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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3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138    
[9/18/05]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사야 49:14-17)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낙망이 되고, 절망이 되는 상황 말입니다. 혼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점점 더 암담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그냥 모든 것을 자포자기해 버리고 맙니다. 이 지경에 이르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요행을 바라는 것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 요행이 통하지 않으면 결국 멸망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폐인이 되어 막 살던지, 자살을 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맨 밑바닥이라 하더라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을 불신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자기 생명 줄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는 우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후에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오랜 포로생활의 역경 중에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록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아 그렇다고 생각하더라도 1-2년이지 수십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고, 아주 잊어버렸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14절).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면서 하신 말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16절상)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중에 고난을 겪고 있는 그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자기 창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내가 너를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 주인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고 하였습니다. 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 말은 너는 나의 손에서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도 고백하기를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다”(욥 10:8)고 고백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택하셔서 부르시고, 믿음 주셔서 자기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우리의 존재가 존귀하고,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만들었고,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내 자녀로 삼았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어미가 자기 젖먹이 자식을 버리며, 태에서 난 아들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이 세상 여인들 가운데는 자기 자식도 버리는 비정한 여인이 있을 수 있으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표현은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너를 잊지 않고 있다. 나는 너를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가족들의 사진을 갖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랑한다는 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보고 계시는 사랑, 기억하시는 사랑, 가까이 안고 계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자기 보호를 의미합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은 나는 너를 지금 붙잡고 있다, 지금 내 손으로 품에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떤 손입니까? 생명과 능력의 손이 아닙니까? 은혜와 축복의 손이 아닙니까? 성경 여러 곳에서 주의 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손이 나를 지키고, 주의 손이 나를 건져내고, 주의 손이 나를 높이고, 주의 손이 나를 어루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손이 우리의 대적을 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17절에도 “네 자녀들이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지금 바벨론 포로로 그 권력 아래 있는 것 같아도 실제는 하나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본적은 하나님의 손바닥이요, 이스라엘의 현주소도 하나님의 손바닥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 있어도 실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생명과 능력과 은혜와 축복의 손 안에 있는 줄을 믿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0:28)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성도는 이 세상이, 사탄 마귀들이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감히 누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바닥에서 우리를 빼앗는다는 말입니까? 영원히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자기 주권적 사용을 의미합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은 나는 너를 내 손에 잡고 쓸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를 진흙으로 빚는 그릇으로 종종 표현합니다(렘 18:1-12; 롬 11:19-21).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 64:8)고 하였습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진흙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진흙은 토기장이의 원하는 대로, 여러 종류의 그릇이 되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은 토기장이의 목적 용도에 따라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릇이 선하게, 의롭게, 복되게, 영광스럽게, 형통하게 쓰여지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영광스러우시며, 형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탄의 손바닥에 새겨진 자들은 결국 악하게 사용되고 맙니다. 바로 그 멸망자의 이마나 손에 받은 666의 표입니다(계 13:16-18). 우리는 악한 사탄의 손바닥에 새겨진 자들이 아닙니다. 그렇게 때문에 궁극적으로 영광스럽게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는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 결과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슨 크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참으로 힘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성경에 나오는 욥과 같겠습니까? 당대에 부자로, 많은 자녀들과 가축들을 거느리며 아내와 함께 편안하게 살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모든 것을 다 잃고 몸에 죽을 병까지 얻었던 욥이었습니다. 믿었던 친구들에게서도 네가 지은 죄 때문에 그렇다는 비난을 받았던 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전보다 배가 되는 축복을 하셨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과 같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하였고,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여러 번 맞았으며, 파선한 배에서 절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만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충분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불신으로까지 떨어질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욥도 바울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줄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기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욥이나 바울 같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겠습니까? 잠시 여러분의 마음을 가다듬고 비교를 해 보십시오. 여러분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욥이나 바울은 죽음의 고비에서 끝까지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뜻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창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부르시고, 자기 것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어느 때도 잊지 않으시는,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보호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들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용의 목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손바닥에 새긴 증거는 무엇입니까? 오실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49장 1-11절에도, 52장 13절-53장 12절에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8). 그리고 지금도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통하여 그 손바닥에 새겨진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증거를 보이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권고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것을 확실히 믿으라고 하십니다. 어떤 어려움, 고난에 처하더라도 말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절망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음을 믿으십시오. 무슨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 위하여 쓰임 받게 하기 위함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간절히 도움을 청하십시오.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ever-present help)이시라”(시 46:1)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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