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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6-10-10 (월) 06: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85    
몸과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신 5:18; 마 5:27-30)


계속해서 십계명 가운데 두 번째 돌판에 기록된 사람과의 관계 속에 우리 믿는 자들의 의무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너무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정의롭게(justly), 의롭게(righteously), 경건하게(godly)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 권위를 허락하신 부모를 공경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생명을 존중해야 함을 5계명과 6계명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7계명입니다. “간음하지도 말지니라”(18절)! 우리에게 절제된, 경건한, 순결한 삶을 살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마 부부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일 것입니다. 배우자가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한 것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는 믿음일 것입니다. 이것이 순결을 잃어버림으로 무너지면 부부 관계는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순결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7계명 강해에서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해치는 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 2:18-25). 또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그의 자녀로 귀하게 여기시기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어야 하는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히 여기며, 결혼의 신성 곧 성스러움(sanctify)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오늘 간음의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는, 실제로 간음한 행동입니다(27절). 몸을 더럽힌 경우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성적인 유혹은 끊이지 않았지만, 아마 오늘날처럼 성 문제가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또 상업적으로도 각계 각층에 성적인 문란을 조장하는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각종 매스컴과 인터넷은 Sex 를 이용하여 상품과 프로그램을 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요즘 조금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성 범죄율은 역사상 가장 높습니다. 쉽게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음행을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Sex 를 생리학적인 현상(biological behavior)으로 생각하며, 마치 먹고 마시고 자는 것과 동일시 여기게 되었습니다. 성욕(sexual desire)이 식욕(appetite)과 같이 인간의 본능인데 그 욕망을 채우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물론 성적 문란함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 지방에는 극심하였습니다. 그 영향이 고린도교회까지 미쳐서 신자들도 성적 문란을 용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강력하게 권면하기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 6:13)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생물학적 이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에게는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몸을 이루는 한 지체들로,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6:15, 19).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목적으로는 결코 사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게 죄를 범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에 고린도 지역을 타락하게 했던 사상이 오늘날은 더욱 범람하여 Sex 의 오용과 악용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성(性, Sex)은 결혼이라는 범주 안에서 즐기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물론 부부가 Sex 자체를 죄로 여기고, 거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금욕주의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성경은 금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 관계에 대하여 말하기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탄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3, 5)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부 간의 성적인 표현과 성관계는 결혼의 특권이자, 서로의 의무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지혜서에서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권면하는 것처럼 부부가 서로를 족하게 여기며, 항상 연모하여 사탄 마귀가 부부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제가 아는 신구약 성경 말씀에 의하면, 수 많은 죄 가운데 하나님께서 가장 중한 죄로 여기는 것이 우상숭배와 간음죄입니다. 이미 배운 대로 십계명의 1계명, 2계명, 3계명은 다 우상숭배에 대한 말씀이셨으니 우상숭배에 대하여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음행의 죄를 싫어하셨는가 하면, 모세의 율법에 간음죄에 해당하는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레 20:10; 신 22:22). 유명한 다윗이 충신의 아내를 간음함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습니까? 간음죄를 숨기려고 살인까지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며, 후궁들이 윤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죄 용서는 받았어도 말입니다. 한 순간의 쾌락이 나중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이라고 성적인 유혹을 받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성적 유혹이 올 때 반응은 오직 한 가지, 요셉처럼 피하는 것입니다. 도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심을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욥은 이르기를,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다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을 받을 악이요”(욥 31:9-11)라고 하였습니다. 즉 고대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은 육체적인 성범죄는 무엇보다도 내적인 마음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둘째로, 하나님의 눈에는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입니다(28절). 예수님은 “또 간음치 말라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절)고 하였습니다. 헬라어 문장에서는 대부분 주어가 생략됩니다. 왜냐하면 동사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주어인 “나(evgw,)”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자를 “보고”라는 동사는 현재 능동태 분사형으로 쓰였는데,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연히 여자를 보는 것이나 아름다운 여자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보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보면서 음욕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포르노 영화나 잡지, 인터넷을 보면서 육신의 욕망을 불어 일으키는 것도 말합니다. 눈에 보여질 때 즉각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 피하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 위하여 계속 보는 것은 곧 간음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다윗도 왕궁 지붕에서 우연히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는데, 본 것 자체가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 유혹에 이끌리어 그 여인을 불러 자기 침상에 끌어드린 것이 죄였습니다(삼하 11:1-4). 물론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Arthur Pink 는 그의 산상수훈 주석에서 남자로 하여금 음욕을 품도록 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여자들도 간음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늘 옷차림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욥은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이 더러운 것에 묻었던가 그리하였더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욥 31:1, 7-8)고 하였습니다. 욥은 죄가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음으로 짓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눈과 약속을 했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주목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눈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는 말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그것을 본즉, 보암직해서 그랬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까(창 3:6).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야 보는 것으로 유혹에 넘어가지만, 여자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누구의 말을 듣고 삽니까? 사탄 마귀는 늘 거짓으로 속이지 않습니까? 그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 하셔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욥과 같이 우리의 눈과, 아니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음욕을 버리고, 순결함, 정결함을 추구하도록 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음죄에 대하여 경고하시느냐 하면.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29-30절)고 하였습니다. 물론 비유적인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 정말 오른눈, 오른손을 없애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오른눈이나 오른손은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도 죄악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치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실족케 하거든(skandali,zw)”의 의미는 ‘스캔들로 넘어지게 한다’는 뜻으로, 주로 동물들을 잡기 위하여 올무를 놓을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우리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올무를 만들어 죄에 빠지도록 하는 것은 속히 없애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불건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속히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의식적으로, 의지적으로 우리 주위 환경을 절제(control)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게 됩니다. 어떤 주저함도 없이 즉각 없애버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람을 제거한다고 해서 즉각 우리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거룩해지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죄로부터 나 자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지난 주 살펴본 6계명 강해에 이웃을 향해 화를 내고,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과 같듯이, 이웃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화를 품는 것과 잘못된 성적인 욕망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런 것이 자신을 다스리도록 내버려 두면 점점 그것들에 의하여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에 철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로는 하나님의 높은 기준에 맞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죄악의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의 새로운 마음이 아니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가 아니고는 안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타락한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의가 아니고는 도저히 사탄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는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나도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병에 걸린 환자가 자신이 환자인 줄 알고 치유를 받으려고 할 때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듯이, 우리는 늘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를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려고 몸부림을 칠 때 죄를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에 간음한 적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용서하십니다.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여러분의 구체적이 삶에서 해결해야 될 무엇이 있습니까? 당장 뽑아버려야 할 오른눈과 잘라내야 할 오른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속 마음을 다 보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quickly), 전부(totally) 제거하십시오. 성적인 유혹에 빠질 불건전한 관계는 당장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하나님의 의를 향한 주림, 주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바꾸십시오. 하나님께서 선한 것들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적인 범죄는 그 어떤 모양이라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살인한 사람과 동일하게 심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주로 보고 살며, 무엇을 주로 듣고 삽니까?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냅니까? 시간이 남아 돌아서 게으르게 사십니까?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바쁘게 사십시오. 지금 절제하지 않으면,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심령도 육신도 다 망하게 됩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그 은혜만을 간구하며 사십시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장하시도록 나를 욕망을 포기하십시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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