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612,021
오늘방문 : 15785
어제방문 : 46301
전체글등록 : 3,882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6-05 (금) 00:3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894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계 2: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성도)는 어떠한 교회(성도)일까요? 아니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어떤 교회를 선택할까요? 이 지상 교회들이 다 불완전하여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 교회(성도)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지상 교회들 가운데 완전한 교회가 없듯이, 초대교회들도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아시아(터어키) 지방에 있던 일곱교회에 주님께서 계시하신 교회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교훈 받기를 원합니다. 같은 실수를,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성도), 하나님께 칭찬 듣는 교회(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주님께서 처음으로 언급한 교회는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나 다름이 없는, 무역과 상업이 왕성했던 도시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 중 하나인 유명한 우상 아데미신(다이애나 여신)을 숭상하는 큰 신전도 있었던 곳입니다(행 19:27). 온갖 부도덕이 만연하였고,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도시를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방문하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복음의 씨앗을 뿌려 교회를 개척했던 곳이었으며, 바울이 말씀을 강론했던 유명한 두란노 서원이 있었던 곳입니다. 후에 유대 그리스도인 아볼로가 사역을 하다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다시 방문하여 오래 머물면서 사역을 하였고, 떠나면서 영의 아들 디모데 목사에게 맡겼던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그 이후 사도 요한이 주후 69년 경에 교회를 맡아서 20여 년 넘게 목회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주님의 종들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은 곳이어서 여러 교회들 가운데 가장 정통적인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교훈입니까?

   첫째로,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장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1절)라고 합니다. 여기 교회의 사자는 담임목회를 하는 주님의 종을 가리키며, 일곱 별은 그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말합니다(1:20). 즉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붙잡은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냥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붙잡고(kratw/n) 있다는 말은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꽉 붙들고 계심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금 촛대 사이에도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다니시고 계십니다. 즉 교회에 찾아가십니다. 친히 주장하시고, 주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교회는 사람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자들을 꽉 붙잡고, 교회를 직접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친히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성도)는 늘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인도를 받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만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는 모든 수고와 인내를 아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3절)고 합니다. 즉 에베소 교인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수고를 다 아시고 칭찬하십니다. 마치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데살전 1:3)라고 한 것처럼, 그들은 믿음으로 무엇인가 행동을 하였습니다. 속에 믿음을 갖고 그냥 가만히 있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역동적인 믿음으로 무엇인가 역사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또한 사랑의 수고도 있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대접하는 데 힘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였습니다. 천국 소망이 확실했기에 어떤 어려운 문제를 당하든지 인내하면서 침착하게 해결하였습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많은 성도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게 되고, 바울과 같이 목 베임을 당하거나, 사도 요한처럼 유배를 당해도 다시 주님을 만난다는 소망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인내하였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잘 인내하지 못합니다. 잘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에베소 교인들은 대부분 인내하면서 신중하게 어려움들을 해결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것은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여 밝혀 내었습니다. 지금이야 워낙 정보가 많고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어느 누구든지 금방 정체가 드러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신분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교묘히 악을 행하는 자들과 자칭 사도라고 하는 자들의 거짓을 밝혀 냈습니다. 예를 들면 6절에 나오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던 저들이었습니다. 니골라 당은 이단 중 하나로 율법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이었기에 우상제물을 마음대로 먹으며 행음을 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계 2:14-15). 이런 자들을 미워하고 책망하던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아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하여 하시는 어떤 봉사도 우리 주님이 다 아십니다. 믿음의 행동들을 아십니다. 사랑의 수고를 아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 가운데 참고 인내하심을 아십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섬기심을 아십니다. 악한 자를, 거짓 형제를, 거짓 지도자를 물리치심을 아십니다.

