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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8-17 (목) 23:4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306    
주님 재림하시는 날 (벧후 3:8-13)
우리들은 얼마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너무 편하고 좋으면 그 날을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늘날 북한의 성도들처럼 핍박이 너무 심하여 속히 주님이 재림하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하며, 짐승들에게 찢겨 죽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주후 64년 7월 19일에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기름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작은 화재가 로마 시내에 번지면서 9일 동안 로마 시내 14개 구역 가운데 10개 구역이 큰 불로 많은 사상자들을 내고 도시가 엄청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시 로마 황제였던 네로는 휴가 중에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와 참사 수습에 노력하였지만, 대재앙에 민심이 진정되지 않았고, 심지어 네로 황제가 불을 저질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그러자 네로 황제는 이에 대한 민심 수습책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덮어씌우고, 사도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을 대학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불에 태워 죽였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우리 믿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의 정욕대로 살면서 주님의 재림은 없을 것이라고 미혹하였습니다(3절).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지 오래 지나도록 오지 않고 있으니, 무슨 그런 약속을 믿느냐고 조롱한 것입니다. 여태껏 지연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7절)고 한 것처럼, 그들을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잠시 보존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엄청난 핍박을 받는 성도들은 언제 주님이 다시 오셔서 경건치 못한 자들을 심판하시느냐고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시편 90편 4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8절)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 세상의 시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루 24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입니다. 아니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는 재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우리의 시간으로 못 마땅하게 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볼 때 재림이 늦어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연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kairo,j), 스케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헌데 베드로가 하나님의 때에 대하여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아는 것은,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9절) 입니다. 주님이 더딘 것이 아닙니다. 인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Not slow, but is patient! 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Not tardy, but is merciful! 가능하면 다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돌아오기까지, 구원 받을 수가 다 차기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바로 전에 재림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여러분이 정말 전도하고 싶은 분이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면,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이름을 9절에 “아무도” 대신 넣어서 읽어보세요. 하나님은 그분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전도하고, 삶으로 전도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3-14)라고 하였듯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라고 재림의 때를 미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날,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기다림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10절)! 그 날이 언제, 어떻게 오는지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도적 같이 옵니다(마 24:43). 즉 도적처럼 예고 없이, 갑자기 옵니다. 기대하지 않던 시간에 오기에 모든 사람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고, 뜨거운 불 심판으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다 풀어지게, 즉 파괴될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12절하)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핵폭탄이나 수소폭탄이 터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러시아나 북한 정권이 지역적으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을 끝내려고 버튼을 누르실 것입니다. 그 때 누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누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고, 믿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11-12절상)고 합니다. 베드로는 어떤 일을 하라고 하기 전에, ‘어떠한 사람(what kind of person)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고 역설적인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두 가지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Live holy and godly lives! 정결한 사람이 되어 경건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도적 같이 임하는 날이 내일일지 모르는데, 오늘 정결한 삶, 경건한 삶이야 말로 등불에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성경 전체의 교훈입니다. 이미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레 11:44-45)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그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 사모하라 (Look forward to)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역자들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13절) 하였습니다. 그 날을 기대하며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매일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20)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 날을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심판의 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의 고백,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한 것처럼,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는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우리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신 것처럼, 전도와 선교에 힘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날을 사모하면서 기다리기 때문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152년 전, 1871년 봄 캐나다의 한 22세의 젊은 청년이 책 한권을 읽다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한 문장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그는 토론토 의과대학 인턴이었던 학생이었습니다. 마지막 final exam을 통과할 수 있을까, 무슨 전공을 할까,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까 등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읽은 한 문장이 그 당대에 가장 유명한 의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1889년 세 사람과 함께 세계적인 Johns Hopkins 병원을 조직했고, 최초의 Johns Hopkins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고, 병원장이 되었습니다. 1905년에 Oxford 의과대학의 왕실 교수(Regius Professor)가 되었고, 의사로서 가장 높은 지위를 얻게 되어 대영제국의 왕으로부터 백작으로 추대가 되었습니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삶의 이야기가 1466페이지의 책 두권으로 쓰여 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Sir William Osler입니다. 그가 1871년에 마음에 꽂힌 문장은 Thomas Carlyle의 한 문장으로, “Our main business is not to see what lies dimly at a distance, but to do what lies clearly at hand.” 였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의 중요한 일은 멀리 희미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분명히 놓여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 오리라고 하신 그 날을 유한하고 제한된 우리의 눈으로 보려고 애쓰지 말고, 내일이 그날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일들을 믿는 자답게 성실하게 하면 됩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정결한 사람으로, 경건한 말과 행실로 그날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성실하게,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키면 됩니다. 그러한 삶이 그 날을 맞이하는 준비를 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준비를 잘 하고 계십니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그 날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경건한 삶의 여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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