입니다.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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