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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10-13 (수) 04:5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01    
[10/10/04] 목숨 거는 개혁
목숨 거는 개혁 (느헤미야 13:1-31)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 신념, 확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사탄이 공격할 때면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물러서면 안됩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지도자 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섬기는 백성들이나 자신을 사탄이 정복하지 못하도록 단호히 개혁을 계속하였습니다.
사실 느헤미야서는 12장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성벽도 완성했고, 백성들의 영적 부흥으로 봉헌식도 영광스럽게 마쳤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13장을 더하신 이유는 바로 목숨 거는 개혁이 필요할 때에 뒤로 물러서지 말고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1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웃고 즐거워하면서,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며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백성들이 타락합니다. 변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은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 때 하나님께 아무리 뜨겁게 충성했다 하더라도 안일한 자세로 있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어져서 불충성 할 수 있습니다. 또 처음에 순수한 사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외식하는 사람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꾸짖었습니다. 정말 마음과 생각을 성령께서 늘 지켜 주셔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예루살렘 총독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메대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사명을 완수한 후에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 보니 자신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6절). 이스라엘은 번영하고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생활 속에 적어도 네 가지 만큼은 목숨 거는 개혁이 필요한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세상(사탄)과 타협하는 문제였습니다(4-9절).
당시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교제하며 그를 위하여 성전 안에 한 큰 방을 주고 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4-5절). 도비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처음부터 계속해서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인물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지금 놀랍게도 성전 안에서 방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 아닙니까? 도비야는 악한 사탄,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일이 우리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악한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일을 다 이루고 나면 마치 자신의 힘으로 그 일을 이루었다는 듯이 사탄이 그곳에 들어와 앉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성전의 큰 방은 원래 무엇을 두던 방입니까?(5절)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 그리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들여 놓던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스러운 곳에 도비야가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도무지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양계장에 쥐를 넣어둔 경우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과 타협하는 요소나, 세속주의가 들어와 영향을 끼치는 경우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 섬기는 곳이어야 될 교회에서 만약 세상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면 개혁되어야 합니다. 목숨 걸고 물리쳐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알고 난 후(7절), 도비야의 세간을 다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8절). 그리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9절) 하였습니다. 사실 그저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고 적당히 다시 총독 자리를 넘보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이런 일 만큼은 목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런 행동이 느헤미야가 영적으로 뛰어난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너진 십일조 생활이 문제였습니다(10-14절).
기억하십니까? 이미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세 가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방인들과 자기 자녀들을 결혼시키지 않겠으며,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것이고,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느헤미야가 돌아와 보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이 세 가지 맹세가 하나같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세 가지 맹세를 하나씩 회복시킵니다.
우선 십일조 생활부터 개혁합니다. 10절을 보면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게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성전에서 직무를 맡은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다 자기 고향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당장 굶어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성전 기둥만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밭이 있는 자기 고향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그런 사람들이 없으니 무슨 제사를 제대로 드리며,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이러한 모습을 본 느헤미야가 지도자 급이 되는 민장들을 불러 꾸짖습니다(11절). 그리고 다시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들입니다. 그러자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 다가 곳간에 들이므로”(12절)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얼마나 멋진 줄 모르겠습니다. 단호하게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개혁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기도해 보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개혁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라도 백성들이 순종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14절)! 이 일 만큼은 목을 걸고서라도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문제였습니다(15-22절).
15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 틀을 밟고 곡식 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 것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아주 강압적으로 유다 모든 귀인들을 꾸짖으며 “너희가 어찌하여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17절하-18절) 하면서, 아예 예루살렘 성문을 안식일 전 날 해가 져서 어두어 갈 때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못하게 합니다(19절). 그렇게 해서라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율법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안식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주일(Lord’s Day)을 주님의 날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만큼은 목숨을 걸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묶어주신 한 형제, 자매들과 진한 사랑의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무너진 가정의 문제입니다(23-27절).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23-24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하였습니다. 이미 10장에서 맹세하였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잠시 떠나가 있는 동안 그 백성 가정들이 또 그런 엄청난 죄악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 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25절) 하였습니다. 좀 심할 정도로 나무랍니다. 솔로몬 왕의 예도 듭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26절).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 갈라진 남 유다 왕국의 첫 왕 르호보암도 암몬 여인으로부터 낳은 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꾸짖는 가운데 그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가정이 하나님 앞에, 그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결혼이 한 가정을 살리기도 하고 망하게도 합니다. 그 자손들의 앞날을 좌우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소극적으로, 피동적으로, 비관적으로 살아갑니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보고 있으면서도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느헤미야처럼 단호함,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목숨 거는 순종입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하는 것입니다(히 12:4). 내 자신부터 시작하여, 내 가정과 교회, 내가 속한 공동체를 잘 살펴 보십시오. 혹시 세속주의에 물들어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과감하게 잘라내어 버려야 합니다. 돈 문제가 깨끗합니까?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넉넉히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매일을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특별히 주일 만큼은 교우들과 예배를 함께 드리며 교제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가정은 깨끗합니까? 정결합니까? 거룩합니까? 말씀에 순종하고 삽니까? 부부관계가, 부자관계가, 고부관계가, 형제 사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까?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떳떳한, 부끄러움 없는 가정을 세워가야 합니다.
과거에 어떻게 사셨던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시면 됩니다. 오늘부터가 문제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들은 말씀에 대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 내 가정과 교회에 개혁해야 될 부분들, 죄악스러운 모습들을 단호히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어그러진 부분들을 바로 세우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구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29-31절)!
느헤미야서는 결국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 때문에 메대 바사 왕궁에서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특권을 포기한 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무너진 신앙을 회복시킨 지도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죄를 짓기 쉬운 백성들 앞에 다시 나타나 목숨 거는 개혁운동을 또 일으킨 지도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지도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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