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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3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641    
[9/25/05] 그리스도인의 교제
그리스도인의 교제 (시편 133:1-3)
그대는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너 뿐이냐’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리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아니오’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고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유명한 고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가졌는가?’ 라는 글입니다. 그는 이 글에서 미래와 현재의 고독과 죽음의 경우에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한 인생이 이만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 사이에 그런 친구가 있다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리의 사나이가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저는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결국 배신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로 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꾸준히 계속되는 진정한 교제로 말미암아 끈끈한 정이 생겨야, 정말 한 마음이 되는 그런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짧은 시편을 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에서 발견한 것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12지파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하나님을 믿었고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보았습니다.
사실 12지파로 구성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뉘어지기 쉬웠습니다. 더욱이 이 지파들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본 부인에게서 난 자손이 있는가 하면 여종의 아들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지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버지는 같아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분열되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로 묶는 강한 끈이 있었는데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가 되면 모두 성전에 모여서 제사드리고 경배드렸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생각하고 성전에 모이는 그 백성들을 바라보니 한 아버지 아래 형제들로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지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1절). 그리고 그 모임에는 성령이 역사하였기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2절) 라고 합니다. 이는 대제사장 아론이 처음 대제사장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를 말씀합니다. 모세는 아론의 머리에 상당히 많은 양의 기름을 부었고, 그래서 그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 그 옷깃까지 내려갔습니다. 이것은 바로 앞으로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어떻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인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미 사도행전 강해를 통하여 보았듯이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충만하게 내려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말미암아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축복들도 받았는데 마치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3절상) 라는 것입니다. 헐몬 산은 눈이 많이 덮여있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 산의 눈이 녹으면서 이것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산들과 들에 충만한 이슬이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슬의 양이 풍부하여 주위에 있는 들이 충분한 수분을 공급 받게 되어 많은 곡식들이 잘되고, 과일들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이스라엘 땅에서 이슬이라고 하는 것은 곡식이 자라는데 필수적인 수분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3절하) 하신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연합한 그들에게 그러한 복을 주시며, 영생까지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왜 불신자의 교제에서는 믿을만한 참된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통하여는 그런 친구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습니까?

첫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하고 성전에 올라와 경배드리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마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본질적으로 성령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생명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하-50절)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요 6:29).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의 교제는 그 본질적인 출발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영적인 형제, 자매가 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육친의 골육보다 영적 가족이 된 형제, 자매들이 마음으로 더 가까워지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권속들의 생활의 중심에, 구심점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그 방향과 목적이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 친구들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자녀들의 인생의 종착역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였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는 일이 다 다르지만, 그 방법이 다르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하고 사는 하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는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참된 친구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는 방향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방향과 목적이 같기 때문에 현재 행하는 모든 행동이 조금 달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준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두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해 주는지 모릅니다.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불신자가 나를 이해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로움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친구가 되시고, 서로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진솔한 교제를 나누면 참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4-15)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으며 사랑 가운데서 용납할 수 있습니다(엡 4:1-2).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서 참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정말 먼 길을 떠나려 할 때에 처자를 맡기고 가도 될만한, 마음 놓고 가도 될만한 사람, 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내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가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하여 ‘저만은 살려두리라’ 일러 줄 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잊지 못하는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 감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교제에는 그런 우정이 꽃필 수 있고,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형제가 되어 연합하여 동거함이 그렇게 좋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살아가는 목적이, 걸어가는 방향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생각이 달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고,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교제가 그러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되어 서로에게 필요한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을만한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여, 친구와 악수했을 때
수심에 차고 슬퍼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마음 속에 주님이 안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문이 닫혀져 있는 암실 앞에서
그 안에 주님이 계시는지 잘 모를 때처럼 그 친구 앞에 서 있기가 매우 거북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나와 친구 사이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차갑게 헤어졌을 것입니다.
내 손을 맞잡은 그의 손은 살덩이에 불과하고
내게 대한 그의 마음도 한 인간에 대한 정 이상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여, 주님의 생명을 나에게 주시듯 그에게 따뜻함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힘이 있어야만 하는 내 친구, 내 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내 친구’ 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오신 이후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로 놀라운 일들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우정이 꽃피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가 왕성하였습니다. 우리 경향가든의 동산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넘쳐나며, 참된 우정의 꽃이 피는 동산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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