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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9-19 (화) 00:3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41    
[9/17/06] 우리가 바라는 교회
우리는 어떤 교회를 바라고 있습니까? 어떤 교회를 세워가기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라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그 피로 말미암아 한 형제, 자매가 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 속하여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원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나가기 원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모범된 교회, 말 그대로 천국의 모형이 되는 교회, 세상 사람 모두가 소망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비록 완벽한 교회는 이룰 수 없더라도, 탁월한(excellent) 교회는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한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말입니다.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속한 지체들이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하면, 큰 교회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낫게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며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교회가 세워지는 장면입니다. 유명한 안디옥 교회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교를 처음 시작한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13장).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바라본 성도들이 더욱 심해지는 그러한 환란과 핍박으로 인하여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흩어지게 되고(19절), 그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은 몇 사람이 안디옥에 있던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함으로 교회가 탄생됩니다. 이미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할 때에 성도들이 흩어져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행 8:4). 결국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9장). 즉 지극히 어려운 고통 중에 있던 성도들이 흩어져(디아스포라) 복음을 전파함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본문 20-21절에 보면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 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은 그 당시 수리아(Syria)의 수도였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무역 중심의 항구 도시였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도시여서 ‘동방의 면류관’이라고 불리워졌었습니다. 상업도시로 물물교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부가 축적되었던 도시였습니다. 어느 시대건 돈이 많으면 쾌락중심의 문화로 바뀌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몹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부도덕을 찬양하던 도시였습니다. 또한 이교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아폴로 신전에서 많은 창녀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조국에서 쫓겨난 여러 종족의 피난민의 무리들과 유랑자들이 정착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합니다. 디아스포라 성도들이 “주 예수”를 전파합니다. 창조의 주, 구원의 주, 심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놀랍게도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운 이민생활 가운데서도, 세상의 많은 타락을 보면서도, 흩어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랑을 전하면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주께 돌아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택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Barnabas)를 안디옥에 보냅니다. 이유는 바나바 같으면 이방인들과도 잘 어울려 그들을 위로하며, 가르치고, 사역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바나바의 학벌, 가문 등 개인신상에 관한 것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령께서 초대교회에 내려 주신 역사들을 체험하고, 가지고 있던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준 적이 있었을 뿐입니다(행 4:37). 사도행전 4장 36절에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고 그의 출신과 본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을 보고 별명을 바나바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나바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착하다는 말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착하다는 뜻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교적인, 도덕적인 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착하다,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 선하다는 말입니다. 늘 죄성으로 인하여 고통 받으며 방황하는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강함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옛날 여인들을 향하여 일컫던 '외유내강'이라고 할까요. 부드럽지만 죄에 꺾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였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똑같이 미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악하여지거나 독하여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미움을 견디어 내고, 참고 이기는 사람입니다. 어떤 처지나 형편에서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께 대하여, 사람에게 대하여 지조와 정조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착하다고 한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말씀으로 다스리고 지배할 때에 겸손하게 삶 전체를 그의 지배아래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과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고 하였습니다. 그 교통하심, 교제를 통하여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품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성품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4절에도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를 잘하였던 것도 성령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이니까 사울(바울)같은 사람도 사도들에게 처음 소개를 시키고, 화해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던 사람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쉽게 그를 인도하여 함께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한다고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안디옥에서 꽤 먼 다소까지 가서 바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주의 일을 합니다. 사실 바울은 성격이 불 같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바나바는 그와 함께 일을 잘 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보면 바나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말해주고 있지요. 잘 이해하며, 자원하여 사람들을 세워주는, 격려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주님 만난 후에 3년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그 후 7년이 지난 후에야 바나바로 말미암아 12사도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고 놀라운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도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많이 변화되고, 참고 기다렸던 것을 보면, 자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믿음이 충만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믿음이란 구원에 이르는 단순한 믿음을 말하는 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한 그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내 삶의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믿음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하는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확신에 찬 삶을 산다는 말씀입니다. 확신(conviction)이란 올바른 근거에 바탕을 둔 강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확신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칩니까? 정말 힘있는 삶을 살지요. 우리는 확신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구원의 확신, 승리의 확신, 인도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죄 용서함의 확신 등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다윗도 그러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바나바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는 크게 성장합니다. 그가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진실하도록 굳게 붙어 있으라고 격려함으로 큰 무리가 안디옥 교회에 더했다고 합니다(23-24절). 참으로 우리가 바라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교회 말입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진실하게 붙어있는 성도들이 가득찬 교회 말입니다.
바나바는 혼자서 많은 무리들을 다 가르칠 수 없음을 알고 함께 일할 동역자를 찾습니다. 다소에 있는 사울(바울)을 초청합니다(25절). 그러자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열심히 모여서 가르침을 받고, 주께로 더욱 가까이 함으로 온 세상에 그들이 알려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를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 하였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가르침, 즉 교육, 양육 훈련을 두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목사나 장로, 구역장 등 지도자들이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며 배우는 교회 말입니다. 결국 모범된 교회의 열쇠는 이 교육, 양육, 제자 훈련에 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조롱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 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은 ‘신자’,‘제자’,‘형제’, ‘증인’ 등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부르신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했다, 그리스도를 쫓는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70년대, 80년대에 열심있는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예수쟁이’라고 불려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 미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Christian과는 의미가 너무 다르지요. 일년에 두 번 교회 가면서도 Christian 이라고 말하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 정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쫓아가는 사람들로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에 속하여 신앙생활하기 원하지 않습니까? 정말 그런 교회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교회를 세워나가기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교회 말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믿는 자의 수를 더하시는 교회 말입니다. 바울과 함께 가르쳐서 날마다 제자의 수가 더해가는 교회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정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교회 말입니다. 우리 경향가든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누구나 오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속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도 바나바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도록 날마다 노력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실 나름대로 열심히 여러분을 가르쳐 왔고, 앞으로도 가르칠 것입니다. 또 바나바에게 바울처럼, 우 목사님도 보내주셔서 함께 열심히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은 저나 우 목사님으로서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바나바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너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바나바와 같은 지도자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말 주님 보시기에 선하며, 성령의 인도로 살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말씀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옆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평하고, 남이 자기에게 잘못하여 상처를 주면 미워하면서 마음에 악을 품고 죄성의 인도로 살거나, 하나님 말씀에 확신이 없이 이 시대에 휩쓸려 불확신 속에 살면 우리가 바라는 교회는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양육과 훈련을 잘 받아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 경향가든교회 교인들 모두가 이 지역 사회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오늘날의 안디옥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미국 유명한 월간지인 Christian Digest 라는 잡지에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라는 기사에서 ‘집에서는 친절, 사업에서는 정직, 직장에서는 근면, 불행한 자에게는 동정, 약한 자에게는 도움, 악한 자에게는 저항, 행복한 자에게는 축하,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외, 그리스도께 대하여는 믿음, 그의 말씀에 대해서는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내 주위를 밝혀 봅시다. 최선을 다합시다! 나 자신은 부족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고, 나의 위로와 격려와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갑시다. 나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시리라 확신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남에게 눈을 돌려 봅시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더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게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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