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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7-02-06 (화) 07: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981    
[1/21/07]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3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3 (히브리서 12:1-3)
새해를 맞아 저는 여러분에게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에는 빌립보서 3장 10-11절 말씀으로 사도 바울처럼 우리 모두가 올해는 주님을 본받아 자신을 죽이고 살자고 했습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죄에 대하여 죽어야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내 이웃이 살고, 내 교회가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을 본받는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디모데전서 4장 7절 말씀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훈련하라고 하였듯이 우리 자신이 죽는 데에, 주님을 본받는 데에 필요한 것이 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 없이는 주님을 본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훈련 중에 가장 기초 훈련이 우리 삶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복잡한 삶을 정리 정돈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음,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신랑되신 예수 앞에 정결한 처녀로 서기 위하여서도 그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단순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하였습니다. 여기 충성(faithfulness), 혹은 신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맡은 일에 자신을 꾸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등상보다는 개근상이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상입니다. 훨씬 더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신실함을 본받기 위하여 우리가 받을 훈련이 버리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하였습니다. ‘이러므로’라 함은 11장에 나타난 신실하게 살다가 주님께로 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교훈을 가리킵니다. 그들도 다 경주(race)를 했다고 합니다. 경주를 하는 길은 선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최측에서 미리 정해놓듯이 우리 모두는 정해진 그 길을 경주하는 선수입니다. 그 길에서 이탈하면 실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점은, 목적지는 천국이며, 주님을 온전히 본받는 것입니다.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경주를 시작할 때에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함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마라톤을 하는 선수가 무거운 짐을 지고 뛰겠습니까? 경주하는 데에 지장이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죄는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시기, 질투, 자존심, 교만, 남을 비방하고 흉보는 말, 세상적인 욕심, 등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본문의 문맥을 생각하면 그 죄는 불신앙(unbelief)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장에서 믿음을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얽매이기 쉬운 불신앙을 벗어버리고 정말로 주님을 신뢰하면서 인내로 경주하라는 말입니다. 정말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는 특징이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쓸데없는 것, 복잡한 것, 시끄러운 것, 헷갈리게 하는 것들을 다 정리하고 단순하게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그런 것들은 버릴만한, 포기할만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런 것들을 정리정돈하기 원하지 않겠습니까? 게을러서 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surrender) 것입니다. 내가 꼭 쥐고 있는 권리, 내 계획, 내 야망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면서 말입니다. 이 말이 곧 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지 못할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포기했습니다. 그 많은 재산도 버렸습니다.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도 롯에게 양보하며 포기했습니다. 첩에서 난 아들 이스마엘도 포기했습니다. 100세에 받은 아들 이삭도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놀랍게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님을 정말 신뢰하면서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절과 3절에서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집착하는 것들을 포기하는 훈련은 우리의 눈을 주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경주하는 사람은 결승점을 바라보고 뛰듯이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이 땅에서 경주하셨는가를 연구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 ‘바라보라(fix)’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방하라,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2000여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경주하셔야 할 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만을 바라보며 그 경주를 잘 마쳤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는 오해와 비난과 부당한 대우 등의 고난 속에 끝내는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는 않으셨습니다. 베들레헴의 요람에서 골고다의 십자가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포기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들이기에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결정하고, 사시는 대로 살고, 순종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시는 대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자신을 포기하시는 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주님을 본받기 원합니까?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주님처럼 자기를 비어 종처럼 행하십시오.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듯이 자신을 내어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기의 뜻을 포기하였듯이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결국 높이셨듯이 높이실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며,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신다면, 깊게 묵상한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보라 주님 은혜 영광의 빛 앞에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둘째로, 우리 자신을 주님과 비교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여기 ‘생각하라(consider)’는 원어의 의미는 비교해보다, 계산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은행에서 매달 재정보고서가 올 때에 우리 checkbook 과 비교해 보면서 오차가 난 것이 없는지 맞추어 보고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2절에 바라보라는 뜻이 주님을 연구하여, 주님의 생애에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3절은 우리의 삶을 주님의 본보기와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서 측정하고 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이번 주간에 여러분께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비참하게 여겨지거나, 혹은 한심하게 여겨진다면 여러분의 상황을 주님의 상황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게 되며, 비난을 받을 때면 우리 주님께서 그런 상황에서 참으신 것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앞으로 여러분이 세운 계획, 꿈, 야망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에 주님께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조정하신 것을 비교하며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삶의 기준을 예수님께 두십시오. 어떤 유익이 있는 줄 아십니까? 왜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자기에게 그같이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고 하였습니까? 여러분이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집착하는데 얼마나 에너지가 소비되는지 아십니까? 정말 피곤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을 잃기도 합니다. Let go! 그저 놓으세요. 주님을 신뢰하면서 내려 놓으세요. 그러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꼭 쥐고 있는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주님 앞에 내어 맡기세요. 여러분보다 주님께서 더 잘 돌보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던지, 사업체든지, 학업이든지, 대인 관계이던지, 결혼 문제이던지, 비자 문제이던지, 건강이던지, 취미 생활이던지 내려 놓으시고 맡겨 버리세요. 주저하지 마세요. 그저 단순하게 내려 놓으세요. 그러면 아마 여러분들도 놀랄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에너지가 있게 되는지. 얼마나 적극적인 사고를 갖게 되는지. 얼마나 삶이 쉬운지 말입니다. 물론 사탄은 여러분들에게 다른 생각을 심어줄지 모릅니다. ‘내가 그것을 내려놓으면 난 살 이유가 없어,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어’라고 말입니다.
한번 내려놓으면 처음이 제일 힘들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를 기억하십니까? 부모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 자녀는 평생 자전거를 배울 수 없습니다. 놓으시면 그 자녀는 스스로 배웁니다. 넘어지면서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만 놓으셔야 합니다.
평생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정말 자신을 포기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늘 남에게 받고만 살아온 사람들은 정말 버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속 사람이, 옛 성품이 포기하지 말도록 치열하게 싸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려 놓는 사람을, 포기하는 사람을 높이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그렇게 축복하셨고, 우리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높이셨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 길에서 이탈하면 안됩니다. 경주입니다. 결승점이 분명히 있는 경주입니다. 눈을 결승점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신 삶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자주 내 삶과 비교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조정할 것이 있으면 조정해야 합니다.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책임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개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를 묶어 놓는 것들, 무거운 짐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불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집착하는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돈이, 물질이 자꾸 얽어 매고 있습니까?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내 명예, 이름, position 이 얽어 매고 있습니까? Let it go! 아니면 내가 세운 계획이 나를 얽어 매고 있습니까?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조정하시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내어 두라는 말씀입니다. 꿈, 비전까지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자꾸 얽어 매고 있습니까?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자꾸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에너지를 다 고갈시킬 수 있습니다. 정작 주님을 위하여 쓸 에너지 조차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 한번 시도해 보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십니다. 더 많이 포기할수록, 내려 놓을수록 더 큰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정말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꼭 쥐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 놓으십시오. 여러분의 염려와 근심까지도 말입니다. 여러분께서 붙잡고 있는 것을 주님께 내려 놓지 않으시면 염려와 근심이 여러분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셨습니다. 이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믿음으로 주께 내려 놓기만 하면 주님께서 쉬게 하십니다.
바로 주님을 본받으려고 하는 성도들, 주님 닮아가기 원하는 성도들은 자신을 내려 놓는 훈련, 포기하는 훈련을 잘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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