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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5-03-08 (화) 04:0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802    
[3/6/05]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시작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사도행전 1:15-26)
많은 교회들이 옛날 초대교회의 순수한 모습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종종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고 외치며 개혁하려는 모습을 봅니다. 초대교회라고 해서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할 지를 살펴서 배우고 적용하면 우리도 초대교회가 누렸던 큰 부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첫째 초대교회는 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전에 예루살렘교회 태동 과정에서 그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본문을 중심으로 잘 살펴보며 우리 교회도 배우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시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들이 머물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12절).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120명이 모였는데(15절),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14절) 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성령강림을 준비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지극히 평범한, 연약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다만 약속의 말씀을 믿고 모였습니다.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성령강림을 사모하며, 재림을 준비하며 모였습니다. 전혀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합심하여 모였습니다. 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모였습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첫째, 바로 이것이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 전체가 일심으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모여서 놀자는 모임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각기 개성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한 가지 공통점으로 교회 안에서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말이 통해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화의 소재나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 서로 같이 만나 교제를 해야 재미가 있고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성도들만의 특수한 언어입니다. 영적 교제의 의사 소통입니다. 이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의 참된 지체들이 될 수 없습니다. 더더욱 함께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통하지를 않는데 무슨 교제가 있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서로 만나고, 기도 제목을 서로 나눌 줄 아는 성도들 사이의 영적 교감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뜨겁고 강력한 줄 아십니까? 저는 정말 기도하시는 분들과 함께 일할 것입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심야기도회, 중보기도회, 그리고 구역 모임에서의 진실하고도 뜨거운 기도를 나누시는 분들을 만나면 그만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바로 이런 기도를 통한 영적 일체감을 통해서, 이전에는 그렇게 서로 달랐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한 성전이 되어 가며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기도로 서로 대화할 줄 아는, 아니 기도로 항상 통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성도들이 되어서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마음들을 항상 하나로 묶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도가 성경을 통하여 일들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15절 하반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에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되었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중에도, 우선 가롯 유다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의 예언을 깨닫게 됨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는 가롯 유다의 배반이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한” 일이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여기 “지로하다”는 말은 ‘길잡이 노릇을 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기기 위하여 잡으러 온 자들의 길잡이 노릇을 한 유다에게 마지막에 일어난 자세한 일이 본문 18-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복음서의 기록과 연결시켜 볼 때에 가롯 유다는 스스로 목메어 자살을 했는데, 아마 벼랑 끝에 목을 달았다가 그 시체가 아래로 밭에 떨어지면서 배가 파열되고 창자가 튀어 나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유다가 죽었던 밭이 그 당시까지 “피밭”이라고 불리게 된 것을 두고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라는 다윗의 시편 69편 25절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라는 시편 109편 8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유다의 자리를 이제 메워야 할 때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베드로는 주님 승천하신 후에 기도하면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왜 성경 공부가 중요한가를 또다시 깨우쳐 주는 내용입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없는 그 자리에서 초대 예루살렘교회로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바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가롯 유다에게 있었던 사건의 의미와 지금 예루살렘교회가 당장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를 찾았던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많은 목사들이 그런 상황에서 교인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도 하고, 교회 회칙 개정 위원회를 만들기도 하고, 제직회, 공동의회도 몇 번씩 모이면서 공정한 무기명 투표를 통하여 의견을 찾아보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시 109:8)이 바로 베드로와 예루살렘교회로 하여금 그들의 처한 역사적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길을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경을 통하여 시대적 상황을 잘 파악하여 교회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이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을 때에 “발의 등이요 길의 빛” 되는 말씀을 가지고 그 앞길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저는 정말 그런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 교인들도 무슨 문제이든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연구하며, 목사에게 물어보는 자세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 이 혼란스러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면서 교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성경에서 그 확실한 원리를 가르쳐 주는 대로 나아가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제가 그러한 목사가 되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들도 그러한 교인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오직 성경만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놓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저도 더욱 열심히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여러분들도 성경 공부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선지자들과 사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21-26절에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교회는 유다를 대신할 사도 한 명을 선출하는 일에 착수하였습니다. 그 사도직분을 감당할 후보자의 자격은 두 가지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주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즉 다른 열 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공생애 전체 기간에 걸쳐 항상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그 전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직접 듣고 목격한 자라야만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자격은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부활을 친히 목격한 자로서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된 구원의 능력이 됨을 확실히 증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도직을 대신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 공생애 복음과 부활증거를 함께 전할 수 있는 제1차 목격자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격을 갖춘 후보자로 두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정은 제비를 뽑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구약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받기 위하여 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대상 26:13-16; 잠 16:33; 레 16:9-10; 느 11:1; 수 15:1, 16:1 등).
오늘날 이것을 본받아서 교회의 직분자를 선출할 때에 제비를 뽑는 교회들의 있는데 조심해야 될 줄 압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제비를 뽑기 전에 우선 자격이 있는 자들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왔지만 한 사람 밖에는 안되기 때문에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지도자의 자격은 생각하지 않고 제비만 뽑는다면 미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결코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교회가 처음으로 안수집사 일곱을 세울 때에도 제비를 뽑지 않고, 사도들이 교인들 가운데 자격이 있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교회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제비 뽑기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그 특별한 선출 결과 맛디아가 결정이 되어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되는” 열두 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열두 사도들이 초대 예루살렘교회 설립의 근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열두 사도들이 보고 들었던 대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역, 그리고 그들이 목격하고 죽기까지 증거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바로 이것들이 초대교회 설립의 확고 부동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사도의 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가 된 것이며, 바로 그 터 위에 초대교회 중에서도 첫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아무도 이런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만나 본 그 사도들의 증거 외에 교회에 필요한 또 다른 계시가, 다른 복음이란 결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잘 믿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도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되 사람들의 헛된 전설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생애를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었던 사도들의 증거가 있어야만 예수님의 복음을 제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되 거짓말하는 이단들의 감언이설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하였던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만이 그 주님께서 남겨주셨던 영생의 약속을 제대로 믿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사도들이 증거했던 대로 믿고 그들의 믿었던 대로 믿는 그것만이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사도들의 증거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꼭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들어야 하며, 그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마치 예수님께서 친히 쓰신 말씀처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엡 2:20)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루살렘교회처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주의 교회를 이루어가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곧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령 강림을 기다렸고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헌법도 없었고, 참고로 할만한 어떤 전례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는 그 첫 출발점에서부터 바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직 함께 기도함으로써 모든 마음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거룩한 공동체로 시작되었습니다. 창립멤버 120명은 예외 없이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의 교회의 모습도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통하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또한, 오직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동참하고, 부활의 목격자 된 사도들의 증거를 기초로 세워져 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오직 함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뿐 아니라 서로의 교제도 영적으로 이루어지며, 오직 성경 말씀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기초로 튼튼히 하며 주님께서 피값 주고 사신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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