   그런데 셋째로, 그런 모든 행위를 처음 사랑을 가지고 하지 않을 때에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절)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이 에베소 교회의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처음 사랑(avgaph)이란 맨 처음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으로 회개하여 중생체험을 할 때 깨달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에게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찾아와 만나주신 그 사랑입니다. 감격하며 흥분되었던 때입니다. 열정적이었던 때입니다. 그 때 복음에 대한 감격과 뜨거운 감사를 말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리라 결심하던 마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오래된 교회, 믿은 지 오래되는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그저 타성적으로, 기계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늘 그런 식으로 해 왔기 때문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처음 사랑이 없기에 무슨 일을 해도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찬송을 불러도, 설교를 들으면서도 감격을 잃어버린 채, 눈물을 흘린 지가 너무 오래되어 버렸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눈물 뿌려 기도한지도 오래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그냥 굴러갑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이 필요 없는 교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라진 지 오래됩니다. 어느 누구 하나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내적으로는 차갑고 병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표시가 납니다. 다른 성도들과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갖고 있는 성경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데에는 능숙합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꼬집으려고 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30여 년 전에 서신을 쓸 때에만 해도 그들의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칭찬했습니다(엡 1:15-16). 그리고 그 서신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도 주님을 계속하여 사랑하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점점 식어져서 지금은 그들에게 처음 사랑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믿은 지 오래된 대부분의 성도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하던 처음 행위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복음의 감격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도 그저 덤덤합니다. 오직 자기 힘으로 남에게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종교 생활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5절)고 하셨습니다. 먼저 생각하라(Remember)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제부터 복음의 감격을 잃어버렸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떨어졌는지, 얼만큼 주님과 멀어져 있는지, 얼마나 사랑이 식어져 있는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처음 믿을 때에는, 구원을 인격적으로 경험했을 때에는 다 감격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고, 뜨거운 성령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만이 스며들었고, 자기 만족에 안주하기 시작하여 더 이상 참된 주님의 제자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이미 모든 것이 다 된 자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솔직히 자신이 왜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냉정하게 살피며 다시 한번 십자가의 보혈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해야 합니다. 회개란 후회가 아닙니다. 방향을 180도 바꾸어 돌이키는 것입니다. 눈물로만 아니라, 실제로 의지적으로 마음을 바꾸어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행위가 처음 사랑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Do it with the First Love! 그 첫 사랑의 감격으로 믿음의 행동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부부가 처음 사랑할 때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갈까요? 만약 그 감격을 계속 유지하며, 아니 더 성숙한 사랑을 나누며 산다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부부가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사랑의 마음을, 헌신을 기억하십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의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렘 2:2)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의는 헌신을 말합니다. 젊었을 때의 헌신과 영적인 결혼의 사랑을 하나님께서 기억한다고 하십니다.
   교회(성도)는 신랑되신 주님의 신부입니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라고 고백하였듯이, 우리 모두는 신랑되신 주님을 영원토록 사랑해야 하는 신부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처음 행위를 나타내지 않으면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축복을 빼앗아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기에 2세기 말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가 30-40년 정도를 지난 다음에 사라진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7절)고 하셨습니다. 귀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기 "귀 있는 자"라는 뜻은 영의 귀가 열려서 참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귀를 기울이는 자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듣는데, 주님의 음성은 잘 듣지 못합니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둔감합니다. 그런 자들을 회개하기 힘듭니다. 돌이키기 힘듭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로 귀가 막혔거나, 교만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영의 귀가 열려서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이기는 자"입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을 이깁니다. 교만을 이깁니다. 악한 영들을 이깁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있는지 몰라도, 영의 귀가 열린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참으로 첫 사랑의 감격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아니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자신과 싸우고, 미혹하는 영들과 싸웁니다. 복음의 투쟁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싸움을 싸워 이깁니다. 할렐루야!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58 주일설교 [12/27/09] 여호와께 성결 한태일 목사 2009-12-28 1922
957 수요설교 말씀의 멍에 한 태일 목사 2010-11-26 1921
956 주일설교 [7/4/10] 하나님의 선물, 생수 한 태일 목사 2010-07-05 1920
955 주일설교 [7/19/09] 무엇을 믿습니까? 한 태일 목사 2009-07-27 1920
954 주일설교 하나님의 선물을 무시하지 마십시오(히 2:1-4) 한태일 목사 2017-03-20 1918
953 주일설교 부활의 유익(고전 15:29-34) 한태일 목사 2013-08-12 1918
952 주일설교 [9/1/10] 수요예배- 응답받은 히스기야의 기도 한 태일 목사 2010-09-03 1917
951 주일설교 [7/28/10] 수요예배 - 우리 성도들이 사는 길 한 태일 목사 2010-07-30 1916
950 주일설교 [3/8/09] 믿음의 용기 한 태일 목사 2009-03-14 1916
949 주일설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마 21:1-11) 한태일 목사 2015-03-30 1914
948 주일설교 [9/26/10] 정말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한 태일 목사 2010-09-28 1914
947 수요설교 지도자의 믿음과 기도(신 9:6-29) 한태일 목사 2011-04-08 1912
946 주일설교 천사보다 훨씬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히 1:4-14) 한태일 목사 2017-03-13 1910
945 주일설교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고전 7:17-31) 한태일 목사 2012-10-29 1910
944 주일설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고전 11:1) 한태일 목사 2013-01-14 1909
943 수요설교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22:1-14) 한태일 목사 2016-02-25 1908
1,,,2122232425262728293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