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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5-02-16 (월) 10:2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76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9-20)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래 선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조금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본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이 느낌을 없애 보려고 누구를 비난하거나,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느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바로 죄책감(guilt)입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오는 느낌일 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자아에 대하여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나는 착하다'고 여긴다 하더라도 양심이 있어서 그는 잘못된 생각을 하든지, 잘못된 말을 하든지, 실제로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죄책감을 없애려고 술에 취하든지 마약을 하든지, 아주 심하게 되면 절망에 빠져 정신이상이 생기든지, 혹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죄책감을 갖는 이유는 누구나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죄로 말미암은 증상(symptom)이지요. 진정한 문제는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문제가 해결되면 죄책감도 없어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gospel)'이란 '좋은 소식(good news)'이라는 말입니다. 이 인간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좋은 소식이 필요가 없기에 복음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로마서 1장과 2장에서 이방인을 대표하는 헬라인이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종교적인 유대인이든지 모두가 다 죄를 지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간이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하는 이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이태껏 흘러온 역사,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 양심을 근거로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 강한 증거를 나타냈습니다. 마치 올바른 의사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죽을 병이라도 의사가 환자에게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로 이야기해 주어서 대처하게 하는 것이 좋지, 며칠 약 먹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돌려보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죽는 날까지 잘못 알고 있다가 준비도 못하고 그냥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궤변을 그만두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를 권면하며,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의 특권은 많은 유익이 있으나 책임을 동반하는 것임을 말씀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기에 그들에게 정죄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제 3장 9절부터는 구약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시금 인간 모두가 다 죄인임을 증명합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논고합니다. 인간은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 선을 행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재판관에게 피고를 논고하듯이 말입니다.

   첫째는, 결론적으로 인간 모두가 다 죄 아래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절)고 합니다. 여기 “죄(Sin)”는 단수로 쓰였습니다. 죄를 복수로 사용할 때에는 인간이 범하는 여러 가지 악한 말과 행동을 말합니다. 심지어 생각으로조차 짓는 죄도 포함합니다. 헌데 단수로 사용할 때에는 죄의 본체, 죄의 권세를 가리킵니다.  
   즉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라고, 로마에 있는 교인들이라고 죄가 없느냐? 그렇지 않다. 모두가 다 죄 아래 있다’고 선포합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사람이나 예외가 없다고 합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참으로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인간들이 짓는 모든 죄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10-17절). 먼저 시편 14편 1-3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성품상, 인격상 짓는 죄를 10-12절에 고발합니다. 곧 마음의 불신앙의 죄입니다.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합니다. 의인(the righteous), 즉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 죄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역사상 예수님을 제외한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인격상 완전하였던 사람은 없다는 말이지요. 물론 비교적 선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비교적 악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 편에서 사람을 보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죄인들이지요.
   또, 11절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것을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하는 것,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안되는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먼저 찾으시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지요(요 6:44). 먼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것이 아닙니까? 12절에는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했다는 뜻이지요. 길을 잘못 가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처음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떠나 버려 영적으로 쓸데없는 무가치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존재의미를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선을 행할 수가 없지요.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할텐데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는 악한 영이 자리잡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짓는 죄을 고발합니다. 13-14절에 시편 5:9, 140:3, 10:7, 예레미야 5:16절을 인용하시면서 우리의 입으로, 말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에, 인격에 문제가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13-14절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라고 합니다. '무덤'은 멸망의 상징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덤은 굴 속에 시신을 넣어두고는 돌로 막아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열려져 있는 무덤이라면 그 속에 있는 죽은 시체가 썩는 악취가 나는 것처럼,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은 썩어져 가는 악취가 나오는 근원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deception)이 혀로 통하여 전달됩니다. 마치 독사의 입술에 독이 있어 사람을 물면 죽고 마는 것처럼 사람의 입술이 남을 모략하고 중상하고, 해침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뱀의 입술의 거짓말이 하와의 입술로, 아담의 입술로 퍼져가는 것과 같지요. 그러니 당연히 그 입에서는 남을 저주하고, 남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 속의 생각이 입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행동으로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잠언 1:16, 이사야 59:7-8절을 인용하면서 15-17절까지 바울은 행위의 죄를 지적합니다. 점진적인 죄를 봅니다. 마음, 인격에서 말로, 말에서 행동으로 번져가는 죄를 지적합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어진 저들은 이제 과감한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발은 행동의 상징이지요. 인간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고 잔인한 피를 즐기게 된다는 말이지요. 옛날 독재하던 황제들이 그러했고, 히틀러의 나치가, 일본의 제국주의가, 공산주의자들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그 행동은 파멸과 고생의 길에 치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결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길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평안이 없더라도 악한 길을 즐기던, 죄에 대하여 무디어진 그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그 동기는 18절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모든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히는 것이 없어진 까닭이었습니다(잠 1:7). 교만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은 교만하고, 추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경건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바로 알아 인정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결국 하나님의 법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판결합니다(19-20절).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의 주권 아래 온 세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결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자아내게 하여 심판이 있게 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준 율법은 사람에게 죄를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20절). 즉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복음만이 그 해결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만이 해결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fact)을,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마음과 생각으로 죄인이고, 입으로 죄인이고, 행동에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인생들을 살펴보고, 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볼 때 너무도 확실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바울의 이 주장은 인간에게 절망스러운 사형을 선고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계시해 주기 위함입니다. 죄가 없는 곳에는 구원이 필요 없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지요.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23-24절)고 하였습니다. 그저 이 진리를 믿음으로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감각이 둔한 곳에는 구원의 즐거움도 둔하지요. 죄의 감각이 예민하고, 심각한 곳에 구원의 기쁨도 큰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음으로 회개할 때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아셔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을 해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대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죄 때문에 마냥 죄책감으로 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에 자유함을 얻은 것이지요. 그것이 복음입니다. 미루지 마십시요. 지금이 믿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벧후 3:9).
   또 이미 이 은혜를 받고 구원의 자리에 서신 분들은 이제 어떻게 사시렵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죄인으로 거저 주신 은혜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며, 불평할 것이 무엇이며, 누구를 비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마음을 계속 상하게 하시렵니까? 아니면 그를 의지하고 우리의 인격을,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주님처럼 말을, 아니 행동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죽을 병에 걸려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어느 누가 대신 자신의 장기를 주면서 죽으며 그의 장기를 받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새로 주어신 삶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자기 대신 죽어준 사람을 위하여, 그의 가족을 위하여 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셔서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를 위하여 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주님을 찬양할 입술 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살 수 밖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6:33). 이미 은혜를 받으신 여러분이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여러분께서 주를 위하여 힘쓰시는 수고를 모른다 하실 분이 아니지요. 어쩌면 당연한 우리의 도리인데도 공의의 하나님,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것입니다. 축복입니다.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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