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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8-20 (일) 07: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12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책임 (유 1:17-25)


https://youtu.be/Ed1OrrjH8pY

어느 성도님이 ‘목사님, 이 세상에 정말 죄악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죄가 많네요. 실망이 되고, 시험이 되네요. 이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성도님은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있지는 않나요? 믿음이 약한 자가 시험에 들게 하지는 않습니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누구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도 유다가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마지막 때,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책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유다는 교회 안에 슬그머니 들어온 거짓교사들의 정체를 드러내며, 마귀의 영들과 싸워 믿음의 도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1-16절).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서 그 안에서 큰 사랑을 받고 살고 있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지키심을 입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데 사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그 영광을 훼방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고 하였듯이, 성경은 그런 악한 자들과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며,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하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 유다도 마찬가지로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17-18절) 하였습니다. 제가 요즘 수요예배 때 베드로후서 강해설교를 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사도 베드로도 거짓교사들에 대해 경고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 믿는 자들이 믿음 안에서 굳게 서도록 촉구하고 있기에, 유다는 17절에서 자신의 서신보다 앞서 성경을 기록한 베드로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런 자들이 믿는 척하고 교회 안에 들어왔으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며, 우리 믿는 자들을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마귀의 조종을 받아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무너뜨리려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19절)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을 만드는 자들이며, 육에 속한 자이기에 자연적인 인간의 본능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성령이 없는 경건치 않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팎으로 악한 자들이 가득한 시대에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20-21절)고 명령합니다. 이 구절의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네 가지 명령형 분사로 우리 성도들의 책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3절에 언급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 지극히 거룩한 것임을 기억하고, 그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세워가라는 것입니다. 건축, 곧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설교 맨 마지막에 하신,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것이 자신을 잘 건축하는 성도입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은 곧 무너지는 집인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기도하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초점은 그런 기도를 어떻게 하는가에 있지 않고, 거짓교사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의 필요성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없기에 육체의 본능으로 살았으나, 우리 믿는 자들은 성령이 있기에, 성령과 함께 동행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 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기도를 하고 계심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롬 8:26).
셋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늘 그 사랑 안에 머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변함이 없으니,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 다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강조한 것처럼 그 사랑을 형제, 자매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요일 3:14).
넷째는,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라도 다시 오십니다. 이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곧 다시 주님을 만난다는 소망으로 기다림은 오늘 살아가는 모든 기대와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함으로 그 때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듣고자 하는 바램이 우리 자신을 잘 건축하는 방법입니다. 비록 우리 생애에 주님이 재림하지 않으시더라도, 이 세상을 떠나 주님 계신 곳으로 갈 때 긍휼을 힘입어 영광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 유다는 우리들에게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22-23절)고 합니다. 첫째 부류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초신자들이나 미성숙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가질 수 있으니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의심할 수 있으니, 그럴 때 비난하거나 야단치지 말고 긍휼을 베풀며 잘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때로 잘못을 범할 때도 있으니 용서하고, 사랑하며 기도하여 그들의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부류는 믿지 않는 경건치 않는 자를 구원하라, 전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 심판을 받을 자들을 끌어내어 구원을 받도록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때문에 그들이 회개한다면 지옥의 불에서 건져내게 될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그 육체로 더러움에 빠진 자들을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삶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그 옷이 시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을 싫어하라고 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 죄에 전염이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멀리하되, 그 사람만큼은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살려내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믿음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물에 빠진 자에게 구명대를 던지려면 자신이 선 자리를 든든히 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물에 빠지게 되듯이 죄에 빠진 형제를 구하려면 우리의 믿음이 든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도 유다는 그의 짧은 서신의 마지막을 독자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축도(Benediction)로 마칩니다. 아마 신약성경 송영들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멋진 송영(Doxology)일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축복하는 시, 찬미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24-25절)!
우선 우리 하나님을 우리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거침이 없게 하실 수 있음을 확인하는 위로의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지키시며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 하였습니다.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시 17:8). 부족하고 연약한 양과 같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시 23:1; 요 10:11-12). 아무리 늑대가, 우는 사자가 우리를 삼키려 하여도 이런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또한,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서게 하실 분입니다. 오히려 즐거움, 기쁨으로 서게 하실 분입니다. 여기 “흠이 없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온전한 제물’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심판도 두렵지 않습니다. 담대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마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살아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Victor Frankl 은 그의 저서 “Man’s Search for Meaning (인간의 의미 추구)”에서, 희망과 용기의 상실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 스스로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미래 소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오그라들고 말라 비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사람의 내적 힘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에게 미래의 목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제수용소에 갇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세상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오그라들고 말라 비틀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19세기 덴마크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 소망이 확실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권세와 그 능력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아니 세세토록 있음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이 주어졌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잘 세워가라는 것이었습니다. 2)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의 삶이 성령님과 동행하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며, 주위에 그 사랑을 나타내라고 하였습니다. 4)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주님 만날 날을 소망하며 그의 긍휼을 힘입어 영광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1) 어떤 의심을 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초신자, 미성숙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잘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2) 믿지 않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전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지옥의 불 심판을 받게 될 자들에게 복음을, 사랑을 전하여 그 불에서 건져내라는 것입니다. 3) 그 육체로 더러움에 빠진 자들을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정욕을 따라 방탕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죄에 오염되지 말고, 두려움으로 조심하되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사도 유다는 마지막 송영을 통해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지키시며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상기시키며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서게 하실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확실하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기며,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우리 자신을 잘 세워갈 것입니다. 훗날 흠이 없이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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