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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10-04 (월) 22:0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813    
[10/3/04] 웃으며 즐거워하는 성도들
웃으며 즐거워하는 성도들 (느헤미야 12:27-47)
만약 ‘행복(happiness)’이 무슨 병이라면 아마 ‘행복병’ 만큼 전염이 잘되는 병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주 웃으며 즐겁게 산다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며, 친구를 만드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물고기가 어항 안에서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마음껏 그 생명을 누리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주께서 주시는 모든 필요를 누리며 마음껏 영생의 삶을 즐기고 산다면, 그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주위에 그 행복을 전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하고 늘 우울하고, 근심하며, 힘든 삶 속에 짜증을 내며 신경질을 부리고 사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만약 선생님들이라면 그 학생들에게, 세일즈 하는 사람들이라면 고객들에게, 직장의 매니저라면 그 부하 직원들에게, 사업체의 주인이라면 고용인들에게, 의사라면 환자들에게,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에게 행복이나, 불행을 전염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열악하고, 힘들어도 그것에 지배를 받지 않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미소를 지으며 웃고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을 전달해 주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입니까? 웃음을 잃어버리고 산지 오래되지는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지도자들이라면 더욱 웃고 즐거워하며 행복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따르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를,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 “웃을 때는 세상이 너와 함께 웃고, 울 때에는 너 홀로 운다”! 그런데 사실 나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고 즐기며 사는 것 같고, 모두 다 울며 지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마치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듯이 말입니다. 오늘 느헤미야 12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행복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1장부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느헤미야 시대에 사람들을 낙담하게 하는 많은 환경들이 있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가장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며 고통의 날들을 지내고 있던 백성들입니다. 자신들의 부모, 할아버지 세대가 이방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였고, 이방 왕의 은혜로 제 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와 보니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모든 것이 황폐하였던 시대였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36년의 억압을 받고 미국의 도움으로 해방이 되었던 당시 우리나라 상황이나 6.25 전쟁이 끝난 후의 상황을 연상시키시면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웃고 즐거워할 마음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과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생각하고 웃으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오늘 본문의 교훈이 우리의 무거운 짐들을 가볍게 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우리 인생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생활 속의 스트레스나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 등이 줄어들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즐거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12장 27절을 보면 완성된 예루살렘 성벽을 하나님께 봉헌하려는 낙성식을 하려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봅니다. 아마 성 안에도 조금씩 새로 집들이 세워지게 되면서 새로운 모습들이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 할 일은 많지만 성벽은 튼튼하게 잘 세워졌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재건된 성벽을 봉헌하려는 것이 느헤미야의 마음에 있었는데, 백성들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서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있었던 모든 어려움들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27절)! 아마 느헤미야가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온 나라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기쁨의 축제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을 하나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30절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니라” 하였습니다. 기쁨의 축제를 하기 전에 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백성들과 성문, 성까지 정결케 하는 예식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은 죄를 씻는 속죄 제물을 통한 예식을 뜻합니다. 성벽 봉헌의 축제를 시작하려면 그들의 마음부터 정결하게 되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행복을 누리며 살기 원하고,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해 주려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즉 ‘행복(happiness)’에 앞서는 것이 ‘거룩(holiness)’입니다. 지도자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모든 성도가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얼굴의 첫 걸음은 청결한 마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책감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가지고 웃을 수 없습니다. 죄악과 함께 즐거워 할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면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청결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이제 봉헌식 행진하는 장면을 보십시다. 31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렬을 지어 성벽 위를 걸으면서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전에 살펴보았던 말씀에서 이스라엘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하며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그들의 성벽 재건을 비웃으며 “저들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4:3)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란듯이 성벽 위를 행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의 행진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성 남단에 있는 분문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무리는 동쪽으로 다른 무리는 서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동쪽으로 올라가는 무리는 에스라의 인솔 하에(32-36절), 서쪽으로 올라가는 무리는 느헤미야의 인솔 하에 움직였습니다(38-39절). 그렇게 성벽을 양쪽으로 타고 올라가서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 합류하였습니다.
양문에 이르러서는 에스라의 지휘 아래 다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어떠한 모습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분문에서 시작해서 한 팀은 에스라가, 또 한 팀은 느헤미야가 인솔하여 양문 앞에 이르니 그 곳에 성가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리가 당도하자 찬송 소리가 온 성에 울려 퍼지고 모든 백성이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게 바로 예루살렘 성벽 낙성식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43절을 보십시오.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니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멀리까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Football 경기장에서 Home Team 이 Touch Down 을 할 때에,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에 들리는 함성과도 같았겠지요. 아마 오랫동안 그들의 머릿 속에 기억하고 싶었던 날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솔로몬은 그의 지혜서 잠언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고 하였습니다. 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진리입니까? 오래 살기 원하십니까? 웃으며, 즐겁게 사십시오.
다시 한번 반복하여 말씀드립니다. 즐거운 마음은 옆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늘 웃고 찬양하는 사람은 그 주위에 웃음과 즐거움을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하면 아이들이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어느 때든지 말입니다. 나쁜 환경과 힘든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보통 사람이 다 웃고 즐길 수 있는 상황에 웃고 즐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과 사물들을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들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겉으로 드러난 환경이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웃음을,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까? humor가 있습니까? 여유를 가지고 사십니까? 세상 일과 대인관계 속에서 있는 스트레스 속에서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 도우심을 인하여 성벽 위를 진행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함께 찬송하였습니다. 그들의 기쁨이 넘쳐서 그 소리가 온 동네에,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그들의 환경이 바뀌어 졌습니까? 아닙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세워졌을 뿐입니다. 계속 불평과 불만이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성벽을 재건하느라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또 지난 주일에 보았듯이 아직 황폐한 성 안에 살아야 했습니다.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만 그들이 변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더의 지도 아래 성벽이 재건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의 영혼이 회복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물론 속죄 제물을 드림으로 그들의 마음이 먼저 청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감사와 찬양이, 기쁨과 즐거움이, 웃음이 넘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죄 사함을 받으셨습니까? 십자가의 보혈로 마음이 정결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변화를 받아 이 짧은 인생 큰 그림을 그리고, 멀리 내다보시고 사십시오.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시면서 여유를 가지고 웃으시며, 즐겁게,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향한 뜻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이 불행하여 지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확실히 믿으십시오. 귀한 진리의 말씀들을 붙잡고 행복을 가꾸어 가십시오. 그래야 전도도 되지 않겠습니까? 불신자처럼 똑같이 살면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여러분의 행복을 빼앗습니까? 여러분 주위에 행복을 전달하십시오.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 늘 웃음꽃이 활짝 피고, 늘 찬양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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